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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2년 부터 오마이 뉴스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 단골로 등장했던 '밥돌이 송인상'
 나는 2002년 부터 오마이 뉴스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 단골로 등장했던 '밥돌이 송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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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내게 무한한 글감을 제공했던 작은 아들 송인상. 산골마을에 살면서 친구가 없어 개 고양이는 물론이고 집 옆으로 흐르는 개울의 가재 버들치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진짜 친구인줄 알고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는 녀석. 그러다가 학교라는 틀 속에서 비로소 '사람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는 녀석.

"엄마가 좋은 이유가 밥 해줘서, 아빠가 좋은 이유 또한 엄마 없을 때 밥 해줘서…"라고 세상에서 밥이 제일 좋다고 했던 녀석. 우리 집 밥돌이 녀석 송인상. 얼마 전 녀석이 살아온 세월들을 글로 옮긴 것을 읽어봤다.

A4 용지로 24장에 깨알같은 글씨로 쓴 녀석의 글을 보면 학교에 들어가 사람 친구를 사귀면서 개·고양이·개구리·곤충들이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친구가 되고 싶은 좋은 선생님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생들은 억압과 폭력과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고지식하게' 세상을 알아간 아들

그 어린 '밥돌이 송인상' 풀무고등학교 학교를 졸업했다. 개갈 안나는 대학진학을 접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그 어린 '밥돌이 송인상' 풀무고등학교 학교를 졸업했다. 개갈 안나는 대학진학을 접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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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을 부추기는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잘나고 못난 층으로 나눠지고 있음을 경험했고, 그 속에서 코피 터지게 싸움을 벌이기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그 무렵 고속철도 개발로 고향이나 다름없는 터전에서 쫓겨나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부모의 끊임 없는 다툼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술과 담배를 시작했고, 여자 친구를 사귀면서 달콤한 첫키스를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충남 홍성에 자리한 풀무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담배를 맡겨놓고 '피우고 싶을 때 찾아가라'는 지혜로운 선생님 몰래 피울 수 있음에도 아침 점심 저녁, 삼고초려로 찾아가 하루에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우기도 했던 고지식한 녀석.

그런 녀석이 얼마 전 탈 없이 졸업했다. 형 송인효처럼 개갈안나는 대학 진학을 접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애비인 내게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만들었다는 <장승아저씨>라는 노래를 들려줬다.

대여섯 살 무렵 부터 형, 인효와 함께 매일 이른 아침, 새·고라니·토끼·곤충 등 녀석의 친구들이 뛰노는 뒷산을 1시간 정도 해찰을 부려가며 걷곤 했다. 그 끝자락,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내려오는 길목에는 장승이 있었다. 녀석들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꼬박꼬박 "안녕하세요, 장승 아저씨"라고 인사했고, 애비인 내가 대신 "오~냐, 우리 인효 인상이 참 착하구나"라고 대답해줬다.

송인상이 두 살때 부터 개 고양이 곤충 산짐승들과 친구처럼 지냈던 고향집.
 송인상이 두 살때 부터 개 고양이 곤충 산짐승들과 친구처럼 지냈던 고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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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향 마을의 지킴이였던 장승 아저씨가 서 있던 곳이며 녀석들의 친구들이 뛰놀던 산길이 고속철도 건설로 죄 파헤쳐지고 망가졌다. 인상이 녀석이 다 커서 형과 함께 고향이나 다름없는 그 마을을 다시 가봤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장승 아저씨'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만들었던 것이다.

얼마전 내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고 있는 인도 기행 책이 나왔는데 녀석을 출판기념회에 모인 사람들 앞에 세웠다. 스물한 살이 돼 가는 녀성기 노래를 하기에 앞서 고향과 개발 그리고 장승 아저씨 이야기를 하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노래를 하면서도 훌쩍거렸고 노래를 듣는 몇몇 사람들도 함께 울었다. 녀석의 <장승아저씨>는 우리의 마음에서 조차 사라져 가고 있는 고향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자리에 있었던, 지금은 없는 마을 지킴이 '장승 아저씨'

매일 아침 인효 인상이를 데리고 산책길에서 산 친구들과 만났다. 그리고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오는 길목에서 만났던 '장승아저씨'. 아이들은 "장승 아저씨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매일 아침 인효 인상이를 데리고 산책길에서 산 친구들과 만났다. 그리고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오는 길목에서 만났던 '장승아저씨'. 아이들은 "장승 아저씨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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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던 장승 아저씨가 있던 곳이 호남고속철도 개발로 이렇게 변했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던 장승 아저씨가 있던 곳이 호남고속철도 개발로 이렇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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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노랫말에는 어린 시절 그 순수한 마음 '변치않겠다고 약속해놓고' 개발로 흉칙하게 변해버린 고향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이 있다. 녀석의 노래말처럼 변치 않겠다는 약속은 '우리들의 거짓말'이기도 하다.

조금 더 편리하고, 조금 더 많이 가지겠다는 욕망으로 들끓는 세상 속에서 '희망'은 무엇일까. 인류의 역사가 그래왔듯이 욕망으로 들끓는 부조리한 세상은 목청 큰 구호로는 바뀌지 않는다. 좀 더 소유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이 바꾸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자식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해코지하지 않고,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가에 따라 세상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라 믿고 있다. 성인이 된 두 녀석이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그 마음이 변치 않길 바란다.

홍성 풀무고등학교 후배 하은이와 함께 부른 녀석의 노래 <장승 아저씨>를 듣다가 오래전 녀석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꺼내 동영상 편집을 해봤다.

▲ 송인상이 만든 노래 <장승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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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장승아저씨, #송인상, #개발, #거짓말,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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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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