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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는 잠투정이라는 게 없었다. 때가 되어 잠자리에 들면 꿈나라로 직행인데, 둘째는 달랐다. 불을 끄고 온 가족이 잠자리에 들어도 둘째는 어둠 속에서 한참을 뒹굴다 잠들곤 했다. 잠들길 기다리다 지쳐 내가 먼저 잠든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큰아이가 학교에 가면서 두 아이가 함께 잘 수 있는 방을 마련해 잠자리 독립을 시켰다. 둘째 나이 네 살 무렵이다. 큰아이에 비해 이르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언니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밀어붙였다. 모처럼 널찍한 침대를 차지하고 자는 잠은 꿀맛 같았다. 얼마 동안은.

평소처럼 남편이 두 아이를 재우러 아이들 방에 들어간 어느 날. 조용해야 할 방에서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가 흘러넘쳤다. '지금도 늦었는데, 언제 자려고 저러나' 싶은데 둘째 녀석은 "쉬가 마렵다", "물이 먹고 싶다" 등등의 이유로 계속 들락날락.

왕복 3시간 장거리 출퇴근 자인 나는 그날따라 일찌감치 애들을 재우고 좀 쉬고 싶었다. 어느덧 시계가 오후 12시를 가리키자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몇 번이나 안방과 화장실, 제 방을 왔다 갔다 하던 둘째와 눈이 딱 마주친 건. 순간, 고함이 터져 나왔다.

"지금 몇 시니? 어서 가서 안 자? 왜 자꾸 왔다 갔다 하는 거야."

방금까지만 해도 즐거웠던 아이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그리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둘째.

"엄마한테 잘 자라고 뽀뽀해주러 온 건데요..."

고함에 몸뚱이가 날아간 아기 펭귄

유타 바우어가 쓰고 그린 <고함쟁이 엄마>
 유타 바우어가 쓰고 그린 <고함쟁이 엄마>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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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유타 바우어가 쓰고 그린 <고함쟁이 엄마>에 등장하는 펭귄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오늘 아침, 엄마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어요'라는 아기 펭귄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자극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다 읽고나서는 뭉클하다. 내용은 이렇다.

엄마의 고함으로 놀란 아기 펭귄의 몸뚱이가 이리저리 흩어져 날아갔어. 머리는 우주로, 몸은 바다에, 날개는 밀림, 부리는 산꼭대기에 그리고 꼬리는 거리 한가운데로... 제 자리에 남은 거라곤 두 다리뿐이었지. 흩어진 몸뚱이를 찾아 나선 아기 펭귄은 지치도록 걷다 엄마를 만났어. 그런데 세상에... 엄마는 흩어진 아기 펭귄의 몸뚱이를 찾아 하나씩 꿰매고 있었지 뭐야. 마지막 남은 다리까지 다 꿰맨 엄마가 아기 펭귄을 보며 말했어.

"아가야,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사과뿐. 우는 아이 앞에 바짝 다가가 말했다.

"미안해. 엄마한테 잘 자라고 인사하러 온 줄 몰랐어. 네가 늦게 자면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서 힘드니까 그랬어. 속상했지? 엄마가 큰 소리 내서 미안해."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뒤끝' 있는 둘째는 나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울어서 벌게진 눈으로 "아빠"를 부르며 제 방으로 가버렸다. 피곤한 마음이 싹 가셨다. 좀처럼 잠도 오지 않았다.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애들이 다니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아이들에게 자주 피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이러려고 회사에 다니는 건 아닌데... 그렇지만 나는 슈퍼우먼이 아니잖아. 일, 살림, 육아... 완벽하게 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이렇게 쓰고는 있지만, 변명이라는 걸 잘 안다. 출퇴근에 3시간, 직장에서 9시간을 보내고 온 엄마가 아이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단 두시간 여. 아침에 헤어져 11시간 만에 보는 엄마와 조금 더 놀고 싶은 아이 마음을 '조금만' 알아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일인데... '완전체' 엄마의 길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고함쟁이 엄마

유타 바우어 글.그림, 이현정 옮김, 비룡소(2005)


태그:#고함쟁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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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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