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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술사가 곰브리치에 의하면 실제의 역사는 새로운 장이나 새로운 시작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사란 다수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끊임없는 흐름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어느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역사가 이루어지거나 세상이 바뀔 수도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때로 한 사람의 위대한 천재가 역사를 바꾼 것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입니다. 아무리 위대해 보이는 인물의 업적도 사실은 거대한 흐름과 네트워크 속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정해야 할 것은, 그의 천재성과 초인적 노력이 다음 흐름으로 넘어가는 지렛대나 네트워크 상 집산(集散)의 분기점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이죠.

5박 6일의 베네치아 일정에서 '파도바(Padova)'를 일정에 넣은 것은 바로 그런 존재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Cappella degli Scrovegni)'에 서양 근대 회화의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위대한 프레스코 연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도 몇 번 언급했듯이 미술사가들에 의하면 서양 미술사는 지오토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지오토 이전의 미술사가 시대나 양식으로 구분된다면 지오토 이후에는 작가 개인과 작품이 미술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가 그가 추구한 리얼리티에 대한 개념이 1세기 이후 르네상스의 탄생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책과 화집의 그림들로는 솔직히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치마부에, 두초, 지오토로 이어지는 '마에스타' 시리즈를 비교해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작품들을 공개하고 있지 않았습니다(물론 두치오의 '마에스타'는 시에나에서 따로 만났습니다). 이후 다른 미술관들에서 몇몇 지오토의 작품들을 보긴 했지만 여전히 미술사에서 그의 위치를 가늠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지오토의 프레스코 연작은 그 모든 의구심을 한 방에 날려 주었습니다.

악덕 고리대금업자였던 아버지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헌당한 이 개인 예배당에 서양 회화사의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 스크로베니 예배당 악덕 고리대금업자였던 아버지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헌당한 이 개인 예배당에 서양 회화사의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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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에 언급될 정도로 악독한 고리대금업자였던 스크로베니. 이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그의 아들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아버지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헌당한 개인 예배당입니다. 그런데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일단 입장부터가 조심스럽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입장하기 전, 대기 시간이 있었죠. 인원도 20명 남짓으로 한정되어 있었고, 그 시간도 15분으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 공부가 필수적입니다. 미리 준비해 둔 메모를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또 작품들을 눈으로 익혔습니다.

지오토, ‘성모 마리아의 일생’, ‘예수의 일생’ 연작,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그림의 내용과 묘사도 환상적이지만 가장 먼저 아름다운 파란색이 눈을 황홀하게 합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 스크로베니예배당 프레스코 연작 지오토, ‘성모 마리아의 일생’, ‘예수의 일생’ 연작,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그림의 내용과 묘사도 환상적이지만 가장 먼저 아름다운 파란색이 눈을 황홀하게 합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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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배당에 입장해 천장과 벽들을 장식하고 있는 파란색 배경의 프레스코화를 대하는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지오토 이전의 종교화들이 대부분 황금빛을 그 배경으로 깔고 있는 것에 비해 지오토는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자연의 하늘빛, 파란색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파란색입니다. 이탈리아에 와서 지오토 이전이든 이후이든 수많은 명화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파란색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서양회화사 전체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파란색은, 50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빈센트 반 고흐의 밤하늘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뿐입니다.

 지오토, ‘애도(예수의 일생 연작 중)’,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 애도 지오토, ‘애도(예수의 일생 연작 중)’,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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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셉과 성모 마리아, 예수의 삶으로 구성된 39개의 연작과 마지막 입구 벽을 장식하고 있는 '최후의 심판'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들의 표정과 동작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표정도, 동작도, 생동감 없이 그저 근엄하고 엄숙하기만 했던 그 이전의 성화들과는 분명 다른 경지입니다. 거기다가 완벽하진 않지만 투시도법을 적용한 원근법까지 구사하고 있어서 인물들이 사실적인 공간에 배치되어 있다는 느낌도 줍니다.

인물의 옷자락에는 이전의 중세 회화들에서 볼 수 없었던 음영 처리가 더해져서 입체적인 느낌까지 살렸죠. 그런가 하면 연작 아래 묘사된 14개의 '선과 악의 알레고리'는 중세 고딕 건축의 대리석 조각상들을 회화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왜 서양미술사가 지오토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지 이해되는 순간입니다.

지오토, ‘유다의 배신(예수의 일생 연작 중)’,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배신감, 당혹감, 연민 등의 감정이 묘하게 뒤섞인 예수의 표정이 생생합니다.
▲ 유다의 배신 지오토, ‘유다의 배신(예수의 일생 연작 중)’,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배신감, 당혹감, 연민 등의 감정이 묘하게 뒤섞인 예수의 표정이 생생합니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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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예루살렘의 예배당에서 상인들을 내쫓는 예수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이나 예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가 막 체포되려는 장면은 생생하고 극적인 상황 묘사까지 더해져 있습니다. 배신감, 당혹감, 연민 등의 감정이 묘하게 뒤섞인 예수의 표정, 그에 비해 천연덕스럽기까지 한 유다의 키스, 그리고 분노로 칼을 휘두르는 베드로의 모습과 저 사람이 예수다 하는 듯 예수의 체포를 종용하는 수사관의 모습까지, 그 자체가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입구 벽의 '최후의 심판' 부분은 또 어떻습니까?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사람들의 약간은 희극적인 모습과 근엄한 천상의 모습, 그리고 주문자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예배당 모형을 성모에게 봉헌하고 있는 모습까지, 지오토의 이 작업 이후 작품에 주문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고 하니, 이는 바로 신 중심의 중세에서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로 시대가 이행되고 있다는 증거인 셈입니다. 결국 미술이, 철학보다 앞서서 근대를 지향하고 있었던 것이죠.

지오토, ‘최후의 심판’,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이후 수많은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지오토의 명작입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440)
▲ 최후의 심판 지오토, ‘최후의 심판’,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이후 수많은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지오토의 명작입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440)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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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오토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연작'을 보면서 그동안 화보와 책들을 통해서 미술사 공부를 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깊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한, 여러 한계 때문이긴 했지만, 실물을 보지 않은 미술사 공부는 그냥 백과사전적 지식의 암기일 뿐입니다. 그러면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지오토를, 마사초를, 미켈란젤로, 다빈치, 라파엘로, 카라바조를 접할 수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나아가 유럽 사람들이 결국은,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무시 못할 찬란한 미술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 역시 우리 미술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합니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유럽의 역사는 하나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미술사나 문화사도 그만큼 층위가 깊고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점, 그래서 오늘날까지 여전히 세계 문화 예술을 주도할 수 있는 자산이 풍부하다는 점은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유럽 여행에서 이런 것들을 보고 느끼고 있는지 조금은 아쉬운 마음까지 듭니다.

'스크로베니 예배당'에서 나와 잠시 서성입니다. 원래는 파도바에서의 일정을 하루 종일 잡았는데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감동이 잦아들지 않습니다. 억지로 트램에 올라 '산 안토니오 성당(Basilica di Sant'Antonio)'으로 향합니다.

파도바의 산 안토니오 성당은 비잔틴 양식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 순례지 중 하나입니다.
▲ 산 안토니오 대성당 파도바의 산 안토니오 성당은 비잔틴 양식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 순례지 중 하나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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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안토니오 성당'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초창기 수도사이자 학자로 유명한 성 안토니오의 유해를 모신 장소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 순례지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고색창연한 비잔틴 양식의 성당에서도 흥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당 입구에 서 있는 도나텔로의 대표작, '갓타멜라타의 기마상'도 깜빡 스쳐지나고 말았습니다. 화려한 성당 내부에서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냥 한 바퀴 휘돌아보고 나와 버렸죠.    

갑자기 맥이 탁 풀린 느낌입니다. 이탈리아에 온 지 오늘로 23일째. 밀라노에서 하루 정도 쉬긴 했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많이 지친 것일까요? 아니면 숨쉴 틈 없이 이어지는 미술 작품의 행진에 과부하가 걸린 것일까요? 하지만 그럴 리 없습니다. 이곳까지 어떻게 왔는데, 기운이 빠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 베네치아 때문입니다. 나는 지난 사흘 동안 베네치아의 매력에 완전히 빠지고 만 것입니다.

어차피 오래 있을 수 없었던 '스크로베니 예배당'과 그냥 스치듯 지나온 '산 안토니오 성당'. 중요한 두 일정을 마쳤는데도 아직 오전입니다. 그저 빨리 베네치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파도바에서의 나머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서둘러 베네치아 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산타 루치아 역'에 내리자 마자 바쁜 걸음으로 호텔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산 로코 대신도 회당(Scuola Grande di San Rocco)'으로 향합니다.

24년에 걸쳐 이루어낸 틴토레토의 위대한 업적이 이곳 산 로코 대신도 회당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 산 로코 대신도 회당 24년에 걸쳐 이루어낸 틴토레토의 위대한 업적이 이곳 산 로코 대신도 회당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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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특수한 문화인 '스쿠올라'는 귀족이나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들의 모임으로 일종의 신도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중 세력이 크고 부유한 단체를 '스쿠올라 그란데'라 하는데,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은 자선과 복지의 수호 성인인 성 로코의 이름을 본 딴 '스쿠올라 그란데 디 산 로코(산 로코 대 신도회, 1478년 설립)'의 회당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르네상스 베네치아 화파 최후의 거장, 틴토레토의 기념비적 업적이 있습니다.

(19-2 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지오토, #스크로베니예배당, #파도바, #베네치아, #이탈리아미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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