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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총선 끝날 때까지 노인정에 절대 가지 마!"
"왜?"
"왜라니 정말 몰라? 요즘 거기 이 당 저 당에서 국회의원 후보들이 인사 온다면서. 만약 그 사람들이 사준 밥이나 돈봉투 받으면 10~50배까지 과태료 내야 해. 아니 100배인가? 아무튼 큰일 나."

지난 27일께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농촌 마을회관 어르신들이 멋 모르고 식당에서 누군가가 사준 밥을 먹고 식대의 몇십 배에 달하는 과태료를 냈다는 뉴스가 나온다는 걸 남편에게 알려줬다. 남편은 "시골 노인네들이 뭘 알아서 얻어 먹었겠어? 과태료는 웬 과태료? 시골이고 도시고 그런 거 안 통해, 법은 법이니깐"이란다.

2만3000원짜리 갈비 먹고 71만원 과태료 내는 사람들

그런데 마침 지난 28일 저녁 JTBC 뉴스를 보니 충남 지역의 한 예비후보가 부적절한 접대를 했고, 큰 금액의 과태료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그 접대를 받은 이들은 2만3000원짜리 갈비를 먹었는데, 과태료로 1인당 71만 원을 내야 한단다(그 예비후보는 후보자 경선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내가 "저거 봐, 뉴스에도 나오네"라고 하니 남편도 되레 신중히 뉴스를 보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나 몰라라 하던 일들이 피부로 와 닿는 모양이다.

남편은 올겨울부터 일이 없을 때 심심하다며 아파트 노인정에 간다. 가끔 가서 바둑이나 장기를 둔다. 한 라인에 사는 이웃이 함께 가자고 해서 가기 시작한 것. 남편은 노인정에서는 자기가 막내라며 한바탕 웃기도 했다.

노인정에 가면 일주일에 한 번은 노래교실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주고받는다. 또 할머니들이 점심을 해줘서 맛있게 먹기도 한단다. 그러면서 남편은 "노인정에도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 다닐만 하네"라고 했다. 나는 그런 남편을 보면서 속으로 '우리 남편이 노인정을 괜찮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 늙긴 늙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화제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총선 예비후보자들이 심심치 않게 인사 온다고 했다. 남편은 노인정을 찾은 A예비후보는 돈이 많은 것 같고, B예비후보와 C예비후보는 어떻다는 등 나름의 평가도 내놨다. 그럴 땐 나도 그런가 보다 흘려들었다. 하지만 예비후보들이 찾아오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젠 총선이 코앞이다. 각 지역에서 공천이 끝나고 후보 등록도 마무리됐다. 후보 등록이 끝났다는 뉴스를 보면서 문득 '우리 남편 당분간 노인정에 가지 말라고 해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남편은 "노인정에선 점심 나가서 안 먹어"라는 반응을 내놨다. 문제가 될 게 없다는 거다. 하지만 난 바로 의문을 제기했다. "배달 시켜서 먹을 수도 있는 거 아냐?" 그러자 남편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왜,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어?"라고 묻자 남편은 이내 "내가 그렇게 생각 없는 사람인 줄 알아? 이젠 바빠져서 노인정에 갈 시간도 없어, 당신 말 듣고 (이웃 지인에게) 이제 노인정 못 간다고 했어"란다. 그리곤 "늙을 수록 아내 말 잘들으면 손해보는 일이 없지"라고 덧붙인다.

다행히도 남편은 조금씩 바빠져서 노인정에 가지 못했다. 부디 이번 선거에선 한국의 수많은 노인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



태그:#노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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