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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왼쪽에서 두번째)이 별세했다. 사진은 2008년 1월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우영 팔순 출판기념회'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 전두환 전 대통령 등과 인사하는 모습.
 8일 오전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왼쪽에서 두번째)이 별세했다. 사진은 2008년 1월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우영 팔순 출판기념회'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 전두환 전 대통령 등과 인사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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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방우영 고문님.

당신의 부음을 접한 순간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저도 한때는 조선일보의 애독자였고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며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저는 조선일보를 멀리하게 됐고 이제는 저희 어머니에게 "조중동을 믿지 말라"고 말하는 '안티'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부음은 묘한 기분을 안겼습니다. '최악의 신문을 만든 이가 결국 세상을 등졌구나'라는 통쾌함(?)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그래도 세상을 떠났으면 명복은 빌어줘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한국 언론의 역사를 만드셨다는 점에서 저는 방 고문님의 명복을 빌어드립니다. 문제는 그 역사가 빛나는 역사가 아닌 부끄러운 역사라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는 남아있는 언론인들이 교훈으로 삼아야하는, 정확히 말하면 '반면교사'로 삼아야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방 고문님의 흔적을 잊지 않으려하고 기억하려 합니다.

죽음이 '조롱거리'가 된 게 현실입니다

정재계 거물들이, 언론계 인사들이, 문화계 거물들이 빈소를 다녀갔다고 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방 고문님이 한국 언론의 새 역사를 쓰셨고 아까운 분이 사라지셨다며 애도의 뜻을 표하더군요. 그런데 인터넷상을 보면 애도의 글이 보이지 않습니다. '떡 돌리자'는 말이 나오고 조롱의 글이 나오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여배우의 이름도 거론됩니다.

그렇습니다. 방 고문님은 하늘에서 거물들이 조문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역시 이 나라의 권력이야'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정작 일반인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이자 미움의 대상이었다는 걸 아셔야 할 것입니다. 형식적이라도 애도의 표시를 해야하지만 인터넷의 분위기는 '떡 돌리는 잔치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권력에 기생한 이의 최후라고 말하면서요.

굳이 과거의 행적을 다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누구보다도 고문님께서 잘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역사의 증인'이라는 이름으로 깨끗하게 정리가 됐겠지요. 하지만 고문님께서 분명히 아셔야할 것이 있습니다. 고문님의 행적이 고문님이나 조선일보에는 '영욕의 길'로 여겨지겠지만 언론의 꿈을 키워가고 바른 언론을 지향하려했던 이에게는 '가시밭길'이 되었다는 것으로요.

바른 말 하던 기자들을 한꺼번에 내치고 광주 민주화운동을 폄하하고 전두환 대통령을 찬양하며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고문님의 행동으로 인해 언론은 점점 진실이 아닌 '권력에 기생하고 권력에 참견하는' 세력으로 변해갔고 기자들은 '진실을 알리는 이'가 아니라 '앵무새'가 됐고 '기레기'가 됐습니다. 아무도 언론을 믿지 않는 이 현실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고문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셔야할 것입니다.

이번 총선을 보면 이제 더 이상 국민이 언론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총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언론들은 일제히 반성문을 썼습니다. 단지 예측조사가 틀렸다고 반성문을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민심'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정치인의 이야기에만 집중한,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파고들지 못하고 생각나는 대로만 보도한 그간의 행태에 대한 반성이었습니다.

더 이상 국민은 언론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이미 국민은 언론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다고, 권력에 기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 조선일보가 있었고 고문님이 있었습니다. 고문님이 뿌린 씨앗은 국민의 '언론 불신'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국민은 이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기자가 '기레기'로 전락한 현실, 언론이 '나팔수'로 전락한 현실. 언론이 본 기능을 상실한 역사를 고문님은 쓰셨습니다. 지금 고문님이 귀담아들어야할 것은 명사들의 애도가 아니라 국민들이 고문님의 사망을 슬퍼하기는 커녕 오히려 조롱하는 바로 그 목소리입니다.

고문님은 역사를 쓰셨습니다. 흑역사를.

안타깝게도 고문님은 '존경하는 언론인'도, '존경하는 신문인'도 되지 못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고문님의 삶이 결코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어서 만인의 조롱거리가 됐다는 자체가 이미 실패한 삶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전에 고문님께서 암송하셨다는 창세기 28장 15절을 길지만 인용해보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의 꿈 속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축복. 그 축복을 고문님은 '권력'이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하늘나라에서는 그 권력은 부질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원하신 것이 아닌 엉뚱한 것을 탐냈다는 꾸지람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권력을 탐하지 마시고 힘을 과시하려 하지 마십시오. 세상에서 한 행동들을 참회하고 회개하며 지내십시오. 하늘나라에 먼저 계신 이 땅의 바른 언론인들, 그리고 광주의 영령들에게 참회하고 반성하십시오. 하늘나라가 바라는 것은 바로 당신의 반성, 그리고 회개일 것입니다.

'한국 언론의 역사'를 남기신 고문님. 우리는 고문님의 흔적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잘못된 역사도 어쨌든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 역사를 바른 역사로 고쳐야하는 게 남아있는 언론인의, 그리고 그 언론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무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문님이 남긴 '(흑)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입니다.

부디 하늘에서 '바른 언론'의 모습을 지켜봐주십시오.  



태그:#방우영,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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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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