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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 벌교시장에 있는2천원짜리 백반입니다.
 전남 보성 벌교시장에 있는2천원짜리 백반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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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은 백반입니다."

전남 보성 벌교 여행에서 보성 보탑사 주지 우인 스님은 도반들을 만나자마자 다음 날 아침에 먹을 것 타령입니다. 어, 그런데 편한 해장국 대신 백반이 등장했습니다. 아니 웬 백반?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심 기대 컸습니다. 왜냐면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벌교를 혈혈단신, 그것도 독보적으로 먹여 살린다는 '꼬막'을 제쳐두고 먼저 등장한 백반이라면 기대해도 좋겠다는 막연한 예감 때문이었지요. 역시 자랑이 이어졌습니다.

"이천 원짜린데 먹어보면 뒤로 자빠질 겨!"

뒤로 넘어질지, 앞으로 넘어질지 닥쳐 봐야 알지요. 하여튼 간에 우인 스님 말씀이 설레발인지, 진짜인지 먹어보면 판명나지 않겠어요. 그래도 명색이 스님인데, 거짓말 할리는 없을 터.

익은 호박, 그 옆으로 무잎 말리는 풍경이 '낯익다'

보성 벌교시장 풍경입니다. 활기 넘칩니다.
 보성 벌교시장 풍경입니다. 활기 넘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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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이 벌교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꼬막이 벌교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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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의 재래시장인 벌교시장입니다. 좌판에는 배추, 무, 대파 등 농산물과 감, 귤, 다래 등 과일 및 게, 소라, 꼬막, 주꾸미, 새우 등 수산물이 놓여 있습니다. 정리된 듯 안 된 듯한 꾸밈새에서 삶에 녹아난 질서와 무질서를 읽습니다. 삶이 질서정연하기만 하면 무슨 재미겠어요. 간혹 비뚤어진 길과 험난한 굴곡의 길도 가봐야 인생이 그만큼 재미난 것임을 아는 이치지요.

늘 느끼는 거지만, 재래시장에 서면 언제나 살아 있는, 혹은 살아나는 느낌입니다. 왜일까요? 생각해 보건데, 재래시장에는 "이거 얼마예요? 조금 더 줘요. 오백 원만 깎아줘요" 같이 가격 흥정으로 대변되는 '왁자지껄' 문화가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니까 말 섞는 중에 묻어나오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정으로 인해 살아있음을 인식하는 거랄까.

벌교시장 통에서 나오는 어떤 중년 남자 손에는 박스가 양손에 들려 있습니다. 발걸음이 바쁩니다. 이를 보니 '어떤 이에게 무엇을 보내려는 걸까'란 궁금증 보다, 마음이 담긴 선물 같아 더 흐뭇합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풍경에 '아~' 하며 눈길을 멈췄습니다. 익은 호박과 그 옆으로 무 잎을 말리는 모습. 이 대목에서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엄마는 아들 먹인다고 무 잎을 말려 시래기 된장국으로 내셨지요. 정성이었지요.

'다 어디 가셨지?'

벌교시장에 한 눈 파는 사이, 일행이 사라졌습니다. 분명 이쪽으로 같이 왔는데, 연기처럼 없어졌습니다.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 걷노라니, 문 사이로 승복이 보입니다. 그제야 간판을 봅니다. 간판도 없습니다. 허름한 선술집 분위기. 그저 문 유리에 '할매밥집'이라 쓰였습니다. 그 옆으로 '아침식사 됩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간판 없이 살아남은 밥집의 당당함을 봅니다. 밥집의 당당함의 원천은 '맛'뿐이라는 거.

대박, 어머니 맛 2000원짜리 백반 '할매밥집'

보성의 재래시장인 벌교시장에 있는 '할매밥집'입니다.
 보성의 재래시장인 벌교시장에 있는 '할매밥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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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다 이제 온대. 빨리 앉아."

먼저 자리 잡은 스님들, 그새 숟가락을 놀리고 있습니다. 공양 중인 손과 입이 무척이지 바쁩니다. 이런 의리 없는 스님들 같으니라고, 욕 할 틈새도 없이 눈이 먼저 놀랍니다.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로, '대박~'입니다. 분명 이천 원짜리 백반이라 했거늘, 반찬이 무려~ 입이 쩍 벌어집니다. 테이블 세 개 뿐인 작고 허름한 가게인데, 테이블 위에 놓인 반찬은 엄청납니다.

반찬만 무려 열여섯 가지. 거기에 밥과 시래기 된장국까지. 밑반찬은 배추생김치, 배추 익은 김치, 고들빼기, 물김치, 깍두기, 무 채김치, 갓김치, 부추김치, 파래무침, 마늘쫑, 어묵, 톳 무침, 깻잎장아찌, 호박무침, 가지나물, 멸치볶음 등. 침이, 침이 꼴딱 넘어갑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대박, 2천원 하는 밥집의 밑반찬이 무려 16가지입니다.
 대박, 2천원 하는 밥집의 밑반찬이 무려 16가지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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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모르겠다. 덥석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듭니다. 다른 건 제쳐두고, 먼저 시래기 국을 뜹니다. 맛을 봅니다. 와, 대~에~~박~.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신 그 맛 그대롭니다. 스님들이야 특히 공양시간에 '침묵을 금'이로 아시는 분들이니 그렇다고 치죠. 근데, 옆 테이블까지 조용한 이유를 알겠더이다. 맛은 그렇다 치고. 걱정이 앞섭디다. '이렇게 장사해서 남나?' 싶어서리.

"어서 오세요."

비었던 옆 테이블까지 손님이 점령합니다. 손님에게 길 터 주느라 잠시 세웠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앉혀 허겁지겁 먹습니다. 언제부턴가 집에선 습관적으로 거르는 아침인데 웬일인지 집 밖에 나오면 꼬박꼬박 더 챙겨먹게 되더군요. 옆에서 챙기니까 그런 거지만, '집 나오면 개고생'이란 걸 알기에 또 챙겨 먹는 습성이 생긴 듯합니다. 반찬 하나하나에 정성 가득합니다. 감탄에 감탄 중, 옆 테이블서 한 마디 거듭니다.

"여기 참 맛있죠."

"장사 시작할 때부터 지금꺼정 이천 원 받아요"

호박과 시래기 말리는 모습, 아주 낯익은 풍경입니다.
 호박과 시래기 말리는 모습, 아주 낯익은 풍경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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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국에 밥을 말아먹는 것을 꺼리는 쪽입니다. 애시 당초 밥이 말아져 나오는 국밥 말고는 국밥일지라도 국 따로 밥 따로 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할매밥집'에서는 아예 밥을 시래기 된장국에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깊은 맛에 반한 겁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다 말라비틀어진, 버려도 무방할, 시든 무 잎을, 공기 중에 말려 내는, 시래기 국이 왜 맛깔 나는지 모를 일입니다.

여기에 우리네 조상님들의 과학이 들어 있습니다. 공기 중에 말린 시래기와 된장의 만남이 그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깊은 맛의 원천은 푹 곰삭은 된장과의 만남에서 나온 겁니다. 할매밥집 음식은 전라도 말로 '게미'가 넘칩니다. 고만큼 매력적입니다. 살다 살다, 이렇게 싸고 맛있는 식당은 기필코 처음입니다. 밥 들어가고 배부르니 그때서야 머리가 돕니다.

"여기서 몇 년 장사 하셨어요?"
"한 20년 됐어요."
"장사 시작할 때부터 이천 원 받았어요?"
"예. 장사 시작할 때부터 지금꺼정 2000원 받아요. 근데…."

20년 전과 지금의 물가 변화 추이를 떠올리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런 집 없을 걸요. 저는 절집 시주, 불상 시주, 승복 시주, 경전 시주, 단청 시주 등 많은 시주 중에서도 밥 공양을 최고로 칩니다. 왜냐고? 밥이 보약이고 먹어야 사니까. 이로 보면 할매밥집은 싼 가격과 맛있는 음식 자체로도 엄청난 공덕을 쌓은 듯합니다. 속으로 '할머니 극락 가실 거예요!'라는 말을 꼭꼭 씹어 삼킵니다.

"어머니, 이렇게 장사해서 남아요?"
"손님들에게 미안하지만 도저히 안돼서 최근에 올렸어요. 여기 시장서 장사하는 단골들은 2000원. 다른 손님은 3000원으로."
"그것도 감지덕집니다. 장사는 몇 시까지 하세요?"
"새벽부터 점심까지만 합니다."

"엄마가 많이 아파요. 좀 더 하다 그만 둘 거예요"

시래기 된장국 맛 덕분에, 평소에도 꺼리던 밥을 말았습니다.
 시래기 된장국 맛 덕분에, 평소에도 꺼리던 밥을 말았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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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숟갈 놓은 스님들 표정이 아무 생각 없는 듯합니다. 그런데도 그 자체가 염화미소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거죠. 왜 안 그러겠어요. 저도 그런 걸. 아마, '달마도'에서 나온 배 쭉 내밀고 있는 달마대사께서도 여기 할매밥집서 배 터지게 드신 게지, 싶습니다. 아님 말고.

"여기 앞으로도 계속하실 거죠?"
"아니요. 엄마가 많이 아파요. 좀 더 하다 그만 둘 거예요."
"따님이세요. 따님이 이어받아 하시면 될 거 같은데?"
"그만 해야지요. 몸이 중하지요."

그렇습니다. 몸이 중하지요. 또 다른 사정이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온 나그네임에도 섭섭한 마음 한 가득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어쩌겠어요. 암튼, 하시는 날까지 몸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일행을 안내한 보탑사 우인 스님, 보무도 당당하게 무의식적으로 묻습니다.

"얼마예요?"
"만 원만 주세요."
"3000원으로 올랐다면서요."
"스님은 여기 단골이시잖아요."

단골로 알아 줘서 일까? 뜨내기로 보지 않고, 알아봐서 일까? 스님, 얼굴에 알 듯 모를 듯 미소가 스쳐갑니다. 이심전심. 우인 스님, 덕분에 너무 잘 먹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든든한 배를 디밀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벌교시장 아침거리에는 만국기가 펄럭입니다. 만국기 너머로 현수막이 도로를 가로질러 걸려 있습니다. 위풍당당합니다. 문구에 웃음이 배시시 나옵니다. 시골냄새 풀풀 나는 재밌는 풍경입니다.

"전 벌교읍장 김OO씨의 아들 OO군 행정고시 합격!"

시골스런 사람 냄새 풀풀 풍기는 풍경입니다.
 시골스런 사람 냄새 풀풀 풍기는 풍경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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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원짜리 맛집의 밑반찬은 죄다 '개미'가 있었습니다.
 2천 원짜리 맛집의 밑반찬은 죄다 '개미'가 있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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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2천원 백반, #보성맛집, #시래기 된장국, #할매밥집, #보탑사 우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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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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