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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출신으로 한국인과 결혼해 다문화가정을 꾸리고 있는 최리디아(34)씨. 리디아씨의 고향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를 만났다. 그런데, 인터뷰가 시작된 지 1시간 만에 무심코 던진 질문 덕분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근데 최씨 성은 누구한테 받은 거예요?"
"아버지요."
"어떤 아버지요?"
"내 친아버지요. 나 고려인이잖아요."

세상에. 다문화여성들이 한국국적을 취득하면서 한국 이름을 사용하게 되면 누군가로부터 성을 받는 게 관례여서 물은 것뿐인데, 놀라운 가족사, 아니, 우리의 역사가 숨어 있었다. 순수 한민족 혈통을 이어온 고려인 4세이면서도 다문화가정이 된 리디아씨의 애달프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스쿨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제트오구즈. 7개의 산봉우리가 펼쳐진 풍경이 유명하다. 사진 속 인물은 리디아씨 가족.
 이스쿨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제트오구즈. 7개의 산봉우리가 펼쳐진 풍경이 유명하다. 사진 속 인물은 리디아씨 가족.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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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의 아빠(증조부)는 고려인 1세예요. 한국 땅에서 태어나 러시아로 간 그 고려인들 중에 한사람이지요. 할아버지는 러시아에서 태어났죠. 그 뒤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쫓겨난 땅 카자흐스탄에서 아버지가 태어났고, 나는 우리가족이 이주해 정착한 키르기스스탄에서 태어났어요.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고려인들끼리 결혼을 했어요. 대학에 다닐 때 나와 사귀고 싶다며 러시아 남자가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고려인은 고려인끼리 결혼을 해야 한다'고 화를 냈어요. 제가 대학에서 '국제 관계와 아시아아프리카역사학'을 전공하면서 한국어 공부도 하자 할머니가 굉장히 기뻐하셨죠. 혈통은 고려인이지만, 말과 문화를 잊어버린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리디아씨는 한국인 선교사와 함께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한 지금의 남편을 운명처럼 만나 조상들의 고국인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것도 아이를 넷씩이나 낳았다.

하지만 순수 한민족 혈통을 지닌 리디아씨는 역설적이게도 다문화가정의 여성이다.

"한국 문화를 잘 모르고, 한국어에 능통하지 않으니 다문화가 맞아요. 슬프지만 또 재미있지요?"

큰딸 은비와 큰아들 민성이가 키르기스스탄의 리시치카버섯을 들고 있다.
 큰딸 은비와 큰아들 민성이가 키르기스스탄의 리시치카버섯을 들고 있다.
ⓒ 최리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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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태어난 곳은 키르기스스탄의 수도인 비슈케크의 알하르차 마을이에요. 교사로 퇴직한 어머니와 동생이 지금도 그곳에서 살아요. 결혼 초기에 고향이 너무 그리워 힘들어하니까 남편이 '그럼 거기 가서 살자'고 해서 갔어요. 하지만 남편 사업이 한국에서는 괜찮은데,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맞지 않았고, 남편도 언어 때문에 힘들어해서 돌아왔어요. 나를 생각해 노력해준 남편이 고마워요.

키르기스스탄도 한국처럼 사계절이 다 있는데, 겨울엔 여기보다 조금 춥고, 여름에는 한국처럼 습하지 않아요.

1991년에 소비에트연방(소련)에서 해체된 뒤 종교의 자유가 생겼죠. 경제체제도 바뀌었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해요. 장단점이 있는 거니까요.

키르기스스탄은 두 번째 스위스라고 불릴 정도로 산이 많아요. 수도인 비슈케크에서 차로 4시간 정도 가면 이스쿨호수라고 엄청나게 크고 매우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데, 이곳도 산위로 올라가야 볼 수 있죠. 올라가다 보면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큰 호수예요. 거기다가 바다 같이 물이 짜서 어떤 곳에서는 몸이 뜰 정도예요. 바닥이 다 보일정도여서 세계에서 바이칼호수 다음으로 꼽힐 정도로 맑은 호수랍니다.

키르기스스탄은 100개의 민족이 모여 살고 종교도 다양합니다. 그러다보니 다툼도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인내하는 마음이 커요. 우리 마을에도 이슬람교, 러시아교 믿는 사람들 다 있는데, 사람들이 굉장히 착해요. 나는 어린시절부터 행복한 기억이 많아요. 학교도 굉장히 기쁘게 다녔죠. 그래서 한국 아이들이 학교를 싫어하는 게 이상해요."

이모가 쓴 시를 묶어 펴낸 시집 <시간이 너를 데려간다>에는 고려인 가족사가 시와 사진으로 담겨있다. 시집 속 사진 중 한 장면으로 왼쪽부터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의 모습.
 이모가 쓴 시를 묶어 펴낸 시집 <시간이 너를 데려간다>에는 고려인 가족사가 시와 사진으로 담겨있다. 시집 속 사진 중 한 장면으로 왼쪽부터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의 모습.
ⓒ 최리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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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끼리도 굉장히 가깝게 지내요. 우리마을에 가면 큰아버지 가족, 이모 가족 모두 살아요. 어려서부터 늘 만나서 사촌들과도 친동생처럼 아주 친하지요. 키르기스스탄은 친척들끼리 굉장히 자주 만나요. 생일에도 모두 모이고,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이 보죠.

2004년도에 결혼한 뒤 지금까지 3번 다녀왔는데, 작년 여름에 가려다가 메르스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어요. 다녀온지 4년도 넘어서 너무 가고 싶었는데, 아이들도 나도 너무 속상했어요.

키르기스스탄까지 직항노선은 6시간 30분 정도 걸리지만, 늘 있는게 아니어서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을 경유해 가면 기다리는 시간까지 10시간 정도 걸려요.

키르기스스탄에 가는 사람 있으면 이스쿨 호수와 제트오구즈에 꼭 가보세요. 정말 아름다워요."
키르기스스탄 지도
 키르기스스탄 지도
ⓒ <무한정보신문>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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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키르기스스탄, #다문화가정, #고려인,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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