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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문화기획단체 '꿈톡' 운영자 강주원
 청년문화기획단체 '꿈톡' 운영자 강주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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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인턴 2개월, 공공기관 계약직 4개월, 제약회사 영업직 2개월, 청소년 진로교육단체 3개월, 대학 행정인턴 8개월, 공공기관 파견직 10개월…. 기성세대가 보기엔 혀를 끌끌 찰 법한 이력의 소유자 강주원씨(29)는 대학 졸업 후 3년 동안 최소 5번 퇴사한 청년이다.

최근 직장인들 사이 화제가 됐던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라는 TV다큐 프로그램이 있다. 4050으로선 도대체 이해 못할 젊은이들의 끈기 없음과 허약함을 확인하게 됐고 2030에겐 퇴사를 고려할 수밖에 없을 만큼 보수적이고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헬조선의 기업문화에 대해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공감을 자아낸 바 있다.

스스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충분할 정도의 잦은 퇴사 이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강씨가 돈을 받지 않고도 2년 5개월동안 꾸준히 해온 일이 있다. 또래 청년들의 고민과 꿈을 나누는 토크쇼 '꿈톡'이 그것이다. 지난달 26일 꿈톡 운영자 강주원씨를 그의 자취방이 있는 관악구 신림동 인근에서 만났다.

스펙 쌓아 대기업행 외 다른 선택지 없어... '어떻게 살아야 되나' 고민

"전공이 경영학이니 스펙 쌓아서 대기업 들어가는 것 외엔 별다른 생각이 없었어요. 인문상경계 대학생들이 가는 전형적인 길이죠. 군 전역 후 '어떻게 살아야 되나,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선배들은 학점관리나 잘하라거나 술이나 마시라 했죠. 교내에서는 그런 고민을 나눌 수가 없었어요."

전남 광주가 고향인 강씨는 자취방 월세에 학비까지 부모님이 지원해주셨지만 생활비는 스스로 벌고 싶었다. 복학을 앞두고 영어공부 겸 생활비를 벌기 위한 목적으로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했다. 단기알바, 공장청소, 이삿짐센터 짐꾼, 리조트하우스키핑, 단열재 까는 일 등 온갖 극한 직업을 전전하며 10개월간 1500만원을 모았다. 호주에서 그가 했던 일 대부분은 일당이 한국의 2배가 넘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돈 모으는 재미가 있었고 무엇보다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어서 행복했던 시기였다.

2013년 8월 졸업을 앞둔 강씨는 상반기 대기업 공채에서 운 좋게 아모레퍼시픽 영업관리팀 채용연계형 인턴으로 입사했다. 채용연계형 인턴이지만 모두가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것이 아니다. 3개월간 인턴과정 후 평가를 통해 20명의 동기 중 11명만이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상황이었다.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자꾸 '왜'라는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왜 토익을 꼭 900점 넘어야 하나' 하는 사소한 질문부터 '과연 이렇게 살아서 행복할 수 있을까'하는 근본적인 문제까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 과정에서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했는데 대기업이라는 조건에 만족하면서 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끊임없이 의문이 생겼어요. '이렇게 살아도 되나'하는 고민이죠."

직장생활의 모든 것을 경험해 볼 순 없었지만 선배들의 삶을 보면서 그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명확했다. 입사에 대한 확고한 의지도 없는 자신이 진짜 입사가 절실한 친구들의 기회마저 뺏고 있는 것 같아 2개월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는 했지만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왔기에 당장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월 120만원을 받는 공공기관 계약직 위촉연구원 일을 시작했다.

"막연하게 사람들과 감동을 주고받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저란 사람의 성향 자체가 그런 사람인 거죠. 뮤지컬을 봐도 다른 사람들은 박수치고 나오면 끝인데 저는 한 동안 감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때 연기수업을 받기도 했어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그들과 감동을 주고받는 일을 할 때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거죠."

'사람들과 감동 주고받는 삶' 좋아... 청년 토크쇼 '꿈톡' 계기

청년문화기획단체 '꿈톡' 운영자 강주원
 청년문화기획단체 '꿈톡' 운영자 강주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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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2013년 9월 또래 청년들을 모아서 고민을 나눠보자는 취지로 '위즈돔'이라는 소모임 온라인 플랫폼에 '꿈다방'이라는 모임을 개설했다. 처음엔 한두 명으로 시작한 모임은 30회까지 이어졌고 이후 '꿈톡'이라는 대규모 토크쇼로 확대되게 됐다.

2013년 10월 중견 제약회사 영업직으로 입사했지만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심한 스트레스로 2개월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후 대형전시장 알바부터 약물테스트 생동성 알바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거쳐 생계를 이어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 한 줄기 빛처럼 모교인 동국대에서 행정인턴을 해볼 것을 제안 받았다. 꿈다방의 확장 버전인 꿈톡을 2014년 5월 교내 강의실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4명의 연사와 20명의 청중이 모여 조촐하게 첫 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이후 6회는 국회에서, 7~8회는 동그라미재단에서 진행하다 9회부터 최근까지는 강남구 대치사거리 레이지앤트라는 카페에서 월 1~2회 비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꿈톡 외에도 버스킹 하는 뮤지션들과 함께 하는 음악 토크쇼 '꿈톡의 크레파스'와 연예인 또는 명사들과 함께 하는 '기부토크'까지 다른 형식을 가미한 버전으로 확대했다.

"꿈톡은 기업이라기보다 청년들의 소통을 위한 청년문화기획단체라고 생각합니다. 9명의 멤버들이 대부분 직장을 다니면서 활동중입니다. 꿈톡에는 20대부터 40대, 심지어 60대까지 와서 자신의 고민과 꿈을 이야기해요. 청년은 나이로 구분할 수 없으니까요. 연사의 지인으로 오셨던 60대 참가자는 전통술을 빚는 일을 하시는데 자신은 아직도 꿈이 있다며 눈동자가 반짝거렸어요. 나이만으로 그분을 청년이 아니라고 할 순 없죠."

행정인턴 계약이 만료된 후 청소년 진로교육단체에서 4개월간 일했지만 다시 퇴사했다. 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않느냐는 질문에 강씨는 꿈톡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의 여유가 있는 파견직이나 임시직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경력이 없으니 취업은 더욱 힘들었다. 급기야 은행 청원경찰 생활을 7개월간 이어나가면서 꿈톡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때 멤버들과 함께 공동집필한 책 <우리는 부끄러운 청춘으로 살 수 없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꿈톡 참가자들이 많아지고 활동영역이 커질수록 그들만의 공간에 대한 요구가 절실했다.

활동 3년만 카페 통째 인수받아... 10월말 본격 가동

주변 지인들에게 꿈톡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책 한 권으로 한국판 <빨간클립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캐나다의 한 청년이 펜 한 자루를 물물교환해 2층집과 바꾼 프로젝트였다. 한권의 책은 9번 물물교환이 이뤄져 현재 시가 150만원 상당의 해밀턴 재즈마스터시계로 바뀌었고 이들의 활동을 눈여겨봐왔던 카페 주인이 10번째 물물교환으로 카페를 꿈톡에게 넘기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카페 운영권을 넘겨받을지는 생각도 못했지만 2년반 동안 꿈톡을 진정성 있게 이끌어온 보상 같아서 너무나 감사했어요. 잦은 퇴사로 저를 끈기 없는 사람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청년들이 자신의 주도권을 갖게 되면 잠재력이 터져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청춘이라면 돈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꿈톡의 사명이 '청년이 청년다운 세상을 만들자'입니다. 청년들이 자기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응원합니다. 그런 친구들이 대부분 행복하게 사는 것을 봅니다."

강씨는 현재 근무중인 공공기관 파견직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퇴사 후 인수받은 카페에서 이달 31일부터 꿈톡만의 공간을 오픈할 예정이다.

강씨는 얼마 전 모르는 청년으로부터 '회사에 퇴사를 통보하려는데 이 결정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다. 자신의 퇴사 여부조차 모르는 이에게 물어볼 정도로 인생의 주도권을 놓아버린 이 시대 청년들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성세대들도 왜 참지 못하고 고통을 견디지 못하느냐고 타박만 하면 청년들과 소통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 인간답게 사는 것, 자아를 찾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청년 세대를 이해 해달라고 했다.

"연봉이나 근무여건이 나쁘지 않은데도 막연히 퇴사 후 다른 뭔가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는 심리로 퇴사한다면 분명 후회합니다. 퇴사 후에 아무것도 안 생깁니다. 똑같은 나날들이 반복되고 후회하고 다시 취업준비해서 더 나쁜 조건의 회사에 입사하죠. 내가 이 회사를 다니다가는 죽을 것 같다거나 다른 해야 할 일이 명확한 경우가 아니라면 퇴사는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선택와 결과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꿈톡이 주도한 2016년 청년광복페스티벌.
 꿈톡이 주도한 2016년 청년광복페스티벌.
ⓒ 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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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청년단체, #퇴사,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청년 진로,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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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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