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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0일 인도양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국적 원양어선 광현 803호에서 베트남 선원 두 명이 한국인 선장과 기관장을 살해한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혹자는 밀양이나 가덕도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동남권 신공항 발표를 앞두고 여론의 관심을 돌려보려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실 사건 발생 직후 종편을 필두로 한 언론들은 20년 전 유사 사건까지 들춰내며 선정적인 보도를 쏟아내기에 바빴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사건을 다룬 대부분의 언론들은 '선상반란'이라는 단어로 사건을 정의했다.

이유야 어떻든 이 사건은 선원 노동자 인권 실태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고 있다. 광현 803호에서 살인사건 피의자들을 제압하고 생존한 항해사 이모(50)씨는 이번 사건 원인을 소통 부재와 선장의 권위의식, 비인격적인 대우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했다.

경찰이 살인 피의자들 신병을 확보하기까지 홀로 운항했던 항해사 이씨는 동료였던 선장과 기관장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막을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한 이유가 인권침해였음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5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씨는 "평소 선장이 선원들에게 욕을 많이 했다. 특정인에게 너 왜 일 못하냐고 한 것이 아니라 이름을 잘 못 외우니까 무조건 욕설부터 했다"며 "선원 입장에서는 다 자신한테 그러는 줄 알고 한꺼번에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또, 그는 "피의자들이 '문제 선원'은 아니었고, 다 열심히 하는 친구였는데 안타깝다"며 "선장 등이 좀 더 선원들을 따뜻하게 해줬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선장과 기관장을 너무 지독한 방법으로 살해한 그들도 피해자일 수 있지만, 법이 정한 죄를 합당하게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이번 같은 사건을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외국인 선원과 한국인 선원이 그 나라의 간단한 인사나 이름 정도는 불러주며, 서로의 문화와 인격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현호 승선인원은 선장, 항해사, 기관장 세 명의 한국인 선원을 비롯해 베트남 7명, 인도네시아 8명 등 총 18명이었다. 그런데 선장은 두 달 넘게 선원 이름을 외우지 못하고, 조업이나 선상생활 도중 욕설을 많이 내뱉었다고 한다.

매일 조업현장을 살피며 감독해야 하는 선장이 고작 15명밖에 되지 않는 외국인 선원 이름을 외우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의아한 일이다.

그것은 한국인 승선 기피로 인력난에 허덕여 다국적 선원 고용이 불가피한 원양어선에서 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자리에는 '언어폭력'만이 있었다니 유감스러울 뿐이다.

이름이란 것이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그대로 불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편의상 편히 부르기 위한 이름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그 이름이 사람을 차별하거나 무시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 대신 '야', '너' 하는 식으로 불렀다면, 그 언어 속에는 인종적 우월감이 섞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를 존중하며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주기 전의 이주노동자는 인격적 존재가 아닌 그저 '노동력'이나 제공하는 '기계'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기계'가 아닌 '노동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주려면, '야'나 '너'가 아닌 부모가 지어준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이름' 혹은 '언어'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인식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살인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건을 보며 선상 살인 사건에서 피해자냐 가해자냐는 식의 접근으로는 문제의 본질적인 면을 풀 수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왜냐하면 '언어폭력'이든, 신체적 폭력이든 비극의 원인을 제공한 '폭력'이라는 폐습이 너무나 공공연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제는 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원인을 단순히 '선상반란'이라고 말하기보다, '선상폭력'이라고 좀 더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를 우리사회가 일상화된 폭력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름을 불러주세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김춘수의 '꽃'에서

덧붙이는 글 | 평택시민신문에도 기고했습니다.



태그:#광양호, #선상반란, #선상폭력,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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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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