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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평 남짓한 움막집에는 비디 담배와 성냥, 사탕 몇 꾸러미와 과자 몇 봉지 진열해 놓은 작은 점포였다.
 두 평 남짓한 움막집에는 비디 담배와 성냥, 사탕 몇 꾸러미와 과자 몇 봉지 진열해 놓은 작은 점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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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자리한 아주 작은 창고 같은 움막집 문이 열려 있다. 올드 코사니 깊숙한 산길을 지나치면서 늘 궁금해 했던 움막이다. 혹시 힌두 수행자, 사두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잔뜩 기대를 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움막에서 검은 피부의 사내가 불쑥 튀어 나왔다. 당황한 내게 흰 치아를 드러내 환하게 웃으며 사내가 다짜고짜 말했다.

"짜이!"
"짜이? 여기서 짜이를 팝니까?"
"예스!"

짜이를 끓이기 위해 화덕에 불을 지피고 있다.
 짜이를 끓이기 위해 화덕에 불을 지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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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움막 앞에 만들어 놓은 작은 화덕을 손짓했다. 나는 손짓으로 점포 아래 소똥 거름이 쌓여 있는 다랑이 밭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당신의 밭입니까?"
"예스! "
"당신은 농부입니까?"
"......"

내가 농부라는 영어 단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그런지 그는 농부라는 단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듯 했다.

"아이 엠 어 파르마르."
"파르마르? 웠 더즈 잇 민?"

그가 '파르마르'를 강조하면서 밭을 일구는 시늉을 했다. 인도식 영어 발음으로 농부는 '파르마르'였던 것이다. 우리의 영어 대화는 짧았다. 단어 몇 개를 던져 놓고 서로 '예스' 아니면 '노' 로 답했다. 그래도 통했다. 그는 힌두어가 섞인 영어로, 나는 콩글리시로 말했지만 대충 통했다.

주인이 사라졌다, 점포를 내게 통째로 맡긴 채

영어 소통이 어려운 말들은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몸짓으로 말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보이는데 왜 간판을 걸어 놓지 않았냐?'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움박 머리맡에 간판을 붙여 놓는 시늉을 하면 그는 곧장 알아듣고 간판을 세워 놓기가 쉽지 않다는 투로 손을 내저어댄다.

나는 그의 순박한 미소를 통해 간판을 내걸을 만큼 상술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농사를 지어가며 어쩌다 자동차 몇 대 지나가는 것이 전부인 외진 산길에서 조금이라도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짜이 장사를 하고 있다는 소박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는 내게 다 낡은 의자를 권했다. 짜이를 끓이기 위해 작은 화덕에 나뭇가지로 불을 지펴 놓고 우유와 물을 받아오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게 점포를 통째로 맡겨놓고.

사내가 떠난 사이 점포 안을 둘러봤다. 둘러볼 것도 없었다. 두 평 남짓한 점포는 한 눈에 들어왔다. 작은 테이블 하나에 의자 네 개가 전부였다. 반쯤 비워져 있는 사탕 한 통과 봉다리 과자 대여섯 개, 인도 담배 비디 몇 갑과 성냥이 보였다. 달걀판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샌드위치도 팔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한 식빵이 보이지 않는다. 한 달 내내 담배 몇 갑이나 팔까 싶을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도로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점포, 누가 짜이를 마시겠다고 찾아 오겠는가. 호텔. 식당. 게스트하우스가 몰려 있는 뉴 꼬사니에서 이곳까지 쉬엄쉬엄 걸어 한 시간 넘게 걸린다. 뉴 코사니에서 이곳 올드 코사니까지 대부분 자동차를 이용한다. 자동차로 지나치게 되면 간판도 없는 그의 점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얼핏 보기에 그냥 허름한 창고나 움막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사내가 양손에 우유와 물통을 들고 움막으로 돌아왔다. 화덕에 불을 지펴 놓고 양손에 재를 잔뜩 묻혀 물로 씻는다. 손에 묻힌 재는 천연 비누였던 것이다. 그는 손잡이가 달린 작은 냄비에 커피 가루 같은 차를 넣고 펄펄 끓이고 나서 채반에 차 찌꺼기를 걸러낸 다음 적당히 남은 찻물에 우유를 넣고 다시 약한 불에 끓여낸다. 그리고는 설탕을 얼마나 넣을 것이냐고 내게 묻는다.

이번에도 말로 하지 않고 작은 수저로 설탕을 떠서 내 앞에 보인다. 나는 손가락으로 아주 적은 량의 설탕을 넣어달라며 '하프'라고 말했더니 금세 알아듣는다. 연기와 잿가루가 찻잔 속으로 날아든다. 그래도 참 맛있고 달콤한 짜이 한잔이다.

그는 짜이를 마시고 있는 내게 둥근 원통의 큰 화덕을 손짓하며 '탄두리 치킨'이라고 말한다. 탄두리는 화덕을 이르는 말이다. 탄두리 키친은 화덕에 굽는 인도식 프라이드치킨이다. 이곳 코사니에 오기 전에 다람살라에서 한국인 청년들과, 또 내니딸이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맛보았기에 금방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 탄두리 치킨? 당신이 만들 수 있나요?"
"예스, 탄두리 치킨. 나는 소와 닭을 기르는데 그 닭으로 만듭니다."

이런 산골짜기 오지에서 그것도 움막이나 다름없는 점포에서 탄두리 치킨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는 곧장 치킨을 굽겠다는 듯 불 피울 준비를 한다.

"지금 말고 내일 먹겠습니다."
"내일요? 알았습니다."
"반 마리만 먹겠습니다."

그가 닭의 반쪽을 몸짓으로 내보이며 기분 좋게 웃는다. 며칠 전 코사니 상가의 철물점 부럼씨네 주방에서 닭볶음탕을 직접 요리해 실컷 먹긴 했는데 순박한 산골 농부의 탄두리 치킨을 맛보고 싶었다.

그에게 짜이와 비디 담배, 성냥 값으로 20루피를 건넸더니 1루피가 남는다며 거스름돈을 주려고 한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거스름돈은 괜찮다' 했더니 한껏 웃는다. 우리 돈으로 20원도 채 안 돼는 1루피에도 기분 좋아 하는 순박한 사내였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오마 약속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사내는 콧노래를 부르며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다. 오늘 매상 20루피를 기록하는 모양이다. 거기다가 탄두리 키친까지 예약 받아 놓은 것이 무척이나 즐거운 모양이다. 그날 저녁 나는 탄두리 치킨을 먹기 위해 속을 비워놓았다.

관광지와는 차원이 다른 맛, 탄두리 치킨

다음날 이른 새벽부터 가는 빗방울이 내리고 있었다. 산책을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비를 챙겨 나왔다. 다행히 걸어오는 중간에 비가 그쳤다. 아침 일곱시도 채 안 됐는데 사내는 일찌감치 움막 점포를 열어 화덕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할 뻔 했을까.

이른 아침 부터 탄두리 치킨을 준비하고 있는 인도 농부 지례씨와 그의 아들 만슈.
 이른 아침 부터 탄두리 치킨을 준비하고 있는 인도 농부 지례씨와 그의 아들 만슈.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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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아주 반갑게 활짝 웃는 얼굴로 날 맞이한다. 집에서 기른다는 닭은 이미 잡아놓은 상태였고 닭을 싸온 비닐에 묻은 핏물을 씻어내고 있었다. 그는 탄두리 치킨을 요리하기 전에 먼저 짜이부터 끓였다. 차가 끓고 있는 동안 열살 쯤 돼 보이는 사내의 아들이 우유를 가져왔다.

"당신의 아들입니까?"
"예 나의 아들 만슈입니다."
"만슈? 한국에는 만수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내 이름은 송인데 당신의 이름?"
"지례."

지례의 아들 만슈는 초등학교 5학년, 나는 녀석을 '만수'라 불렀다. 만슈, 만수는 언덕배기집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아버지 심부름을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잘도 해낸다.

"당신 아들 만수는 아주 착하네요."
"만슈는 나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아, 저도 두 아들이 있는데 친구처럼 지냅니다."

사내는 닭과 함께 소를 여러 마리 키우고 있다고 강조한다. 만수가 가져온 우유는 그 소에서 나온 우유였다. 올드 코사니 오지마을의 소들은 사료가 아닌 순전히 풀과 나뭇잎을 먹고 살아간다. 도시 사람들보다 가난하지만 유기농 우유 보다 더 질이 좋은 자연산 우유를 먹고 사는 셈이다. 인도사람들은 소젖으로 치즈며 온갖 음식에 첨가하는 유제품을 만들어 먹고 있는데 특히 차에 우유를 섞어 만든 짜이를 하루에 몇 잔씩이고 마신다.

달콤한 짜이를 마시고 있는 동안 사내는 손질해 놓은 닭살에 양념을 고루 바른다. 노란 색깔의 양념은 우유를 발효시킨 요구르트에 카레를 섞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온갖 향신료를 바른 닭살을 쇠꼬챙이에 끼워 알불만 남은 화덕에 넣고 적당히 구워질 때까지 뚜껑을 덮어놓는다. 그리고는 중간에 한두 차례 이리저리 돌려 고루 구워지게 한다. 노릿노릿 구워져 나온 치킨에 불에 녹인 치즈를 바르고 다시 굽는다. 다 구워지자 소금에 레몬까지 뿌린다.

둥근 원통의 화덕, 탄두리에 갖은 향신료를 바른 치킨을 쇠꼬챙이에 궤어 굽고 있다.
 둥근 원통의 화덕, 탄두리에 갖은 향신료를 바른 치킨을 쇠꼬챙이에 궤어 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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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릿 노릿 구워진 탄두리 치킨.
 노릿 노릿 구워진 탄두리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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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이 빠진 담백한 맛에 불기운과 향신료가 뒤섞인 향긋한 맛이 그만이다. 관광지 내리딸의 식당에서 먹은 탄두리 치킨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맛있다. 거기다가 밀가루에 치즈를 넣고 반죽해서 화덕에 구운 얇은 빵, 짜파티까지 내 놓았다. 그 밀가루 빵 또한 맛이 기가 막혔다. 인도에 와서 가장 맛있는 탄두리 치킨과 밀가루 빵이었다.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고소한 빵에 닭 반 토막을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았다. 움막집 사내에게 같이 먹자니까 자기는 됐다고 손을 내젓는다. 때마침 코사니의 한 호텔에서 손님들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다는 인도 청년이 움막을 찾아왔다. 움막집 아들 만수와 밀가루 빵을 먹고 있는 그 청년에게 몇 점씩 떼어 주고 나서 같이 더 먹으라 했더니 청년은 그 몇 점으로 만족한다며 극구 사양한다.

"얼마지요?"
"150루피입니다."

내 생각대로 탄두리 치킨 값이 150루피였다. 어제는 분명 50루피라고 했었는데 그가 잘못 말했던 것이다. 며칠 전 코사니에서 사귄 사람들과 함께 닭볶음탕을 먹기 위해 닭 집에서 생닭 한 마리에 250루피를 주고 샀었다. 노동자들이 즐겨 찾는 식당에서 50루피짜리 식사를 하고 있는 내겐 분명 큰돈이었지만 닭 반 토막을 온갖 향신료으로 구워낸 것이 백오십 루피라면 싼 편이었다.

"짜파티는 얼마입니까.?"
"다 포함한 가격입니다."

움막집 사내는 150루피를 받아 들고 싱글벙글 웃는다.

"투모로우 탄두리 키친?"
"노, 노."

그는 내일 또 다시 탄두리 치킨을 먹지 않겠냐고 묻는다. 싱글 벙글 웃고 있는 그에게 딱 잘라 거절할 수 없어서 며칠 후에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곳 코사니에서 와서 아침을 먹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육식을 했다.

거기다가 여행비를 충당하기 위한 밤샘 원고 작업을 했기에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져 며칠 전 닭볶음탕까지 요리해 먹었다. 아무래도 너무 갑작스럽게 그것도 연거푸 육식에 욕심 부린 것 같아 뱃속이 불안했다.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건네고 나서는데 사내가 나를 붙잡는다.

"짜이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좋다고 말했다. 그는 아까 마시고 남은 차를 불기운이 남아 있는 화덕에 올려놓으며 짜이는 서비스란다. 짜이를 다 마시고 나서 나는 그의 아들에게 10루피를 건네줬다. 쭈빗대며 받지 않아 억지로 손에 쥐어줬다. 녀석은 부끄러운지 배시시 웃는다.

산책길에서 만난 청년, 괜찮다고 잘라 말할 걸

산책길을 되돌아 나오는데 움막집에서 만난 청년이 모자를 깊이 눌려 쓰고 뒤따라오고 있었다. 인적없는 산길이라서 긴장감이 엄습했다. 그가 내 옆으로 바싹 다가왔다. 그와 얼굴이 마주쳤다. 그는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긴장감이 사라졌다.

코사니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알모라에서 왔다는 그는 내가 어느 나라에서 무엇 때문에 왔는지를 물어왔다. 하지만 그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녹차 밭 근처에서 그가 내게 머뭇거리며 말했다.

"사진 찍기에 아주 좋습니다."

청년은 사진 찍기가 아주 좋은 곳이라며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이전에 빛깔 좋은 차밭을 찍어 놓은 사진이 있었지만 그 청년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장소에서 여기도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라며 사진을 찍으라고 권한다. 사실 그리 좋은 장소도 아니었고 사진 찍기에는 빛이 너무 흐렸다.

청년은 머뭇거리다가 힘겹게 이런 저런 말을 꺼냈지만 도통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죄송합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를 되풀이 했고 청년은 내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말에는 '가이드', '포터' '뷰' '100루피'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조합해 보면 자신이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안내해 줄 테니 100루피를 달라는 것 같았다. 그는 최소의 비용으로 한두 끼를 먹어가며 여행하고 있는 내가 돈 많은 여행객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그에게 한 달 동안 코사니 주변 곳곳을 걸어 다녔기에 이미 어지간한 풍경들을 사진기에 다 담아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내 말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자신의 말만 되풀이 했다.

코사니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알모라에서 온 청년과 농부 지례씨.
 코사니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알모라에서 온 청년과 농부 지례씨.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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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당한 장소에서 사진기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고 갈 테니 먼저 가라 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먼저 길을 나섰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의 의중을 잘못 판단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냥 '노 땡큐', 고맙지만 괜찮다고 잘라 말했을 것을 후회가 밀려왔다.

청년은 코사니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알모라에 여자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알모라는 코사니에 비하면 제법 도시 냄새가 난다. 중매결혼을 하는 시골과 달리 도시에서는 연애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는 아마 여자 친구와 결혼할 자금을 모으기 위해 코사니의 호텔에서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비교적 값비싼 코사니 상가의 식당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움막집을 찾아 값싼 밀가루 빵으로 아침을 때워가며 돈을 모으고 있을 것이었다.

그는 나보다 더 절실하게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누군가 어디선가 배 불리 먹고 있을 때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주린 배를 움켜잡기 마련이다. 아침부터 탄두리 치킨을 배불리 먹은 내가 지금 그 배부른 누군가였던 것이다. 나는 어깨가 유난히 축 처져 보이는 그 청년이 곡선 길을 꺾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청년의 축 처진 뒷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 먹지 않던 아침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속이 좋지 않았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탄두리치킨(tandoor chicken): 탄두리는 원통모양의 진흙 화덕을 의미한다. 이집트에서 발명되어 무굴인에 의해 인도에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북인도에서는 요구르트, 고추, 정향, 계피 등의 향신료로 양념한 닭을 탄두리 화덕에 구워낸 음식을 '탄두리치킨'이라한다.



태그:#북인도 코사니, #산속 움막집, #탄두리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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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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