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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침 8시에는 사무실에 도착해야 하는 워킹맘입니다. 집에서 약 50분 거리의 직장인데요. 최근 부서 이동으로 1시간 10분 이상 걸리던 출퇴근 편도 시간이 20분쯤 단축됐습니다.

퇴근은 몇 년 전보다는 훨씬 빨라진 8시 전후인데요. 늦어도 9시 전에는 집에 도착합니다. 물론 한 달에 서너 번은 10시를 넘기기도 합니다만 아이들이 어릴 때 일하던 부서에서는 약 3년간 매일 11시 넘어서 퇴근하느라 집에 도착하면 12시를 넘기기 일쑤였으며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초과 근무가 대여섯 시간을 넘기는 일이 빈번하다가 서너 시간 이내로 줄었으니 근무환경이 바뀌었다는 게 무조건 나쁜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반면 몇 년 전까지 단체톡방을 이용한 업무 지시는 은밀하게 이루어졌는데, 최근 단체톡방은 공공연한 퇴근 후 업무공간이 되는 추세입니다. 그래서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이 앞당겨졌다고 해서 일찍 퇴근했다는 느낌은 많이 들지 않습니다.

카카오톡
▲ 카카오톡 카카오톡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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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회사는 부서(팀)마다 단체톡방이 없는 경우가 드뭅니다. 발령 등으로 부서 이동이 있을 경우 기존 부서의 단체톡방과 새로운 부서의 단체톡방, 부서 내 맡은 역할이 다를 경우 코웍(co-work)을 위해 여러 개의 단체톡방에 참여해야 하기도 합니다.

부서가 여러 개의 작은 팀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팀원끼리도 단체톡방이 생깁니다. 심한 경우 가장 큰 부서의 단체톡방, 팀원 단체톡방, 업무 역할에 따른 단체톡방 2~3개까지 3~5개 이상 단체톡방에 참여해야 하기도 합니다.

단체톡방은 기본 업무 지시부터 사소한 수다까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대화가 이어집니다. 특히 단체의 장(長)이 던진 한마디에 열렬히 반응하는 팀원들이 많은 경우 잠깐만 단체톡방의 이야기를 읽지 않아도 못 읽은 대화의 개수가 수백 개까지 쌓이는 일이 빈번합니다. 팀 분위기나 사람들 성향에 따라 하루에도 수백 개의 대화가 오가는 단체톡방도 있습니다.

요즘 단체톡방은 상대가 대화를 읽었는지까지 표시해주기 때문에 대화를 읽지 않으면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어 성실하게 대화에 참여해야 합니다.

업무 지시에 관한 장문의 글이 줄 바꾸기, 띄어쓰기 없이 작은 채팅창에 올라오면 눈을 비비며 한창을 들여다봐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로는 일과 무관한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와 사진들로 글이 수백 개씩 쌓이기도 하죠.

신변잡기나 가십, 팀원들 모두가 해당하지 않는 둘 사이의 이야기를 단체톡방에서 주고받는 것은 단체톡방을 이용한 업무 지시만큼이나 피로도를 높입니다.

부서 이동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그 단체톡방을 나온다는 건 자발적인 왕따를 자처하는 길입니다. (부서를 이동해도 단체톡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체톡방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오프라인에서 대화를 할 때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얘기들이 발생함으로써 은근한 왕따가 되기도 합니다.

왕따를 각오하고 단체톡방에서 나오더라도 단체톡방의 다른 참여자에 의해 다시 초대되는 일도 있습니다. 일종의 개미지옥처럼 몇 번이고 나가고 초대되는 일이 반복되자 단체톡방 탈출을 포기하는 이도 봤습니다.

한편으로는 부서에 새로운 전입자가 있을 경우 바로 단체톡방에 참여를 시키기도 하지만 일명 '간보기'처럼 얼마 동안 전입자의 성향을 살피고 나서 한참 뒤에야 단체톡방으로 초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초대될 때까지 단체톡방에서 오갔으나 저는 모르는 대화를 주고받는 팀원들을 서늘한 마음으로 지켜보기도 했었죠.

이런 상황, 퇴근 이후의 업무지시가 싫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2G폰을 뚝심 있게 사용하던 친한 동료가 두 명이나 있었는데요. 직급이 올라가서 임원들에게 지시를 받을 일이 생기거나, 스마트폰 전용 앱으로 각종 복리비 지원이 이루어지는 경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결국 두 명 모두 2015년, 2016년에 각각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
▲ 스마트폰 스마트폰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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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퇴근 후에도 단체톡방으로 업무 지시를 받는 비율은 74%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중 급한 업무 연락은 42%에 불과했고 55%가 습관적인 연락이었다고 하네요.

회사의 일 이상으로 에너지를 요구하는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은 워킹맘에게는 제2의 일터입니다. 업무로 묶인 동료와 상사가 참여하고 있는 단체톡방의 대화가 퇴근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경우 아이들도, 가사도, 회사일도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9 to 6가 법정 근로시간이라고는 하나 아침저녁으로 2~3시간의 잔업은 너무나 당연한 상황에서 퇴근 이후의 단체톡방에까지 응대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직장인, 특히 워킹맘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네요.

시급한 일까지 지시받지 않겠다는 건 아닙니다. 업무 특성상 퇴근 이후에도 긴급한 연락이 필요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직장생활이란 편안한 가정생활 유지를 근본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런 개개인의 삶의 기본권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퇴근 후 단체톡방 사용은 자제가 필요합니다. 직장인들이 '저녁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야근을 자제하는 것 뿐만 아니라 퇴근 이후에는 단체톡방을 이용한 업무지시 역시 제한하는 법적 규제,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절실합니다.

빠져나오고 싶은 몇 개의 단체톡방에서 새 글 알림이 뜨기만 해도 보기 싫은 마음이 앞서는 건 비단 저뿐만은 아니겠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쌍둥이육아, #워킹맘육아, #단체톡, #카톡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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