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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학교 수업. 장병연 사무국장과 보조 강사, 학생이 토마트 소스를 만들고 있다. 이날의 요리는 '이탈리안 미트볼'
 요리학교 수업. 장병연 사무국장과 보조 강사, 학생이 토마트 소스를 만들고 있다. 이날의 요리는 '이탈리안 미트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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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지도 좁지도 않은 50여 평 맞춤한 공간. 단정해 보이는 하얀 가운에 주황색 앞치마를 두른 아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창 말 많은 중·고등학생 30여 명이 한 곳에 모여 있다 보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왁자지껄했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조잘댔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무척 진지했다. 자세히 보니 눈에 눈물이 고인 아이도 있고 아예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었다. 서툰 솜씨로 양파를 썰면서 흘리는 값진 눈물이었다. 아이들 사이사이 어른도 끼어 있었는데, 그들도 아이들 못지않게 바빠 보였다. 아이들이 손가락이라도 벨까봐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요리 강사 칼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칼질 몇 번에 어른 주먹만 한 양파가 가루가 되다시피 하는 것을 보니 고수인 게 분명했다. 혹시, 음식 만들기로 잔뼈가 굵은 요리계의 절대 고수가 아닐까!

"하하 요리사는 아니고, 취미로 요리하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이 부탁해서 오늘 하루 요리 강습하러 왔어요.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이쪽은 제 아내고요. 집에서도 요리는 주로 제가 하고, 아내는 지금처럼 보조합니다."

이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고수는커녕 요리계에 발도 들이지 않은 완전 아마추어였다. 그러나 기자의 눈에 비친 그의 요리 솜씨는 굉장한 수준이었다. 알고 보니 아이들 사이사이에 있는 보조강사들도 '꿈★담 자연요리학교 '를 만든 장병연 사무국장 부탁을 받고 기꺼이 달려온 마을 주민들이었다.

장 사무국장에 따르면, 요리 강사는 주로 요리를 직업으로 하는 전문 요리사나 요리학원 강사다. 사실 이날 아이들을 지도한 사람도 '이탈리안 미트볼'이라는 특별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 초청한 무척 특별한 자원봉사자였다.

요리 강습 메뉴는 비빔밥에서 자장면, 돈가스, 치즈 오믈렛 등 무척 다양하다. 강습이 끝난 뒤 품평회를 하면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남은 음식은 집에 싸가기도 하는데, 아이가 만든 음식을 맛본 엄마들이 장 사무국장한테 "감사하다, 감격스럽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주기도 한다. 장 사무국장은 "이럴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며 환하게 웃었다.

"패스트푸드보다 직접 만든 요리가 더 맛있다는..."

눈물나는 양파썰기.
 눈물나는 양파썰기.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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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썰기. 이날의 요리 '이탈리안 미트볼'을 만들기 위한 필수 재료가 양파다.
 양파썰기. 이날의 요리 '이탈리안 미트볼'을 만들기 위한 필수 재료가 양파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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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사무국장이 '꿈★담 자연요리학교 '를 만든 이유는 요리로 생태교육을 하기 위해서다. 꿈의학교 설립 기획안에는 '진로체험 학습과 함께 밥상머리 예절 교육을 하기 위함'이라 적혀 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궁극적인 목적은 '생태교육'이었다.

"요즘 아이들,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에 길들어 있잖아요. 이런 아이들한테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패스트푸드보다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이 훨씬 맛있다는 걸 알려 주는 게 진짜 목표죠. 물론 아이들 진로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줄 목적도 있어요. 밥상머리 예절 교육도 중요하고요."

곧바로 '이 학교 잘 되면 맥도날드 물리칠 수 있느냐?'고 농담 반 진담 반 물었다.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는지, 장 교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중요해요. 그래서 강사들이 이 문제 굉장히 강조합니다. 우리가 키운 재료로 직접 만들어 먹자고, 라면 끓이지 말고 된장찌개 끓이자고. 당장 패스트푸드 소비를 크게 줄일 수는 없겠지만, 이런 교육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스스로 만들어서 먹는다는 게, 스스로 만들어서 누군가를 먹인다는 자체가 굉장한 기쁨이거든요."

"특히, 자아가 형성되는 청소년기에 하는 교육이라 효과가 클 것이라 봅니다. 꿈의학교에서 배운 요리가 이 아이들에게 큰 보탬이 되리라 생각해요. 요리할 줄 아니까, 귀찮다고 햄버거나 사 먹고 라면이나 끓여 먹고 이러진 않을 거예요. 요리사가 꿈인 아이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고요."

(사)자연생태교육연구소에서 '꿈★담 자연요리학교'를 설립해 학생을 모집했으니, 이 학교는 형식만 놓고 보면 '아이들이 찾아가는 꿈의학교'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니 '아이들이 만든 꿈의학교'라 해도 될 만했다. 아이들 필요를 적극적으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만들기 전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요리가 가장 많이 나왔어요. 이게 요리를 하는 꿈의학교를 설립한 결정적 계기죠. 처음 계획은 텃밭에서 직접 가꾼 재료로 요리하는 것이었는데, 사실 그렇게는 못하고 있어요."

"수업 장소가 중요, 요리 기구와 안전 장비 완벽해야!"

아이들이 미트볼 반죽을 만드는 모습. 미트볼 주 재료는 고기와 양파, 우유에 불린 빨가루 등이다.
 아이들이 미트볼 반죽을 만드는 모습. 미트볼 주 재료는 고기와 양파, 우유에 불린 빨가루 등이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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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에 구운 미트볼(완자)을 미리 준비한 토마트 소스에 넣고 있다. 이 소스에 넣고 약한 불로 15분 정도 끓여야 요리가 완성된다.
 오븐에 구운 미트볼(완자)을 미리 준비한 토마트 소스에 넣고 있다. 이 소스에 넣고 약한 불로 15분 정도 끓여야 요리가 완성된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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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를 방문한 날은 지난 22일(금)이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수업이 이루어지기에, 그 날짜에 맞추어 방문했다. 수업 장소인 군포 평생학습원 요리 강습실은 훌륭한 공간이었다. 각종 요리 장비를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내부 장식도 '요리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깔끔했다. 장 사무국장은 수업 공간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일단 수업 장소가 완벽해야 할 것 같아요. 요리 장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고 오븐 같은 화기를 사용하니 안전 장비도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거의 완벽하게 갖춰져 있어요. 이런 곳을 군포시가 무료로 빌려줬으니 우리에게는 정말 행운이죠. 안전 보험에 들었지만, 그래도 불안해서 보조 강사까지 둔 거예요. 이야기하다 보니 '안전'이 가장 힘든 일이네요. 아이들이 손을 데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요리가 최근 들어 인기를 끄는 분야다 보니 학생을 모으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30명 모집하는데 50명 넘게 지원해 20여 명 정도는 대기자로 두어야 했다. 중학생이 22명, 고등학생이 8명인데, 요리에 관심이 있어 온 아이도 있고 요리사가 꿈인 아이도 있다. 요리 과학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온 중학생도 있다.

장 사무국장 말대로 아이들이 꿈의학교에 온 이유는 다양했다. 요리에 관심이 있어서 온 아이도 있고, 요리에 관심 많은 친구를 따라 특별한 목적 없이 지원한 아이도 있다. 반면, '요리 연구가'라는 구체적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온 아이도 있었다.

"엄마한테 멋진 생일상 차려 주는 게 꿈"

왼쪽부터 특별강사 이은태, 김병연 꿈의학교 사무국장, 김선영(이은태 강사 부인)
 왼쪽부터 특별강사 이은태, 김병연 꿈의학교 사무국장, 김선영(이은태 강사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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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왔는데, 샘(선생님)과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잘해줘서 계속하고 있어요. 대학은 컴퓨터 쪽으로 갈 생각이고, 요리는 그냥 취미로 하려고요. 설거지 정도는 도와준 적 있지만, 집에서 요리를 해본 적은 없어요. 엄마 생일이 8월인데 여기서 배운 거로 멋진 생일상 차려 주는 게 꿈이라면 꿈이죠."
- 이태현(남, 고3)

"엄마가 배워 보라고 해서 오게 됐어요. 요리하는 거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요리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어요."
- 김다윤(여, 중3)

"제 꿈이 요리 연구가예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한테 요리를 배웠는데, 정말 재미있어서 요리 연구가라는 꿈을 갖게 됐어요. 집에서도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이에요. 볶음밥도 해봤고, 엄마가 아플 때 죽도 끓여줬고요."
- 김나윤(여, 중3)

"제가 요리에 관심 많다는 것을 알고는, 엄마 친구가 추천해서 오게 됐어요. 여기를 마치고 요리 학원도 다닐 계획이에요. 그렇다고 꼭 요리사가 되겠다는 건 아니고요. 하다 보면 요리사가 될 수도 있겠다 싶긴 해요."
- 박현서(여, 고1)

아이들은 아직 요리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생존기술'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넌지시 말해 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이들 스스로 터득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에서다.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 아예 모르는 게 더 나을 성싶기도 했다. 긴장한 상태에서 눈을 부릅뜨고 배우기보다는 놀이처럼 가볍고 즐겁게 배우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어서다. 사자가 놀이하면서 생존기술인 사냥을 배우는 것처럼 말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요리 꿈의학교가 대박이 나면 맥도날드를 정말 물리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울렸다. 만약, 요리가 수학, 영어처럼 중요한 과목이 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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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꿈★담 자연요리학교 , #꿈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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