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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 기자말

붉게 달아오른 화염산과 더위에 지친 낙타.
 붉게 달아오른 화염산과 더위에 지친 낙타.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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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무더운 지역은 대구(라고 한)다. 매년 여름이면 대구 일대의 높은 온도가 화제가 될 정도니 말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더위로 유명한 지역이 있다. '삼대화로'라고 불리기도 하는 충칭시(重庆市)와 난징시(南京市) 그리고 우한시(武汉市)가 그 주인공이다. 여름이면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가 70일 이상 이어진다. 중간중간 40도가 넘는 일도 부지기수다.

비록 '삼대화로'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더위로 이름난 곳이 있다. 체감온도는 더 높다고도 한다. 신장에 위치한 투루판(吐鲁番)이다. 바로 이곳에 화염산이 있다. 투루판에서 유명한 관광지 중 한 곳으로, 소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파초선'으로 불을 껐던 곳이다. 이미 불이 꺼진 산이건만 열기를 뿜어내는 듯 붉게 이글거리던 모습이 아직 선명하다. 세상 더위의 근원이 이곳인 듯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그곳을 방문했을 당시 4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였다. 무섭도록 뜨거운 햇살은 하나하나가 바늘 끝처럼 아프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피부가 바싹 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누굴 탓하겠는가. 한여름에 그곳을 찾은 내 잘못이었다. 투루판은 훠저우(火洲)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불 화'자가 이곳의 더위를 가늠케 해준다. 즐거운 곳이었지만 여름에는 사양하고 싶은 지역이다.

중국 여름날의 일상다반사

가격이 저렴한 중국수박
 가격이 저렴한 중국수박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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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지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과일이 싸다는 것이다. 많은 종류의 과일이 저렴하기에, 과일을 즐겨 먹는 나로서는 천국이 따로 없다. 중국은 대부분 식료품을 무게로 파는데, 일반적으로 무게 단위는 근(斤)을 기준으로 한다.

대표적인 여름 과일인 수박도 저렴하다. 한 근(500g)에 0.8위안(약 145원)까지 파는 곳도 있지만, 보통은 1위엔(약 180원) 정도다. 10㎏짜리 수박 한 통에 삼사천 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진저우의 물가가 대도시에 비해 싼 덕도 있다. 중국 친구들이 한국 수박이 진짜로 그렇게 비싸냐며 물어본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 가면 어떻게 과일을 사 먹을지 진심으로 걱정된다.

오후의 강렬한 햇빛이 아스팔트를 달구면 여자들은 저마다 양산을 쓰고 총총 발걸음을 옮긴다.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양산을 쓴 사람이 눈에 많이 띈다. 나무 그늘 아래서는 노인들이 장기를 둔다. 주변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장기판에 훈수를 둔다. 하지만 장기를 두는 노인은 턱을 괸 채 장기짝을 들고 말이 없다.

밤이 되면 중국인들은 길거리로 나온다. 땡볕에 오른 열기를 식히기 위해서다. 공원에서 산책을 하는 가족이나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무리도 많다. 영화 <호우시절>에서 정우성과 고원원이 춤을 추던 배경을 생각하면 된다. 공원이나 광장에서 체조나 춤을 추는 사람은 사계절을 가리지 않지만, 야시장은 다르다. 초여름에서 가을까지만 열리는 야시장에는 길거리 음식을 사 먹거나, 옷부터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물건을 구경나온 사람으로 언제나 인산인해다. 키나 체중을 재는 곳, 복권을 파는 곳도 있다. 여러 가지 재밌는 놀이가 가득하다.

밤에 먹는 샤오카오와 맥주는 더위를 단숨에 날려준다.
 밤에 먹는 샤오카오와 맥주는 더위를 단숨에 날려준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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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카오(烧烤)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길거리에는 수많은 샤오카오 전문점이 즐비하다. 육류나 채소를 꼬치에 꽂아 불에 구워 양념장이나 향신료를 첨가한 음식이다. 화로 앞에서 웃통을 벗은 종업원이 땀을 쏟아내며 주문한 꼬치를 열심히 굽고 있다. 밖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은 남자 손님 몇몇도 상의는 벗어던진 지 오래다. 민소매 티를 가슴 위로 올리고 오랜 세월 맥주로 키워낸 동그랗게 솟아오른 배에 손을 얹고 지나가는 아저씨들. 밀어 올린 머리도 볼록 나온 배를 닮았다. 여름이면 밤낮 구분 없이 웃통을 드러낸 남자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한다.

여름밤 야외에서 즐기는 맥주와 샤오카오는 환상의 궁합이다. 특히 즈란(향신료의 종류로 '커민'이라고도 하며 톡 쏘는 강한 향이 특징이다)을 뿌린 양꼬치는 중국의 향이 담뿍 담겨있다. 아저씨나 청년 할 것 없이 많은 남자들이 배를 까고 앉아, 연신 맥주를 비워낸다. 테이블 밑바닥엔 나무 꼬챙이와 빈 맥주병이 산처럼 쌓여간다.

진저우에서 맞은 41도의 폭염, 한국 더위가 그리워

여름에 웃옷을 벗은 남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름에 웃옷을 벗은 남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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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네 번째의 여름을 맞았다. 그나마 북쪽에 위치해 있어서 여름철에는 당연히 한국보다 시원할 줄 알았다. 크나큰 착각이었다. 여름은 어디를 가든 그냥 더웠다. 특히 이번 여름은 정말 참기 힘들었다. 지난 여름에 비해 유난히 푹푹 쪘다. 41도까지 온도가 올라 눈을 의심하기도 했다. 한국보다 죽을 맛이었다. 서 있기만 해도 땀은 등줄기를 계곡 삼아 흘러내렸다.

더 최악인 건 습기다. 찜통 안에서 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끈끈하게 감아 도는 불쾌지수는 덤이다. 빨래를 널어놔도 잘 마르지 않아 다시 세탁하는 일도 빈번했다. 낮에는 땀으로 샤워를 하다, 밤이 되면 포화 상태에 이른 습기를 덕지덕지 몸에 붙이고 산다. 뽀송뽀송할 틈이 없다.

집 밖의 사정도 너무 열악했다. 버스나 택시를 타도 에어컨을 틀지 않아, 창문을 한껏 열어 땀을 말렸다. 상점도 마찬가지. 작은 선풍기만이 탈탈거리며 돌아가고 있는 가게가 적지 않았다. 베이징 같은 대도시라면 상황이 달랐을까. 중소도시는 여름을 나기에도 쉽지 않다. 더우면 잠시 편의점에라도 들러 땀을 식혔던 한국이 그리웠다.

여름 내 즐겨 먹었던 녹차 슬러시
 여름 내 즐겨 먹었던 녹차 슬러시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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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에어컨이 있는 기숙사가 가장 시원했다. 폭염 속의 유일한 구세주였다. 더위가 나를 은둔생활로 몰아갔다. 그렇게 무더운 날이 이어지고 있을 때 중국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나 며칠 뒤에 집으로 돌아가. 그전까지 우리 기숙사에서 함께 있지 않을래? 어차피 룸메이트들도 모두 집에 가고 나 혼자야."
"글쎄......"

흔쾌히 승낙을 내리기 어려웠다. 이미 중국인들이 사는 기숙사를 몇 차례 가봤기 때문이다. 보통 여섯 명에서 여덟 명이 같은 방을 쓰는 데다 냉방기구나 샤워시설도 없다. 분명 밤에 잠을 청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른 제안을 했다.

"그러지 말고 내 방에서 지내는 게 어때? 방에 화장실과 에어컨도 있으니 거기보다는 지내기 훨씬 편할 거야."
"좋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하루라도 에어컨 없이 견딜 수 없는 날씨였으니 말이다. 기다렸다는 듯 한걸음에 달려온다. 그녀는 지내는 내내 방이 좋다며 감탄을 하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집에 돌아갔다. 비록 기숙사에서만 '방콕'했지만, 두 사람 모두 만족할 만한 시간이었다.

이제 막 입추가 지났는데, 은근히 겨울이 그리워진다. 사실 중국의 추위는 한국보다 혹독하다. 얼굴이 통째로 얼어붙는 것 같아 몸서리를 치던 게 몇 달 전인데, 그 날씨를 기다린다니. 머리가 나쁜 건지, 인간이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고국이 사계절 내내 그리워진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중국, #중국유학, #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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