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산사를 오르는 이길은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습니다.
▲ 길 산사를 오르는 이길은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습니다.
ⓒ 전경일

관련사진보기


지난주 중 업무차 속초를 다녀왔습니다. 바다만 떠올랐는데 가다 보니 백담사가 지척입니다. 둘째 날 귀갓길 몇몇 일행들은 사십육년만에 열린 만경대를 찾아 떠났고 저는 약간의 설렘으로 혼자 백담사 초행길을 나섰습니다. 

내설악 초입,
보자... 백담사까지... 어우,  6.5km!

"이삼십 분마다 마을버스가 다녀요."

안내하시는 분 말을 들을 걸 하는 후회가 금세 밀려왔습니다. 평상복 차림으로 산길을 걸으니 '백담사 5km' 푯말에서 벌써 힘이 듭니다. 단풍이 지나간 내설악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산행을 할 때마다 '아이고, 사람이 너무 많아'했는데 그 큰 산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이 세상천지 혼자 같습니다. 계곡 물소리와 산새 소리만 적막함을 달래줍니다. 울창한 숲길과 너른 계곡이 주는 넉넉함이 조금씩 산의 정취를 자아냅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산사의 겨울이 한 자락 동경으로 남아있습니다. 고즈넉이 경을 읽다 들창 너머 눈 내리는 풍경이 눈에 잡힐 듯합니다. 승가에서는 항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일상이라지요. 어느 스님의 글귀에서 뵌 듯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산 위의 소소한 일상 가운데 마지막까지 내려놓기 제일 힘들었던 것이, 긴 겨울밤 따뜻한 차를 마시는 즐거움이었다고. 이번 생의 고락은 지나간 생에 다하지 못한 자락이 남아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백담사 4km' 

아직 절반도 못 왔습니다. 올 때가 됐는데...

그렇지! 저만치 버스 오는 소리가 납니다. 기실 안내하는 분 얘기를 귓등으로 들은 건 믿는 구석이 있었거든요.

"태워주세요~~"

산길에 손을 흔들면 당연히 설 줄 알았는데 그냥 지나칩니다. 어쿠, 오산이었네요.
땀을 식히느라 앉았더니 금세 서늘합니다. 빗방울마저 흩뿌립니다. 굽이굽이 돌아드는 산세가 그나마 위로를 줍니다.

'내게는 가장 놓지 못함이 무엇일까... '

범속의 즐거움이 많아 가리기도 어렵습니다. 한가지 일상에서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은 들길을 거닐며 볕을 쬐는 즐거움입니다. 싱그러운 바람은 머리를 말갛게 하고 따스한 볕은 언 마음을 녹입니다. 그래서 중참을 들고는 언제나 들길로 나섭니다. 일터에서 백 보만 나서면 양 옆에 논밭을 끼고 한적한 길이 있어 걷기에 제격입니다.

지금 원 없이 들길 아닌 산길을 걷습니다. 큰 산이 품 안에 들어온 듯, 숨이 가쁜 것인지 묘한 감흥이 차올라 아뜩합니다.

' 백담사 3km'

저만치 자가용이 한 대 옵니다. 사람 좋은 인상을 지으며 연신 손을 흔들었지만 또 그냥 지나칩니다.

이미 절반을 지났겠다. 더이상 무임승차엔 미련이 없어졌습니다. 

백담은 신라 때부터 지어졌다니, 이백 년 전에도 오조가사를 입고 한 구도자가 이 길을 지나갔을 것입니다. 뉘엿뉘엿 해넘이를 등지고 눈 덮인 이 길을 갔던 그를 그려봅니다. 호롱불 밝힌 인가도 없었을 이길, 저 멀리 세상을 뒤로하고 깊은 산 높은 곳 산사를 향한 그의 가슴엔 무슨 회한이 서려 있었을까요. 님을 잃었나요, 부모를 여의었나요, 신분의 벽이 가로막았나요.

'백담사 2km'

아까 그냥 지나쳤던 버스가 다시 내려옵니다. 저 버스 안 타길 잘했다싶습니다. 버스를 바라던 마음이 한 시간 사이 이리도 다른가요. 그 사이 차량을 제외하곤 아무도 못 만났습니다. 

구비구비 처음 오르는 길인데 낯설지 않은 것이 우리 산이라 그런가요, 아니면 언젠가 지났던 길이었을지도 모르기에 그런가요. 산에 취해 아뜩함이 더해갑니다.

오, 저기 그 오래전 속을 등지고 인적 드문 이 길을 휘적이며 걷는 그가 환영되어 앞서 갑니다.

어찌하여 이 길을 가오.
무엇을 찾아가는 게요.
모든 연을 두고 이 깊은 산 홀로 어디로 가는 게요.

이 길을 오르던 그가 어느 해 엄동 지나 새봄이 되어도 다시는 내려오지 않았을 겁니다. 생의 마지막을 그곳에서 맞이했다면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죽음이겠지요. 사는 날 동안 꼭 한번은 찾아오는 손님이라면 청정한 가을 산사에서 맞음도 고대광실 부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백담사 1km'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푯말을 지나 오래지 않아 멀리 언덕바지에 늠름한 일주문이 모양을 드러냅니다. 휘적휘적 처음보다 걸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살아가면서 조금씩 깨닫습니다. 
'죽음'은 몸이 흙으로 돌아갈 뿐이지 '나'는 여전히 살아 지금 이 길을 걷고 있지 않나. 이백 년 전 저 앞에 환영되어 이 길을 걷던 그가 나였을지도 모르고,  일백년 뒤, 나 다시 이 길을 오를지도 모르네.

생명이란 죽어서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리라. 앞서간 위대한 스승들에게 죽음에 대한 깨달음은 종교가 아니고 선명한 삶이었을 것입니다.

생명과 죽음은 공존할 수 없음이요, 오직 하나의 진실만 있을 뿐이니 태양이 비추면 생명은 빛날테요, 죽음은 새벽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네. 그 꺼지지 않는 생명을 담지한 것이 지금 이 길을 오르고 있는 나 아닌가.

일주문 지나 금강문 역사가 사납게 노려보고 있습니다. 

일주문 지나 저기 백담의 금강문입니다.
▲ 금강문 일주문 지나 저기 백담의 금강문입니다.
ⓒ 전경일

관련사진보기


'이보게,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네. 염라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우리 안의 호랑이가 울부짖음이란 것을. 몸이 죽는 것에 대한 마음의 두려움이란 것을. '

그 깊은 곳에 이리 넓고 평평한 터가 있나요. 큰 산에 포옥 둘러싸여 세월을 잊은 듯합니다. 곧이어 눈이 번쩍 뜨이는 풍경이 애써 오른 수고를 더욱 값지게 합니다.

산사의 너른 개울가를 가득 메운 저 작은 돌탑들. 시내와 산과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이룹니다.

아, 이 많은 소원들,  이 많은 번뇌들,  이 많은 생들. 지나간 생에 남겨진 자락들이 이리도 여러 갈래인가.

한 탑 위에 작은 돌 하나를 보탭니다.
그 자락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

바람이 몹시 불었는데도 돌 위에 돌 하나 움직이지 않습니다. 모두의 소원 이루어지이다.
▲ 돌탑들 바람이 몹시 불었는데도 돌 위에 돌 하나 움직이지 않습니다. 모두의 소원 이루어지이다.
ⓒ 전경일

관련사진보기




태그:#백담사, #죽음, #생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