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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일기쓰기의 목적 – 글쓰기와 이성적 사고 훈련하기

어릴 적 가장 싫어하는 숙제를 하나 꼽으라면 너도나도 "일기"라고 답할 것이다. 숙제와 달리 나날이 써야 하는 탓에 밀리기 일쑤였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서 그제서야 일기장을 펴 들고, 다 지난 방학 수십 일 동안의 흐리멍덩한 기억을 떠올려 단 하루 만에 갈기갈기 써 내려간다. 도도록한 사건(?)이 없는 날엔 거짓으로 일을 꾸며내어 일기 작성을 완수해낸 추억 아닌 추억도 아련히 남아있다.

그렇다면, 선생들은 - 아니, 어른들은 - 왜 아이들에게 일기쓰기를 강요할까?

겉잡아 열의 아홉은 그날의 일들을 되새기고 뉘우치며 하루하루 더 나은 품성을 지닌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는 '도덕성 함양'이 주된 목적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기장엔 사실만을 기록해야 하고 또 그 글 속엔 '개전의 정'을 반드시 담아내야 일기다운 일기로 여기게 된다. 마치 고해성사를 바라보듯 말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기관'에는 몇 가지 허물이 숨어 있다.

첫째, 반성 목적의 일기는 하루가 끝나는 야심한 시각에서야 쓸 수 있다. 하오나, 이 시각은 일쑤 졸음이 밀려와 그날 쓸 일기를 이튿날로 미루게 된다. 일기가 한 번 밀리면 그저 하루로 그칠 뿐일쏘냐?

둘째, 실은 반성조차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성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이성적 사고'이다. 객관적으로 자기 행위를 비추어보는 선험적 능력이 이성이다. 이성이 잘 발달해야만 도덕적 가늠자가 올바르게 작동하고, 자신의 행위를 벋나가지 않게 잘 안내해준다. 다시 말해, 일기가 '자기 반성의 플랫폼'으로 온전히 구동되려면 먼저 이성적인 사고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잘라 말해, 글쓰기 훈련이 먼저요, 반성은 나중이다.

이성적인 사고를 벼리고 다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글쓰기이다. 자신이 직접 글을 써 보면 안다. 글은 함부로 마구 쓸 수 없다는 것을. 논리정합성을 지니기 위해, 쓰고 지우고 고치고 다듬으면서 앞뒤 맥락과 자신의 생각을 얼추 맞춰나가야 한다. 이 때 곁따르는 것이 바로 '합리적 사고, 이성적 사고'이다. 아이들이 글씨기 하는 동안 이성 기능은 담금질되고 자기 반성의 신진대사는 촉진된다.

셋째, 사실만 읊어야 하는 일기는 자칫 '상상력의 발'을 묶고 글쓰기 훈련을 방해할 수 있다. 일기에 쓸 재료가 메마른 날에는, 직접 겪은 '사실이란 재료'에 머리로 가공한 '상상의 양념'을 버무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글을 쓰도록 어른들이 거든다면 아이들이 글쓰기에 쉬이 흥미를 붙일 수 있다. 이러할 때 창의력 향상은 물론이요 앞서 짚어냈듯, 글쓰기에 길이 나면 점차 이성적 사고를 하게 되고 자기 반성도 얻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꾸민 글을 도덕적 잣대로 들이밀며 거짓말로 치장한 '못쓴 일기' 또는 '나쁜 일기'로 옭매어선 아니 된다.

정리하면, 어른들이 아이들 일기쓰기를 다음과 같이 지도하면 좋다.

일기쓰기는 '도덕 훈련'보다는 '국어 훈련' 그 중에서도 '글쓰기 버릇들이기'에 초점을 둬야 한다. 내용의 사실 여부와 개전의 정을 따지기보단 국어 어법과 어휘를 살피고 상상의 나래를 펴도록 북돋아주면서, 차츰 이성적 인간으로 거듭나게끔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지도 방식은 툭하면 건너뛰고, 몰아쓰고, 기계적인 붓방아만 놀리는 형식적 일기쓰기를 벗어나 아이들에게 자기 생각을 담게 만들고 원래 목적인 '도덕성 함양'도 이끌어내 성인다운 성인으로 자라나는 데에 일조할 것이다.


태그:#교육, #일기, #도덕, #글쓰기,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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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상상력과 현실적 안목으로 문제의 이면을 들추고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또한, 살 길 보단 할 길을 찾아 기사 작성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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