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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 반 프라이드 반'의 묘미는 두 가지 맛을 동시에 즐기는데 있다. 애초에 다른 메뉴를 뒤섞어놓은 짬짜면(짬뽕과 짜장면)과는 엄연히 다르다. 결코 오리지널의 풍미를 잃지 않았다는 점. 책 <김상욱의 과학공부>도 그렇다.

<김상욱의 과학공부> / 지은이 김상욱 / 펴낸곳 동아시아출판사 / 2016년 7월 6일 / 값 16,000원
 <김상욱의 과학공부> / 지은이 김상욱 / 펴낸곳 동아시아출판사 / 2016년 7월 6일 / 값 16,000원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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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에서 물리학으로 학사에서 박사까지 모조리 섭렵한 과학자 김상욱이 이번에는 '인문학'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다. 세상의 여러 문제를 살피고 인문학적 통찰을 끄집어낸다. 이 과정에서 '과학'이란 양념이 더해져 신선함을 더한다.

"과학의 역사에도 문지기가 등장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문지기의 말을 믿는 이상, 태양계의 행성들의 이상한 움직임은 이해하기 힘들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주전원(周轉圓)이라는 미봉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만, 아마 문지기의 벼룩에게 부탁하는 심정이었을 거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과학적 태도란 무엇일까. 단순하지만, 역시 '탐구 정신'이다. 고정관념이란 '문지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처형을 당할 위기에서도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라고 말한 갈릴레이의 오랜 일화까지 굳이 가지 않는다. 2015년 구제금융 위기에 내몰린 그리스가 채권단의 긴축안을 거부하고, 직접 그 결과를 확인하고 위기에 맞서려는 모습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딱딱한 과학 이론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어느샌가 인문학과 맞닿게 하는데 저자 김상욱은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교육의 목적을 밝히는 부분에선, 인간은 유전자를 통해 단순히 단백질 정보를 전해준다더니, 끝에 이르면 동물이 그러하듯이 인간의 교육 목적 또한 '행복'이 아닌 '독립'에 있다고 매듭짓는다. 교육의 목적은 행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그의 시선은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종횡무진이다. 이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정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2014년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선, 증거 없이 결론을 내는 것은 굉장히 '비과학적' 태도라며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차라리 모른다며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되레 과학적 태도에 가깝다.

"분명 과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을 제공한다. 하지만 신뢰가 없다면 지식은 쌓이지 못하고 바람에 날아가버린다. 세월호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도 바람에 날아가버릴지 모른다." - 본문 중에서

나라 전체를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문제는 어떤가. 온 국민이 재난대책위원이 되어 나서는 모습은 신뢰 잃은 국가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과학에서 아무리 훌륭한 논문이 있어도, 이를 증명할 데이터의 조작 여부를 먼저 걱정한다면 과학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과 흡사하다. 결국 신뢰의 문제라는 그의 일갈이다.

다시 반반 치킨이다. 인문학 같기도 하고 과학 같기도 한 게 이 책이다. 중요한 건, 무엇이든 새롭게 시도하고 바라본다는 자체가 의미있지 않을까. 따지고보면 인간이 인문학이건 과학이건 분류하기 시작한 건, 지구 역사의 시점에선 손톱의 때만큼도 되지 않는다. 그저 인문학과 과학을 재료로 일품 요리를 만들어내는 저자의 솜씨를 마음껏 즐기면 그만이다. 


김상욱의 과학공부 -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

김상욱 지음, 동아시아(2016)


태그:#과학, #책, #김상욱, #인문학,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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