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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 온 이 동네는 유난히 떠돌이 개가 많다. 신도시가 진행되는 곳이라 공사장도 많고, 아무것도 없는 평지도 많다. 사람은 별로 없다.

며칠 전, 길가 코너를 돌다가 하얀 털이 복스럽게 난 떠돌이 개를 만났다.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개가 꼬리를 감추고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참 다행인 하루> 책표지.
 <참 다행인 하루> 책표지.
ⓒ 낮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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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지나가는 경험이었지만 <참 다행인 하루>를 읽으니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부끄럽지만, 지금껏 떠돌이 개의 입장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사는 지 알 수도, 알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할 안미란 작가의 <참 다행인 하루>는 단편동화 모음집이다. 떠돌이 개가 주인공인 '참 다행인 하루'.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지내는 어린이가 주인공인 '태풍이 다녀간 뒤', '앵두나무 옹심이'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참 다행인 하루'는 사흘 만에 식량을 얻었지만 그것마저 편하게 먹지 못하는 떠돌이 개의 하루를 담았다. 개는 빵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고양이를 보고 짖어야 하지만 입에 문 빵이 떨어질까 봐 그냥 달린다.

오랜만에 얻은 식량에 감사하며 환상적인 봄비를 맞으며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이젠 떠돌이 개 네 마리가 동시에 덤빈다. 싸우려는 개들을 피해 도망치지만 뒷다리에 깊은 상처가 난다. 빵은 반에 반쪽만 남은 상황.

'나를 안전하게 품어 줄 곳. 딱 그곳에 가는 길만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걸으면 된다. 피가 난다고 걱정할 것 없다. 그런다고 피가 멈추는 게 아니니까. 그냥 가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 나는 걷고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걷고 걸어서 거기에 닿았다. 낡은 가구며 부서진 합판 따위를 쌓아 두는 곳.' - 57쪽

겨우 안식처인 낡은 소파 틈으로 들어가려는데, 아직 샴푸 냄새가 가시지 않은 버려진 개가 그 안에 있다. 개는 공격하려고 으르렁대다 빵을 떨어뜨리고…. 버려진 흰 개는 떨어진 빵을 잡는다.

떠돌이 개만 보면 무서워하던 내가 부끄러웠다. 특히,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게 된 어린 개에게 빵과 체온을 나누는 모습을 보니 숨고 싶을 정도. 주인공 개는 비슷한 처지의 개를 이해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도와준다. 사람은 어떤가.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한 이를 두고 계산하지 않는가. 개를 의인화한 이 동화를 읽고 나니,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입장도 느끼게 된다.

'흥, 내가 어떻게 지킨 빵인데! 뺏길 수 없어. 아냐, 나는 힘이 빠졌어. 흰 개는 잠시 그러고 있었다. 나 같으면 얼른 빵을 삼켜 버리거나 그대로 물고 달아날 텐데. '바보. 아직 생각 버리기 연습이 안 됐어.'

나는 버림받은 흰 개가 가여웠다. 나도 앞발 하나를 뻗어 빵을 눌렀다. 흰 개와 발끝이 닿았다. 흰 개가 물었다.

"조금…… 먹어도 돼?"

이런, 나더러 뭘 생각하라는 거지?' - 61~62쪽

나머지 두 편 '태풍이 다녀간 뒤', '앵두나무 옹심이'는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하루를 보내는 씩씩한 어린이들이 주인공이다. '태풍이 다녀간 뒤' 주인공 우람이는 태풍 때문에 학교가 휴교령을 내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수돗물 관리 공무원인 엄마는 비상근무다. 아빠도 갑자기 휴가를 낼 수 없는 상황.

집에 혼자 남은 우람이는 친구를 찾아 동네를 다니다가 꼬마 아기를 만난다. 태풍이 엄마인 꼬마 아기도 우람이와 같은 처지. 바쁜 부모를 이해하는 두 친구는 신나게 하루를 보낸다. 아이만 혼자 두고 출근해야 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하지만 아이는 어른들의 생각과 달리 잘 지낸다.

'나는 뱅글뱅글 돌면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머릿속이 팽글팽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씩씩하게 지내기로 엄마 아빠랑 약속한 몸이다.
"정신 바짝 차려!"' - 29쪽

'앵두나무 옹심이' 주인공인 성민이는 시골에서 치매 옹심 할머니와 비슷하게 생긴 또래 친구인 옥심이를 만나 특별한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안미란 작가는 "만약 누군가 '쪼그만 게 외롭긴 뭐가 외로워?'라고 하다면 그 사람은 아직 뭘 잘 모르는 사람"이라며 "혼자 집을 본 나를, 전학 간 첫날 친구를 사귄 나를, 비가 와도 한바탕 잘 논 나를, 오늘 하루도 잘 자라는 나를 칭찬해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평범한 하루가 특별하게 변하는 날, 참 다행인 하루를 보낸 주인공들을 보니 나의 하루도 무언가 특별한 것이 생길 것 같다. 이제, 길에서 떠돌이 개를 만난다고 해도 두려워하거나 놀랄 것이 아니라 뭔지 모를 교감을 할 것 같고….

짧은 동화 세 편이지만 다양한 생각을 갖게 한다. 혼자 집을 본 아이의 하루, 떠돌이 개가 보낸 하루, 낯선 곳에서 적응하는 아이의 하루 등 입장에 따라 처한 환경에 따라 다양하다. 여러 상황에 따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화이기도 하다.

안 작가는 <너만의 냄새>,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 <투명한 아이> 등으로 오랫동안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신작 동화집은 '8살부터 만나는 맛있는 이야기' 시리즈로 혼자서 책 읽기 시작한 저학년 아이들이 어려움 없이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읽도록 기획했다.

그만큼, 간결하고 짧은 문장으로 완성된 작품들을 모았다. 하지만 어린 독자뿐만 아니라 어른 독자도 가볍게 읽는 동화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참 다행인 하루 - 8살부터 만나는 맛있는 이야기 l 낮은산 구름모자 1 | 안미란 (지은이) | 김규택 (그림) | 낮은산 | 2016-03-15



참 다행인 하루 - 8살부터 만나는 맛있는 이야기

안미란 지음, 김규택 그림, 낮은산(2016)


태그:#참 다행인 하루, #안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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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유를 꿈꾸는 철없는 남편과 듬직한 큰아들, 귀요미 막내 아들... 남자 셋과 사는 줌마. 늘, 건강한 감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남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수련하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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