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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학생들로 구성된 '안중근 청소년 평화 오케스트라(단장 정경화)'와 '안중근 어린이 합창단(단장 김우섭)'이 17일 오후 서울 중화동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218차 수요시위'에서 가곡 '그네'와 '아리랑' 공연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시민들이 17일 오후 서울 중화동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218차 수요시위'에서 서울 성북구 학생들로 구성된 '안중근 청소년 평화 오케스트라(단장 정경화)'와 '안중근 어린이 합창단(단장 김우섭)'의 가곡 '그네'와 '아리랑'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 권우성
"우리 정부요, 미쳤어요, 미쳤어. 이럴려고 대통령 뽑았어요? 국회의원 뽑았어요? 외교통상부 있어요? 지금도 일본놈 갑장(무장한 호위 병사)새끼 노릇하며 우릴 또 고생시키려고 합니다. 죽으면 죽었지 그 꼴 못 봅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이용수 할머니는 분통을 터뜨렸다. 올해 초, "운동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외쳤던 89세의 이 할머니는 마이크를 손에 꼬옥 쥔 채, 온 힘을 다해 목소리를 높였다.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을 가득 메웠다.



17일 오후 1218번째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비 소녀상' 앞에서 열렸다. 800여 명의 시민들이 이 할머니 주위를 둘러쌌다. 곳곳에서 "할머니 건강하세요",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일본 정부는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하라", "한국 정부는 피해자 명예·인권을 되찾는 일에 적극 앞장서라"라는 구호도 울려퍼졌다.

할머니도 담요 안쪽 깊이 넣어뒀던 손을 꺼내 주먹을 꽉 쥐며 흔들었다. 응원의 목소리를 보낸 이들을 향해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그려보이기도 했다.

이날 할머니의 외침처럼, "역사의 산증인이 여기 있"고, "이용수가 여기 있으"며, "15살에 끌려가 카미카제 부대에 있던 사람이 여기 있"다. 그럼에도 한일 정부는 지난해 12월 18일,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불가역적인 합의문'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광복 후 71년이 지난 2016년 2월 17일까지 수요시위는 끝나지 않고 있다.

"분노, 죄송, 초조... 또 할머니 한 분이 우리 곁 떠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218차 수요시위'가 17일 오후 서울 중화동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린 가운데, 최근 사망한 최모 할머니를 추모하는 꽃이 빈 의자에 놓여 있다. ⓒ 권우성
이틀 전(15일), 위안부 피해자 최아무개 할머니(91)가 세상을 떠났다. 이날 수요시위는 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진행된 첫 수요시위다. 소녀상 앞에 작은 의자에 "할머니 편히 잠드소서"라고 적힌 영정이 놓였다. 시위에 참석한 이들은 보랏빛 백합이 놓인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최 할머니의 혼을 달랬다.

이날 수요시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대학생 프로젝트 동아리인 '평화나비네트워크'의 주관으로 진행했다. 이들은 한일협상 직후인 지난해 12월 30일부터 50일째 소녀상에서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은혜 평화나비네트워크 서울지역 대표는 "이렇게 밤샘 농성을 벌이는 와중에 또 한 분의 할머니가 우리 곁을 떠났다"며 "그럼에도 아직 엉망인 세상을 보니 너무나 분노스럽고, 죄송스럽고, 마음이 초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늘로 가신 할머니께서 우리를 바라보고 응원해줄거라 생각하고 하루라도 빨리 진정한 광복이 올 수 있도록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할머니는 연신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시위에 참석한 시민 한 명, 한 명을 껴안으면서 "여러분들이 있어서 저는 기뻐요"라며 웃기도 했다.

"제가 있으니 여러분들 밤 새가며 지키지 마세요. 부모님들이 얼마나 걱정하겠어요. 나도 너무 마음이 아파요. 밤에 잠이 안 와요. 여기 나오려고 해도 겁이나요. 내가 죄인인가 싶어 여러분 보기 민망해요.

여러분이 뭐하러 소녀상을 지키느라 밤을 새야합니까. 미친 더러운 놈들이 왜 여기 세워진 소녀상에 간섭합니까. 개같은 놈들 아니에요? 저 욕 한 번 해본적 없습니다. 그런데 보자보자하니 안 되겠어요. 우리나라 뭐하는 겁니까. 우리나라 국민들을 왜 고생시킵니까, 네? 국민 없는 대통령이 어딨나요. 국민 없는 나라가 어딨나요. 국민을 봐야지 왜 붓대만 흔들고 있나요."
서울 성북구 학생들로 구성된 '안중근 청소년 평화 오케스트라(단장 정경화)'와 '안중근 어린이 합창단(단장 김우섭)'이 17일 오후 서울 중화동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218차 수요시위'에서 가곡 '그네'와 '아리랑' 공연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이날 수요시위에선 특별한 공연이 진행됐다. 서울 성북구 지역 학생들로 구성된 '안중근 청소년 평화 오케스트라(단장 정경화)'와 '안중근 어린이 합창단(단장 김우섭)'이 이 할머니 옆에서 합동 공연을 선보였다. 

소녀상 옆 빈 의자에 앉아있던 한 초등학생이 홀로 가곡 <그네>를 선창했다. "세모시 옥색치마"로 시작된 카랑카랑한 가사에 플루트 선율이 더해졌고, 차례로 바이올린, 베이스, 첼로 등의 소리가 덧대졌다. 합창단의 목소리도 한 명에서 두 명, 두 명에서 일곱 명까지 늘어나 악기 소리와 조화를 이뤘다.

<그네>가 끝나자 곧바로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합창단의 목소리에 맞춰,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이 할머니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호주에서 온 교수 "포기하지 않고, 침묵하지 않을 것"
동아시아 역사 전문가인 테사 모리스 스즈키 호주국립대 교수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17일 오후 서울 중화동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218차 수요시위'에서 포옹하고 있다. ⓒ 권우성
특별한 손님이 찾아오기도 했다. 동아시아 역사 전문가인 테사 모리스 스즈키 국립대 교수는 이날 시위에 참석해 이 할머니의 손을 붙잡았다. 스즈키 교수는 전날(16일)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나온 스기야마 일본 외무성 심의관의 '위안부 강제 연행 부인' 발언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호주에도 역시 얀 루이라고 하는 93세의 피해자 할머니가 있는데, 아직도 일본 정부의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는 우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사과하고, 여성들이 전쟁 중 강제로 끌려갔음을 인정하라"고 강조했다. 이어 "침묵은 가해자를 지켜줄 뿐 피해자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한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감동적인 말이 있다"며 "(일본이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218차 수요시위'가 17일 오후 서울 중화동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린 가운데, 최근 사망한 최모 할머니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빈 의자에 놓여 있다. ⓒ 권우성
이 할머니의 곁에 선 이는 스즈키 교수만이 아니었다. 많은 초중고 학생들이 이날 수요집회에 참석해 그와 함께 했다. 이 중 중학교 3학년인 신형진, 김혜지양은 "한일 양국 정부는 졸속 합의를 즉각 철회하고 피해자의 요구에 따라 올바르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평택에서 올라왔다. 이들은 이 할머니를 껴안고 난 후 "네 번째 수요시위에 참석하는데, 올 때마다 여전히 상황이 제자리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두 학생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서도 "수요시위가 시작된지 24년이 지났다는 것은 일본과 한국 정부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부끄러워야 할 일이고, 우리는 할머니들께 빚일 지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양은 "한국 사회가 과거청산 문제에 있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 때문에 이런 상황에 이른 것 같다"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듯, 우리도 계속해서 이 문제를 기억하고 마음에 새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양도 "할머니들은 자신의 가장 꽃다운 나이에 고통을 겪으셨고, 그 고통으로 인해 평생 힘든 삶을 보냈다"며 "우리가 추운 날씨 속에서도 수요시위에 참여하는 이유는 슬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218차 수요시위'가 17일 오후 서울 중화동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태그:#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수요시위, #이용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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