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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페루 찬차마요시 산라몬 정수장 준공식에서 한 주민이 수돗물을 받아 마시고 있다.
 작년 11월 페루 찬차마요시 산라몬 정수장 준공식에서 한 주민이 수돗물을 받아 마시고 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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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페루 찬차마요시 산라몬 지역 정수장 준공식에서 주민들이 "꼬레아!"를 외치며 환호하고 있다.
 작년 11월 페루 찬차마요시 산라몬 지역 정수장 준공식에서 주민들이 "꼬레아!"를 외치며 환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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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콸콸콸~~~."

수도꼭지를 돌리니 맑은 물이 시원하게 쏟아져 나왔다. 순간 여기저기서 주민들의 만세 소리와 함께 "꼬레아, 꼬레아"가 잇따랐다.

작년 11월 20일 페루 찬차마요시의 산라몬 정수장. 서툰 한글로 "한국 감사해요"라고 쓴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보이고, 한복을 입은 현지인 소녀가 태극기를 들고 흔들기도 했다.

축제분위기로 가득 찬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날은 서울시가 지원한 찬차마요시 정수장 1단계 개선공사의 준공식이 열린 날. 언제나 수돗물을 맘껏 사용할 수 있는 우리에게는 별게 아닐 수도 있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날일 수밖에 없다.

찬차마요시 정수장은 60여년 전에 지어졌으나 제대로 유지·보수가 되지 않았다. 수돗물 공급이 툭하면 끊기기 일쑤였고, 비만 오면 오물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물 상태가 엉망이었다. 오염된 물을 마셔야 하는 주민들 사이엔 유독 심장질환 환자가 많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최근에도 현지 건설사들이 보수에 들어갔으나 부도가 나 중단된 공사를 서울시가 무상으로 마무리해준 것이다.

작년 11월 페루 찬차마요시 산라몬 지역에서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수장 준공식이 열리고 있다.
 작년 11월 페루 찬차마요시 산라몬 지역에서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수장 준공식이 열리고 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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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이미지도 개선하고 기업 활로도 뚫어주고

서울시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잉카의 나라' 남미 페루까지 날아가 정수장을 지어준 데는 찬차마요시의 정홍원 시장(69)과 관련이 깊다.

남미 최초의 한국인 시장인 정 시장은 지난 2012년 여수엑스포에 참가했다가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청, 찬차마요시의 열악한 상수도 사정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한 것.

현지에 전문가를 파견해서 사정을 파악한 뒤 서울시는 이 도시에 대외협력기금(ODA) 10억여원을 투입해 상수도시설을 지어주기로 했다.

시장이 한국인이라지만 굳이 그렇게 먼 나라에 거액의 시설을 해줄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인도적 차원뿐만 아니라 한계에 부딪친 우리나라 상수도 산업 관련 기업들의 사정이 배경에 깔려있다.

초기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됐던 우리나라 상수도 산업은 세계 최고의 수질을 자랑할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으나, 서울을 비롯한 많은 도시들은 투자가 완료돼 더 이상의 성장이 막혀왔다.

서울만 해도 쓰고 남은 물을 인근 지자체에 공급할 만큼 풍족해져 정수장을 오히려 줄여야 할 정도가 됐다. 더 이상 납품할 곳은 없어지고 인력이 남아돌아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민간 기업들이 자력으로 해외사업 진출에 나설 수는 없다. 상수도시설 전체에 대한 운영 경험이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아닌 서울시가 해외 상수도사업을 주도하는 이유다. 전체 운영은 서울시가 맡고 시공이나 납품은 민간기업이 맡는 형태가 된다.

찬차마요시 정수장은 서울시가 전액 대외협력기금으로 지어준 만큼 당장 수익이 있을 수는 없지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경험과 국가 이미지개선 효과를 안겨주고 있다.

산라몬정수장의 시공을 맡았던 한국종합기술 도중호 상무도 "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저개발국가인 만큼 많은 사업 기회가 있지만 우리의 높은 인건비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며 "이번 사업 경험을 기반으로 남미 시장 진출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완공된 정수장은 찬차마요시의 6개 지역 가운데 하나인 산라몬 지역 정수장이며, 서울시는 앞으로 2018년까지 총 18억 5천여만원을 들여 나머지 지역의 정수장도 개선해줄 계획이다.

서울시 자문단이 작년 베트남 후에시의 정수장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시 자문단이 작년 베트남 후에시의 정수장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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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파푸아뉴기니 정수장 개선사업 기술자문에 나선 서울시 기술진이 현지 여건을 둘러보고 있다.
 작년 파푸아뉴기니 정수장 개선사업 기술자문에 나선 서울시 기술진이 현지 여건을 둘러보고 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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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어가는 사업들, 조만간 대박날 수도 

찬차마요 정수장처럼 무상지원 사업으로 시작한 서울시의 상수도 해외수출 사업은 적지 않은 수익을 보는 사업으로 열매를 맺고 있다.

오는 2018년 완료되는 브루나이 PMB섬 교량, 수도 등 인프라개발 컨설팅 사업은 완료될 경우 3.81%의 지분을 갖고 있는 서울시가 5억여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수주했던 파푸아뉴기니 정수장 개량사업의 경우엔 타당성조사와 관련한 기술자문료로 4백여만 원을 받았다. 국가신인도가 낮고 치안이 불안한 탓에 민간업체들이 참여를 포기해 사업이 종료됐지만, 만약 건설이 이뤄졌다면 향후 30여년간 800억 원의 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는 사업이다.

최근 입찰했으나 2위에 그쳐 아쉽게 무산된 인도네시아 정수장 사업은 본 사업비만 3700억원의 대공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종문 서울시상수도본부 대외협력과 과장은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해외수출사업에는 수천억원이 넘어가는 사업들도 많다"며 "그런 사업 한 건이 성사되면 돈도 돈이지만 20-30년간 기업들의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 과장은 이어 "비록 지금은 추진하다 아쉽게 무산되는 사업이 많지만,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조만간 '대박'이 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내가 퇴직하기 전까지 그런 대박사업을 한 건이라도 성사시켜 보는 게 소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상수도 시설 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한 외국인 연수생들이 시설을 견학하고 있다.
 서울시 상수도 시설 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한 외국인 연수생들이 시설을 견학하고 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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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상수도시설 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한 외국 연수생이 시설을 직접 시험해보고 있다.
 서울시 상수도시설 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한 외국 연수생이 시설을 직접 시험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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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해달라" 저개발 국가들로부터 러브콜 쏟아져

서울시의 수돗물 '아리수'에 대한 시 직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수질검사 항목이 163개인 데 비해 서울시는 170개나 된다는 것. 미국도 112개, 일본은 125개에 그친다. 항목 수도 수지만 개별 항목도 WHO 기준보다 훨씬 엄격한 만큼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저개발국의 기술자와 정책결정자를 한국으로 초청해 시설을 견학시키는 연수프로그램도 서울시가 역점을 들이는 사업이다. 서울시 상수도의 발전된 시설과 규모를 보고 하나같이 감탄하고 돌아가 사업으로 이어간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 

베트남의 경우가 적절한 예다. 베트남 중북부도시 후에와 하이즈엉 등에서는 매년 2-3명의 기술자를 서울로 보내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들은 자국에 돌아가도 계속 서울시의 자문을 받고, 서울시의 전문가들도 베트남에 가서 운영 자문을 해주기도 한다.

서울시는 올해 1억원을 들여 후에시의 상수도시설 개선사업을 벌인다. 대부분 일본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베트남 상수도 시장에 서울시가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것이다. 후에와 하이즈엉 외에도 3-4곳이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의 상수도 수출 사업이 알려지자 국내외에서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찬차마요 사업 이후 벌써 주변 남미 국가들로부터 "우리도 해달라"며 관심과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콜롬비아 대사관이 도와줄 것을 요청했고, 수단 대사관에서도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달라고 제의했다. 한국적십자사는 수혜 국가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원조사업으로 정수장 건설을 선택해 서울시에 도움을 구했고, 국제로타리클럽은 우간다 정수장 사업을 같이 하지는 제의를 해왔다고 한다.

백종문 과장은 "1천만 명이나 되는 도시의 식수를 한 기관이 관리 운영하는 나라는 별로 없는 만큼 서울시의 경험이나 운영능력은 경쟁력이 충분하다"며 "국가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기업의 활로를 넓혀준다는 사명감으로 사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태그:#서울'혁신'시, #상수도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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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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