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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독일의 전위 예술가 요셉보이스의 일생을 나름대로 재구성해 쓴 픽션 에세이다. - 기자말

나는 독일의 어느 시골(크레페)에서 태어났다. 풀 내음이 짙은 들판과 누렇게 익은 이파리가 밟히는 숲을 누비며 자랐다. 또래의 친구보단 동물과 곤충을 벗 삼아 컸다. 내가 열아홉 이 될 무렵,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나를 포함한 수많은 젊은이가 전쟁에 내몰렸다. 나는 공군 비행기 조종사가 됐다.

숲 위를 날아오르며 곳곳에 붉은 기둥을 내뿜고, 삶과 영혼을 갉아 먹으며, 상대를 죽이고 내가 살아남겠다는 억척같은 생존 릴레이 속에... "쾅"하는 굉음과 함께 숲속으로 추락했더랬다. 산산 조각난 그 철 조각 사이에서 희미한 손길들이 나를 이끌었다. 온몸에 피 끓는 화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는 나의 몸뚱이에, 비릿한 어떤 동물의 기름이 발리고 펠트(felt : 양털이나 그 밖의 짐승의 털에 습기·열·압력을 가하여 만든 천)로 돌돌 감겨, 미라처럼 그렇게 죽은 듯 누워만 있었다. 모태에 둘러싸여 새로운 생명을 인수받듯.

독일의 패망. 전쟁이 끝나갈 무렵, 나는 그렇게 어느 원주민들에 의해 상처를 회복하고 기적처럼 살아났다. 그 후 동물의 '지방'과 '펠트 천'은 나에게 '치유의 오브제'이자 내 삶속에 빛으로 남게 되었다. 어두운 터널을 헤매던 그때의 생존경험을 생각하며. 우리 삶을 특별하게 인식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그 빛을 연구하고자 했다. 내가 예술가가 되어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살면서, 쉽게 그 사회에 찌들어 '삶의 정수'를 잃어버리곤 한다. 죽음 속에 빛을 발견하는, 내 특별한 경험을 그대들과 온전히 나눌 수 있다면, 이 사회는 꿈틀거리는 인간들의 무한한, 영험한 세계로 노를 저어 갈 수 있으려만. 그것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대들 앞에서 얼굴에는 금박을 바르고 한 손에는 '죽은 토끼'를 안은 채, 그 앞에 놓여 진 그림을, 내 그림을 설명하는 쇼를 벌였다.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수 있을까> 쇼를 보는 당신이, 부활절 토끼마냥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작은 기회를 얻는다면... 그것으로 내 삶의 목표가 이뤄질 수 있으리라 고대하며.

삶은 곧 예술이다. 그 삶이 아무리 고되고 추악할지라도 그 모든 인간의 이야기는 한 편의 작품처럼 길이 보전될만하다. 우리가 우리 삶 속에 정수를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모두의 삶 속에 예술성을 내제하고 있기에 우리 모두가 예술가이기도 하다. 한 편의 멋진 드라마를 그리고 있는 우리는 예술가다. 그러니 그대 오늘도 꿈틀거리며 살아가라.

-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요셉 보이스는 20세기 독일의 작가이자 교육자이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 비행기 조종사로 참여했던 그는 러시아에서 격추당했지만, 타타르족에 의해 구출되었다. 이 때의 실존적인 경험을 토대로 펠트와 기름 덩어리를 소재로 작품활동을 했다. 1947년에는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1961년에는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1962년부터는 백남준과 함께 플럭서스(Fluxus)라는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을 하기도 했다. 1963년 이후부터 다양한 행위예술 작품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How to Explain Pictures to Dead Hare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수 있을까>와 <I like America and America likes me 나는 아메리카를 좋아하고 아메리카는 나를 좋아한다>가 있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며 모든 인간에게 내제된 창조력을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하고자 합니다. (blog.naver.com/touchpaint)



태그:#요셉 보이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행위예술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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