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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정교육이 잘 못 됐다

중국사람 표정
 중국사람 표정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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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를 가지고 중국사람을 상대해 본 한국사람은 중국사람이 의뭉스러워 속을 알 수 없으니, 절대로 믿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중국사람은 잘 속이니, 조심하라고 하는데 이건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중국사람이 특별히 한국사람만 속이는지, 아니면 한국사람이 어리숙해서 중국사람에게 속는 건지 하는 부분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사람은 중국사람끼리도 잘 속입니다. 특별히 한국사람만 속이는 건 아닙니다.

참고1
중국에서 서로 깊은 신뢰가 쌓였을 때 서로를 형제라 부르며, 두 사람은 형제꽌시를 맺었다, 라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01 중국인의 꽌시 한국인의 착각'  (서로 자식을 책임지는 의형제 꽌시)를 참조하세요.
중국사람은 형제꽌시(참고1)가 아닌 사람과 거래를 하거나 같이 일할 때, 내가 상대방을 속이거나, 상대방이 나를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니까 중국사람은 살면서 서로서로 속이는 게 자연스러운 세상 이치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제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소개하면서 중국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중국 내 한국회사에 근무하는 젊은 한국 여직원 이야기입니다. 젊은 여자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미용에 관심이 많아, 회사 부근에 있는 조그만 뷰티숍에서 화장품 구매 조건으로석달 동안 얼굴 미용 관리를 받기로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뷰티숍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한달 보름이 지나 뷰티숍에 가보니 가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뷰티숍 사장은 연락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야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흔한 사기 사건이지요.

그래서 사귀는 중국 남자친구에게 사건 전말을 얘기하며, 위로해 주기를 바랐는데, 중국 남자친구가 위로는커녕 "너는 도대체 한국에서 어떻게 가정교육을 받았기에 이런 일을 당하냐"며 화를 내서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한국 여직원은 그러지 않아도 뷰티숍 중국 사장에게 속아 기분이 안 좋은데, 중국 남자친구가 속은 자신이 나쁘다고 말하며, 덧붙여 한국 부모님 가정교육까지 들먹이니 더 이상 이런 사람과 만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중국 남자친구는 왜 한국 여자친구에게 "네가 사기를 당한 건, 중국 뷰티숍 사장이 나쁜 게 아니라, 속은 네가 현명하지 못한 거고, 또 네가 속은 건, 한국에서 자라며 가정교육을 잘못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을까요? 한국 여자친구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중국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 어머니와 아기
 중국 어머니와 아기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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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어머니가 자식에게 매일 하는 말 '남에게 속지 마라'

한국 어머니가 자식을 키우면서 자주 하는 말은 '경우 바르게 살아라',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후에 네 눈에 피눈물 난다'처럼 대체로 남의 입장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정교육이 잘못 됐다'라고 말하지요.

이런 가정교육 영향으로, 한국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 때문에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은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이게 아닌데 하는 찜찜한 기분이 남게 됩니다.

중국 어머니가 자식을 키우면서 자주 하는 말은 '남에게 속지 마라'입니다. 중국 어머니의 '남에게 속지 마라'라는 말은 두 가지 부분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남 즉 나와 형제꽌시가 없는 사람은 모두 나를 속이니까 세상 모든 사람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부분입니다.

둘째는 남이 나를 속이면 나도 남을 속여야 하는지, 아니면 남이 나를 속이더라도, 나는 남을 속이지 말아야 하는지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첫째 부분,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속인다는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중국 어머니는 아기가 말을 알아들을 때쯤 제일 먼저 해주는 말이 '남에게 속지 마라'입니다. 더불어 남에게 속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얘기해줍니다. 철들면서부터 매일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란 중국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세상 누구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이 나를 속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국사람은 속지 않기 위해 아무리 조그만 일이라도 거듭 심사숙고해서 결정합니다. 어떤 일이든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긴 시간이 걸리지요. 그리고 그렇게 신중하게 결정하였는데도 결국 남에게 속았을 경우,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중국사람의 사고방식은 한국사람과 전혀 다릅니다.

한국사람은 먼저 자신을 속인 상대방을 실컷 욕한 다음, 속은 자신의 처지를 후회합니다. 하지만 중국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속이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자신을 속인 상대방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어머니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속지 말라고 했는데도, 남에게 속은 자신이 못났다며 자신을 탓합니다.

이런 이유로 위의 이야기에서, 중국 남자친구는 뷰티숍 사장이 손님을 속이는 건 당연하기에, 속은 한국 여자친구가 현명하지 못하다고 하면서, '남에게 속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는 한국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참고2
오랜 세월 동안 생활 체험을 통해 얻은 인생 교훈을 담은 중국 책으로  "명심보감"과 "채근담" 그리고 "증광현문"이 있다. "명심보감"과 "채근담"이 비교적 격조 있는 문장을 모은 품격 있는 책이라면, "증광현문"은 이상적인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실제 사회 현상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어떻게 하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그러기에 "증광현문"엔 격언, 속담, 민간 구전 설화 등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말이 실려 있고, 출처도 유교, 도가, 불교, 도교의 경전 뿐만 아니라 서유기, 삼국지, 수호지 등 다양하다. 명나라 청나라 시대 민간에서 어린이에게 반드시 읽힌 필독서로, 지금도 중국에서 어머니가 자식에게 반드시 읽히는 책이다. 또한 "증광현문"의 많은 글귀가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중국 인생 교훈 책 증광현문(참고2)에 "산에는 곧은 나무가 있지만, 세상에는 곧은 사람이 없다(山中有直树,世上无直人)"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정직한 사람이 없다는 걸 분명하고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었는지 "불가피하게 어떤 사람을 믿더라도, 그 사람이 속일 때를 대비한 대응 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莫信直中直,须防仁不仁)"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죽어도 남을 믿지 말라는 이야기지요.

계산은 선금입니다

중국에는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내가 속이지 않았고, 당신이 속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많이 있습니다.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재래시장에 가지고 와서 파는 농민은 계량기를 사용하여 과일과 채소를 팝니다. 한국처럼 과일 한 개, 두 개, 채소 한 단, 두 단 단위로 물건을 팔지 않고, 중국에서는 모두 한 근, 두 근 단위로 계량하여 물건을 팝니다.

파는 사람이 속이지 않는다는 걸 계량기를 통해서 사는 사람에게 확인시켜 주는 거지요. 그리고 당연히 재래시장 입구와 출구에 별도의 기준 계량기가 있어 손님은 자기가 산 물건의 양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재래시장에서 계량기를 사용하여 채소를 파는 모습
 재래시장에서 계량기를 사용하여 채소를 파는 모습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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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파는 상가에서도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장이 직접 가게를 운영하지 않는 경우, 물건을 파는 업무와 물건값을 받는 업무가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건을 파는 직원과 물건값을 받는 직원이 다른 거지요.

예를 들어 손님이 옷을 파는 상가에서 물건을 사려면, 먼저 여러 가게를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른 다음, 그 가게 직원과 흥정을 해 물건값을 정합니다. 그러면 가게 직원은 현금수납증(现金缴款单)에 상품명과 가격을 적어 손님에게 줍니다.

현금수납증을 받은 손님은 상가 안 다른 장소에 있는 현금수납처(收银台)에 가서 현금을 지급하고, 현금수납확인증을 받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물건을 사려는 가게에 가서 현금수납확인증을 직원에게 주고 물건을 받습니다. 일반 기업처럼 상품과 현금을 분리해서 관리하는 거지요.

물건값을 받는 현금수납처 모습 (사진 오른쪽)
 물건값을 받는 현금수납처 모습 (사진 오른쪽)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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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요금, 수도요금, 가스요금도 대부분 선금입니다. 한국처럼 한 달 기준으로 기 사용량을 측정하여 요금을 내는 게 아니라, 필요한 만큼 미리 선금으로 구매하여 계량기에 선금 금액을 등록해서 입력된 양 만큼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중국에 사는 한국사람이 이런 요금납부 방식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한밤중에 전기가 끊어지고, 반찬을 만들다 가스레인지 불이 꺼지고, 목욕하다 물이 안 나오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개인이 사용하는 핸드폰 요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달 치 요금을 먼저 내야만,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요금 납부일을 기억하지 못하면, 갑자기 전화가 불통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중국에는 일상생활에서 서로 속일 수 없도록 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한국은 가격을 흥정하고 중국은 가격을 토론한다

제가 중국친구와 택시를 타고 가다 겪은 일입니다. 가고자 하는 행선지가 1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여서 택시를 타기 전에, 미리 택시기사와 요금을 흥정해야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곳에 몇 번 가 봐서 요금이 얼마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기사가 제가 외국인이라는 걸 눈치챘는지 터무니없는 바가지요금을 말해서, 한국사람인 저는 당연히 화를 냈고, 그래서 저와 기사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중국친구는 이러는 저를 말리며, 조용히 다시 택시기사와 적정한 가격을 흥정해서 결국은 그 택시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러면 택시기사가 나중에 다른 손님에게 또 바가지를 씌운다며 화를 풀지 않자, 중국친구는 그럴 필요 없다며 중국사람 입장에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중국사람은 남을 속이는 게 당연하기에, 누가 뭐라 해도 기사는 앞으로도 계속 손님에게 바가지요금을 말할 거니까, 저 보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말랍니다. 제가 이런 중국 사고방식을 도무지 이해 못 하겠다고 하자, 중국친구는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습니다. 

중국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속이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속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상대방에게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답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나를 속이려 했는데, 내가 미리 알아채고 속지 않을 경우, 속지 않은 자신에게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기까지 한답니다.

한국사람이 중국에서 물건을 살 때, 가게 주인이 제시한 가격이 터무니없게 높으면 한국사람은 화를 내거나, 비웃는 표정으로 주인에게 무시하는 시선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은 사실 중국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흥정'의 의미와 중국사람이 생각하는 '흥정'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가격을 다시 제시해서 서로 흥정하면 됩니다. 중국에서 흥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한국에는'흥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말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라.','흥정하는 맛에 물건 산다.','깎는 재미에 물건 산다' 등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흥정'은 치열하게 물건값을 깎는 행위가 아니라, 재미있고 즐겁게 물건을 산다는 낭만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흥정'이라는 글자 그대로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흥이 나서 정을 나누는 거지요.

중국에서는 '흥정'을 토가환가 (讨价还价)(討價換價), 강가(讲价)(講價)라고 합니다. 토가환가 (讨价还价)(討價換價)는 서로 가격을 토의하여 원래의 가격으로 되돌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강가(讲价)(講價)는 서로 가격에 관해 연구한다는 의미입니다.

중국에서는 가게 주인이 받고 싶은 최고의 가격을 제시합니다. 그러면 손님은 당연히 주인이 말하는 가격은 나를 속이는 가격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다시 제시합니다. 이렇게 서로 토의하고, 연구하여 상품의 원래 가격으로 되돌리는 일이 흥정입니다.

그래서 중국사람은 아주 작은 물건을 거래하더라도, 주인과 손님이 진지하고, 치열하게 상의하여 최종 가격을 결정합니다.

바둑을 두는 중국사람
 바둑을 두는 중국사람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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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을 구매하는 일 뿐 아니라, 일상의 계약, 회사의 업무, 사업상의 계약 등등 모든 거래가 위와 같은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한국사람이 중국사람과 경제적이든 비경제적이든 어떤 일을 거래하면서 속았다면, 중국식 흥정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람이 운이 없어, 나쁜 중국사람을 만나 속은 게 아닙니다. 중국식 흥정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속은 거고, 한국식 흥정 방식으로 중국사람과 거래하면 한국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속게 됩니다.

중국사람에게 과거에 속았다면 그리고 미래에 속게 된다면, 속인 중국사람을 탓하지 말고, 중국 어머니의 '남에게 속지 마라'라는 말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런 중국사람의 사고방식은 '옳다', '그르다' 라는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세상 사는 이치로 생각됩니다.

이번 회에는 '내가 속다'라는 주제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다음 회는 '내가 속이다'(중국여행객은 왜 한국백화점에서 유럽 브랜드 상품을 살까)라는 주제로 찾아 뵙겠습니다.


태그:#꽌시, #중국, #중국사람, #중국문화, #중국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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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사람이야기>,<중국인의 탈무드 증광현문>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 산동성 중부 도시 한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 연구>가 있다.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방식의 근저에 있는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중국인과 대화하고 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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