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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일주문
 직지사 일주문
ⓒ 여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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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휴일 지인들과 김천에 있는 직지사를 다녀왔다. 우리는 김천역에서 내린 이후 11번 버스를 타고 직지사로 향했다. 김천역과 직지사를 왕복하는 버스는 자주 있었다.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직지사를 창건한 스님은 아도화상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아도화상은 고구려에서 신라로 넘어와서 신라에 불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아도화상이 신라 땅에 처음으로 건립한 사찰은 현재 구미시에 있는 도리사이다.

예전에 '아도화상이 도리사에서 손가락으로 지칭한 곳에 사찰을 건립했다. 그래서 김천에 있는 직지사의 이름이 <직지>'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도리사에서는 김천 방향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당시에는 그 말이 사실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직지사 경내에 있는 설명서에는 '<직지(直指)>라는 이름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직지사 대웅전
 직지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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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대웅전삼존불탱화
 직지사 대웅전삼존불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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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는 황악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시내버스에서 내린 주차장 맞은편에는 식당들이 즐비했다. 주로 산채 정식, 산채 비빔밥 전문 식당이 눈에 많이 띄었다. 우리는 점심으로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반주로는 동동주를 주문했다. 주인장이 도토리묵무침과 배추전을 안주거리로 내어주었다. 동동주에서는 더덕향이 짙게 묻어났으며, 노릇하게 구어진 배추전 맛이 달달하면서도 그만이었다.

직지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동국제일가람황악산문' 현판이 크게 걸려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직지사는 조선 8대 사찰로 중 하나였다. 직지사에서 출가한 큰 스님이 많다. 대표적으로는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직지사에서 출가했다. 

직지사 대웅전을 가는 길에 천왕문과 같은 출입문이 있었다. 직지사 대웅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마주보고 있다. 이들 삼층석탑은 9세기경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추정되며, 1974년 문경 도천사에서 가져와서 이름을 '도천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제60호)'으로 불린다.

직지사 대웅전은 건물 자체가 보물(제1576호)로 지정되어있다. 대웅전 안에는 부처님을 그린 탱화가 걸려있다. 이 탱화의 이름은 대웅전삼존불탱화(보물 제670호)이다. 그림 크기가 높이로는 6m이며, 폭으로는 2m이다. 영조 20년(1744년)에 직지사의 세관 스님을 비롯한 16명의 스님이 그렸다고 한다.

삼존불은 중앙에는 석가모니, 왼쪽에는 약사불,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웅전삼존불탱화에는 삼존불 그림 뒤로는 부처의 수많은 제자들의 모습을 탱화에 담았다. 대웅전삼존불탱화의 빛깔에서 단아하고 엄중한 부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불교 채화미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직지사 비로존 천불상
 직지사 비로존 천불상
ⓒ 여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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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는 비로전으로도 유명하다. 비로전 안에는 천개의 하얀색 불상이 있다. 이들 불상 중 생김새가 다른 동자승 불상이 하나가 있다. 이 불상을 한눈에 알아보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내 눈에는 한 눈에 띄었으나, 우리 일행 중 한 명은 생김새가 다른 불상을 직접 가르쳐주기 전에는 못 찾고 있었다.

황악산 기슭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직지사를 휘감고 내려가고 있었다. 계곡물 소리를 따라서 직자사를 한 바퀴도니, 천년의 역사를 한 바퀴 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경수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hunlaw.tistory.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직지사, #황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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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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