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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이여 더욱 분열하라. 지금까지 당신들의 비바람을 막아주었던 지붕엔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벽의 뼈대는 이미 다 녹아 무너지기 일촉즉발이니 삶의 의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어서 나와 각자도생의 길을 택하라. 국민들은 당신들에게 총선승리니 정권교체니 하는 기대는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으니 이것을 떠나는 자, 남는 자 모두 명분으로 삼지 마라.

당신들은 총선승리나 정권교체를 말한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평소 공부에 소홀한 수험생이 시험 며칠 남겨두고 벼락치기 공부로 1등을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처럼 들린다. 야권분열로 총선에서 패배하면 국민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며, 통합만이 살길이라고 외치지 마라. 야권이 사분오열되든 말든 국민들은 아무런 관심이나 걱정이 없다. 단지 당신들만이 당신들의 유·불리를 따질 뿐이다.

당신들이 국민들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이 남아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해라. 이를 위해 당신들에게 필요한 건 거대한 조직이나 치밀한 전략, 전술이 아니라 기초체력이란 것을 명심하라. 운동장에 나가 몇 분 뛰지도 못하는 선수에게 전략이니 전술이니 팀플레이가 무슨 가당치도 않은 말인가.

우리는 기초체력의 중요성을 이미 히딩크를 통해 보지 않았던가. 5대0이라는 모욕적인 별명을 들어가면서도 꿋꿋이 체력단련에 매진했던 리더와 팔로워들이 결국 상상 속에서나, 혹시나 하는 기대 속에서나 바라던 일을 저질렀다. 공부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무리 영어 독해 방법을 익힌들 어휘가 딸리면, 수학 문제 풀이 방법을 익힌들 공식을 모르면, 실전에선 힘도 쓰지 못한다는 걸 당신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당신들이 살고자 한다면 첫 번째 해야 할 임무가 무엇인지 숙지하길 바란다.

당신들에게 필요한 기초체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정을 멀리하는 도덕성, 국민을 위한 봉사심,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다. 나는 이 세 가지가 당신들이 갖추어야 할 기초체력이라고 분명하게 생각한다. 시간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마라. 선거는 4, 5년마다 한 번이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은 없다가 아니라 이번에 안 되면 더 노력해서 다음에 하면 된다. 대구에 김부겸을 보면 알 것 아닌가.

당장 100일 앞을 보고 당신들이 어떤 전략과 전술을 짠다고 한들 관중들이 감동할 것 같은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고 벌써부터 야권통합이라는 전략을 짰다면 잘못 짚었다. 국민들이 더 이상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명심하라.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해선 단체운동보다는 개별 운동 또는 소규모 그룹운동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단체 속에 숨어 대충 넘어가려는 선수들이 조직의 암적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야권분열이 오히려 기대된다. 각자 마음에 맞는 리더와 함께 자신을 정비하고 또한 조직을 정비하다 보면 골리앗이 아니라 다윗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윗들이 힘을 합치면 당신들이 그토록 외치던 총선승리나 정권교체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 국민들은 앞으로 당신들의 행보를 주시할 것이다. 분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나가 아니라 분열을 통해 더 단단한 체력을 기르지 못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자들을 심판 할 것이다. 나는 이번 야권의 분열이 우리나라의 건전한 야권으로 다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특정 계파에 대한 증오나 지지에 앞서 제발 국민을 위해 지치지 않고 뛸 수 있는 선수들이 각 팀에서 선발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들이 훗날 다시 뭉칠 때 히딩크와 선수들이 이루었던 성과를 당신들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남매일 칼럼란에도 실었습니다.



태그:#야권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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