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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스탠퍼드의 <예정된 악인, 유다> 책 겉표지.
 피터 스탠퍼드의 <예정된 악인, 유다> 책 겉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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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롯 유다를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나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정통적인 세 가지 틀이 있죠. 예수 곧 스승을 판 배신자, 사단의 지배를 받은 허약한 인간상, 그러나 최후 자결을 선택함으로 스스로 오명을 벗고자 했던 사람, 말입니다.

그 유다에 대해 너무나도 심도 깊게 연구한, 정말로 값진 책이 나왔습니다. 피터 스탠퍼드의 <예정된 악인, 유다>라는 책이 그것이죠. 이 책은 성경의 사대복음서와 바울서신은 물론이고 유다복음서와 그 밖의 초기 여러 사본들까지도 집중적으로 분석하면서, 유다의 여러 모습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다가 아니죠. 중세시대에는 유다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이용했는지, 또한 계몽주의 시대에는 어떻게 유다의 오명을 벗겨주고 있는지, 그리고 오늘날에는 유다를 어떻게 조명해야 하는지 등, 여러 시대적인 문헌과 예술작품들을 망라하면서 그 층위의 다양성을 아우르며 남다른 해석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기록에 의하면, 예수를 넘겨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한 건 유다가 아니었다. 오히려 적선하듯 돈을 주겠다고 먼저 제안한 건 대제사장들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유다가 배신한 이유 가운데 돈은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68쪽)

대부분 유다가 예수를 판 것, 예수를 배신한 것이 은 30냥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돈 때문에, 자기 탐욕 때문에, 스승을 판 파렴치한 인간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복음서와 바울이 쓴 편지들을 꼼꼼히 분석한 이 책에 따르면, 결코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해 줍니다.

큰 틀은 그것입니다. 초기 기독교공동체에 두 개의 파벌이 있었는데, 그 하나가 유대교에서 분리해 나온 파, 또 다른 하나는 유대교와는 완전히 다른 이방세계를 대변하는 파, 그 둘 사이의 입장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유다'를 그 중심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마태와 누가와 요한이 쓴 복음서, 그리고 바울과 마가가 쓴 복음서에 등장하는 '유다'에 대한 상이한 관점들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마태와 누가와 요한은 '유다'를 아예 아웃사이더 취급하고 있다고 설명을 합니다.

더욱 흥미 있는 것은 그것입니다. 바울과 마가는 유다가 돈 때문에 예수를 판 게 아님을 강조하는데 반해, 마태는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고 누가는 사탄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요한은 아예 대놓고 '악마다'고 할 정도로 비판해 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마태는 '유다'가 유다지파의 중심에 있는 대제사장들과 결탁해 예수를 판 것이라고 해석을 가합니다.

물론 이 책은 성경의 사복음서나 바울서신에만 드러난 '유다'의 모습을 읽어내진 않습니다. 3세기 그리스어에서 콥트어로 번역돼 파피루스에 적힌 그 짤막한 '유다복음서', 다시 말해 "예수가 유월절을 축하하기 3일 전, 일주일 동안 가롯 유다와 함께 나눈 계시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라고 밝힌 내용을 재조명함으로써 '유다'의 다른 면모를 읽어주죠.

"한마디로 유다는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예수를 돕고 있는 셈이다. 유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유다 복음에서 유다가 비극적인 영웅으로 그려졌는지, 아니면 악령에 사로잡힌 자로 그려졌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149쪽)

이 책 제 2부에서는 중세 시대의 '유다 활용법'으로, 유다를 사단의 도구로 몰아붙인 여러 사건들을 밝혀줍니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성화와 성상들을 통해 읽어주고 있는 게 특징이죠. 아마도 중세시대는 시각적인 정보가 문자나 말보다 더욱 강력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유다는 붉은 머리칼에 노란 옷을 입고 있는 전형적인 유대인 유다의 모습이지만, 한 가지 추가된 부분이 있다. 바로 옷을 뚫고 나올 것처럼 눈에 띄게 발기된 생식기다. 유다는 첫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이런 불경스런 음란함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식탁 밑으로 손에 쥐고 있던 주사위와 카드를 흘리고 있다. 예수가 인류에게 생명의 빵을 건네는 중차대한 순간에 유다는 고작 노름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244쪽)

그 유명한 헤렌베르크 제단화에 포함된 예르크 라트게프의 <최후의 만찬>(1519)를 설명해 주는 내용입니다. 유다는 중세시대의 교회 예술품에서조차 그렇게 최대의 나쁜 인상으로 각인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세시대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당시 '유다'는 대부분 '악마'와 동급으로 설정되었다고 하죠.

그런데 제3부에서 그려주는 유다는 계몽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모습입니다. 그중 예수와 '입맞춤'을 하는 그림을 그렸던 프라 안젤리코의 <그리스도의 체포>를 읽어주면서, 마가와 마태가 사용한 그리스어 '카타필레오'가 '애정 어린 입맞춤' 또는 '격렬한 입맞춤' 다시 말해 '진한 키스'를 의미한다고 해석을 합니다. 그것은 추악한 탐욕에 사로잡힌 배신자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프라 안젤리코는 이런 모든 상징을 거부했다. 오히려 유다의 입맞춤에 인간의 연약함을 투영했다. 유다는 조심스레 예수를 안으려고 다가가고, 예수는 그런 유다를 피하지 않는다(이는 누가복음의 기록과 일치한다). 마치 유다와 예수 둘 다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있지만, 동시에 둘 다 그 일을 서글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280쪽)

기독교로 개종한 밥 딜런,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는, 1963년 '신은 우리 편에'(With God on Our Side)를 발표하면서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이 신이 의도한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그는 유다가 예수에게 배신자의 입맞춤을 할 때, 신은 그 배신자의 곁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노래했죠. 어쩌면 그 노래야말로 유다에 대한 새로운 재평가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예정된 악인, 유다 - 누가 그를 배신자로 만들었는가

피터 스탠퍼드 지음, 차백만 옮김, 미래의창(2016)


태그:#가롯 유다, #배신자 신의 대리인, #최후의 만찬, #유다복음서, #아웃 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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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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