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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비가 제법 많이 내린 모양입니다. 아침에 문을 나서니 공기가 촉촉한 것이 어제와는 확연히 다르게 포근합니다. 주변 어르신들은 농사 준비로 바쁘십니다. 논과 밭이 하루가 다르게 다듬어지고 있습니다. 춘분이 지난 후로는 해 뜨는 시간도 빨라져 이젠 6시만 되어도 밖이 훤하게 밝아지고 있습니다. 겨울의 게으름은 이제 챙겨 넣어 두어야 할 모양입니다.

봄나물은 그 어떤 보약보다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쑥을 캐어 보려 집을 나섰습니다. 지천이 쑥이지만 일단 차가 다니지 않는 장소를 물색 하였습니다. 차가 다니는 길가의 쑥은 자동차 배기가스에 오염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차가 다니지 않는 산책로 주변에서 나물을 캐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번 산책 나왔을 때 칼이 없어서 지천인 쑥을 바라만 보고 놓고 왔기 때문에 단단히 챙겨서 나왔습니다.

이른 봄 첫 쑥은 약쑥입니다. 겨울을 이겨내고 자라는 쑥을 캐어 쑥국을 끓이면 어느 보약보다 더 몸에 좋습니다.
▲ 지천으로 자라는 쑥 이른 봄 첫 쑥은 약쑥입니다. 겨울을 이겨내고 자라는 쑥을 캐어 쑥국을 끓이면 어느 보약보다 더 몸에 좋습니다.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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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국물에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기 위해 쑥을 캤습니다.
▲ 약쑥 멸치 국물에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기 위해 쑥을 캤습니다.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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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쑥을 캐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작년에 친구들이 냉이 캐는 걸 옆에서 지켜본 적은 있었습니다. 그 기억을 되살려 냉이를 캐듯이 쑥도 뿌리까지 캐어서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열심히 캐서 담고 있는데 이상하게 양은 그대로 늘어나지 않더군요. 그래도 쑥국을 끓여 먹겠다는 일념에 열심히 손을 놀려 딱 쑥국 끓일 만큼 캐서 돌아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쑥을 씻는데 음.... 말 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더군요.

'이거 제대로 캔 거 맞나?' 

제가 저를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캘 때는 몰랐는데 집에 와 쑥을 씻으며 보니 뿌리가 너무 길고 흙도 많고 덤불도 너무 많습니다. 아무리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왠지 먹으면 배가 아플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에 깨끗이 씻어 말리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여름에 모깃불로 쓰겠다는 깜냥인 거지요.

그렇게 한웅큼의 쑥은 여름을 위해 비축하기로 했는데 여기저기서 봄에 나오는 첫 쑥은 약쑥인데 아깝게 말리지 말고 국 끓여 먹으라고 성화입니다. 할 수 없이 한 번 더 도전하기로 하고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뿌리는 캐지 않는다.' '캐면서 덤불은 털어낸다.' '캐면서 다듬는다.'

한 번 더 같은 장소에 쑥을 캐러 나갔습니다. 한 번 해 보았다고 이번엔 제법 속도가 붙어서 양이 불어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스스로 기특해 하며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많이 캐어서 서울에 있는 동생과 나누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허리 아픈 것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확실히 뿌리를 캐지 않고 미리 다듬어서 담으니 쑥이 깨끗합니다. 오늘 캔 쑥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뿌듯합니다.

쑥을 캐면서 보니 광대나물도 많이 피어 있습니다. 광대나물은 3, 4월에 꽃을 피워 여름에 씨를 맺어 다음에 싹을 내기도 하지만 따뜻한 곳에서는 겨울에 싹이 나서 봄에 꽃을 피우기도 해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광대나물의 어린잎은 데쳐서 나물로 먹는데...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미 꽃이 피었으니 먹을 수 없을 거야'라며 못 본 척 돌아섰습니다.

꽃이 광대의 화려한 깃을 닮았다 하여 광대나물이라 부릅니다.
▲ 광대나물 꽃이 광대의 화려한 깃을 닮았다 하여 광대나물이라 부릅니다.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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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나물은 꽃이 피기 전 어린잎을 데쳐서 나물로 먹습니다.
▲ 광대나물 광대나물은 꽃이 피기 전 어린잎을 데쳐서 나물로 먹습니다.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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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모양이 광대의 화려한 깃 모양이어서 이름이 광대나물이라고 해요. 광대나물은 꿀풀과의 식물이어서 꽃을 따서 빨면 단 맛이 있습니다. 이 광대나물의 생존전략은 엘라이오좀(Elaiosom)입니다. 엘라이오좀은 개미가 좋아하는 향기입니다. 그래서 이 향기에 취한 개미가 씨를 물고 이동하는 중에 씨를 번식시킵니다. 이 작은 미물도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저기 추운 겨울을 이기고 나온 꽃들이 눈에 보입니다. 바쁘게 지날 때에는 보이지 않던 앙증맞은 작은 꽃들이네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나석주 시인의 시가 생각났습니다.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지만 길고 긴 모진 겨울바람 넉넉하게 이기고 나온 생명이기에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꽃이 개의 음낭을 닮아서 이름이 큰개불알풀이다.
▲ 큰개불알풀 꽃이 개의 음낭을 닮아서 이름이 큰개불알풀이다.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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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개불알풀'이더군요. 처음 숲해설 공부를 하면서 대학동기들과 미륵산 둘레길을 걷다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자그마하고 예쁜 꽃을 보았습니다. 꽃이 색깔도 너무 예쁘고 작고 앙증맞아 이름이 궁금하여 숲학교 샘들에게 물었더니 "큰개불알풀"이라고 하더군요. 이름이 하도 민망하여 식물도감을 찾아보았습니다. 한국식물도감에도 "큰개불알풀"이라고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열매가 개의 음낭을 닮아 "큰개불알풀"이라 이름을 붙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봄까지꽃"이라 부르더군요. 겨울의 끝자락부터 들판과 논둑에 하나둘 피기 시작해서 봄이 저무는 오월까지 꽃이 피어 딱 봄에만 피는 꽃이란 뜻입니다. 겨울의 모진 한파를 이기고 봄을 부르는 꽃, 추운 바람은 견디지만 뜨거운 볕은 이기지 못하고 봄만을 사는 꽃이어서 "봄까지꽃"이라고 한답니다.

뜻도 좋고 이름도 예쁘고 하여 스승님께 여쭈었습니다. "'봄까지꽃'이라 부르면 안될까요?" 울 스승님 "도감에 나와 있는 정명이므로 당당히 말씀하셔요~~ㅎㅎ 해설가 선생님들이 이명이나 정확하지 않은 표현을 쓰면 아니되옵니다~~"라고 단칼에 잘라 말씀하시더군요. 결론은 "큰개불알풀"이었습니다. 이 꽃을 보면 그 때가 생각이 나며 하필 이름이 '개불알이 머꼬?'라는 생각이 듭니다.

쑥을 캐며 천천히 땅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이름 모를 들꽃들이 눈에 보입니다. 도시에서 숨 가쁘게 살 때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꽃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큽니다. 비 그치고 바람도 없는 시골에서 나물 캐며 들꽃을 자세히 오래 바라보며 꽃의 사랑스러움을 깨닫고 감사하는 하루입니다.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운 경이로움.
오래보아야, 자세히 보아야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 들꽃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운 경이로움. 오래보아야, 자세히 보아야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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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지나치던
바쁜 일상에 알아보지 못했던 들꽃
▲ 들꽃 무심코 지나치던 바쁜 일상에 알아보지 못했던 들꽃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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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anjugun&logNo=220974547584&redirect=Dlog
완주군 공식 블로그에 게재 되었습니다.



태그:#귀농일기, #나물캐기, #쑥캐기, #광대나물, #개불알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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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리티 인문학이란 저평가 되어 있는 지역의 역사, 문화, 관광자원을 발굴, 개발하여 스토리텔링 하는일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 방법을 찾아서 더 행복한 지역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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