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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기준, 시간제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는 2백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1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이다. 정부는 가정생활도 돌보면서 짧은 시간의 노동을 통해 경력도 이어갈 수 있다며 시간제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선전해 왔다. 시간제 공무원도 만들어 내고, 공공기관에는 시간제를 신규채용 하도록 퍼센트를 할당하고, 민간에도 채용박람회 등을 통해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어 내도록 했다. 특히 시간제 일자리는 경력단절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의 시간제 일자리가 일과 가정의 양립, 경력의 유지와 자기계발이라는 노동자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대다수에게는 '시간선택제'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강요당하면서, 이거라도 어디냐는 체념 속에 살도록 만들고 있다. 모두의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린 것이 아니라, 여성을 타깃으로 해서 노동시간이 짧은 노동형태를 만들어 냄으로써 차별적인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늘리는 방식으로 접근한 까닭이다.

'선택'이라 하기엔 열악한 노동조건

시간제 일자리의 실태를 살펴보면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건강한 일자리가 아니라는 것은 금세 알 수 있다. 시간제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 평균은 8621원으로, 정규직 1만6327원 대비 52.8% 수준이다. 시간당 임금으로는 절반이지만 월 평균임금을 비교해 보면 그 격차는 보다 확연히 드러난다. 시간제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73만원 수준으로 정규직 월 평균 임금 299만원의 24.4%에 지나지 않는다. 비정규직 월 평균임금은 147만원으로 정규직 임금의 절반, 시간제 노동자는 그의 또 절반인 것이다.

전체 노동자 임금 평균과 비교하더라도 시간제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열악하다. 전체 노동자 월 평균임금은 231만 원 수준인데, 시간제 노동자의 임금은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시간제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약 21시간가량 되므로 단순히 시간상 비율로 보더라도 주 40시간 일하는 노동자의 절반 수준은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고용안정성 역시 낮은 수준이다. 시간제 노동자의 평균근속년수는 1년 반 남짓 되고, 1년 미만인 노동자가 60%를 넘고, 전체 시간제 노동자 209만명 가운데 상용 고용된 이는 고작 23만명 수준이다. 90% 가까이는 임시직이나 일용직의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김유선, 2015.3) 참조)

한국의 장시간 노동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한국의 기업들은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을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런 장시간 노동의 바탕 위에 노동시간이 짧은 시간제 일자리들을 만들어 내니 노동자들의 일은 종종 기형적으로 분할되고, 그로 인해 시간제 노동자의 노동 조건은 임금이나 노동 강도 등 전반적인 면에서 그 기업의 통상적 노동조건을 따라 가기 힘들게 되었다.

기업의 일 중 소위 주변 업무, 단순 업무라고 여겨지는 일을 중심으로 노동이 분리되어 시간제 노동자에게 떨어진다. 핵심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임금 수준도 낮게 책정된다. 직업적 경험을 쌓고 유지하기 보다는 저임금 단순노동의 쳇바퀴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핵심 업무에 시간제 노동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야간 전담 간호사의 경우가 그렇다. 간호사 업무는 병원의 핵심 업무이지만 노동자들이 야간 근무를 기피한다는 이유로 야간에만 일하는 간호사를 시간제로 책정하는 것이다. 업무가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 시간제 노동자를 충원하기도 한다. 당연히 야간이나 코어시간대에 투입되는 시간제 노동자의 노동 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시간제 노동의 확산이 낳은 효과

이렇게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우리는 어느새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시간'에 따라 분할 될 수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일한 시간에 비례해서 보호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기업이나 정부가 생각하듯이 시간단위로 나누어질 수 있는 노동조건은 그리 많지 않다.

먼저 업무를 분리해서 시간급 자체를 다르게 책정할 수 있다는 것은 시간에 따른 보상으로 메울 수 없는 차별이다. 또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단순 업무 부여로 인한 경력 계발의 차별, 승진 기회 자체의 박탈 등, 시간제 노동은 노동자로서의 직업적 생애 개념을 배제하고 현재 제공되는 일자리와 소득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정규직 노동은 하루 8시간이라는 공식을 굳어지게 했다. 8시간 노동이 정규직 고용형태의 조건은 아니고, 노동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비정규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시간제 노동의 확대는 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8시간보다 짧아질 수 있다는 상상을 가로막았고, 노동시간이 짧은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해 정규직보다 낮은 권리를 당연하게 여기게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 비정규직들은 초단시간 노동 계약을 강요당하고 있는데, 이들은 실제로는 연장근로를 통해 더 많은 일을 하지만 주 15시간 미만으로 근로계약서를 쓸 것을 강요당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간 만료로 해고되기 때문이다.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노동이 되면 퇴직금이나, 무기계약 전환, 4대 보험 등에서 배제되는 차별을 당하게 되지만,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이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해고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시간제 노동자가 오히려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낮은 임금 때문이다. 시간제 노동자는 더 많은 소득을 필요로 하지만 한 기업에서는 자신의 노동시간을 늘릴 수 없고, 그러려면 두 개 이상의 일자리를 이리저리 뛰며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또 노동시간은 길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제조업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주간연속 2교대제 문제에서도 보듯이 노동시간의 편재나 분배의 문제도 포함한다. 야간전담 간호사뿐만 아니라 공단지역에서도 제조업에 야간 전담반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있는데, 일하는 시간대의 변경은 주야간이 상호 불가능하다. 노동시간의 편재는 노동자들의 권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도 마치 기업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 결과 노동시간은 노동자들 간에 차별적으로 분배된다.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해 장시간이 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짧아진다. 기업차원에서는 그렇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애 노동시간은 더 길어진다. 누군가에게는 장시간 노동의 고통이 지속되고, 누군가는 짧은 노동시간으로 인해 저소득의 어려움이 지속된다.

삶의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시간제 노동

그런데 정부는 더 많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초유연근로를 만들어 내겠다고 한다. 잠시 잠깐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노인이나 여성들이 일 할 수 있게 고용노동부에서 지난해 연구용역을 발주한 바 있다.

예를 들면 하루 한 두 시간씩 아동의 등하교를 돕거나 카페에서 피크타임에만 일하는 경우 등이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다는 이 개념은 특정한 노동자들을 위해 필요한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는 선한 뜻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변화란 일부에만 국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고용형태의 창출이나 특성의 변화는 다른 여타 노동자들에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파견법이 일부 전문 업무에 대해서만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지금 전반적으로 확대되어 안정될 일자리를 침해하고 수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간접고용을 무한히 확산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초유연근로는 시간제 형태이면서 동시에 필요할 때만 불러 쓰는 호출노동과 같은 성격을 띠게 된다. 일을 하는 시간 외에 노동자는 대기 상태에 놓이게 되고, 언제 생길지 모르는 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른 직업 구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삶 전반이 노동에 매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이런 현상은 발생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못한 공단지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출근했다가도 일이 없으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휴업수당도 없이 노동자는 대기하게 되고, 이 대기상태가 길어지면 노동자는 스스로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게 된다. 기업은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더라도 노동시간을 마음대로 쥐락펴락 하는 것만으로 유연한 인력활용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이 이렇게 노동자를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파견업체, 용역업체와 같은 인력공급업체이다. 노동시간이 단시간화 된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에게는 적시에 필요한 노동자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고용형태가 유연해 지는 만큼 기업은 인력관리에 비용을 들이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를 아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인력공급업체의 존재이다.

시간제 노동이 확산되고 단시간화 될수록, 또 기업이 시간제 고용형태를 활용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인력공급업체들은 더 활성화된다. 그때그때 필요한 노동자를 공급하고 수수료를 취하는 업체들, 이들은 일시적인 노동력 공급을 넘어 기업의 인력공급 전반을 조율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고, 노동자들에게는 언제든 잘리면 다른 일자리를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즉,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하게 되어 고용안정이 노동자의 권리라는 인식조차 망각하게 만든다. 직접고용은 점점 사라지고 간접고용에 호출노동 형태가 중첩되어 노동자의 고용형태는 점점 더 열악해진다.

정부의 노동시간정책이 만들어낸 결과

이처럼 시간제 노동의 확대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노동시간 정책은 노동자의 권리를 축소하고 박탈하는 것을 넘어 고용구조 전체를 왜곡시키고 간접화, 호출화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지나친 상상이 아니다. 이미 그렇게 극단적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동안 비정규직 고용이 전혀 규제되지 못한 채 확산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에 시간제 노동을 덧댐으로써 기간제, 간접고용, 시간제노동에 이르기까지 기업의 유연한 인력활용을 위한 토대를 더 단단히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는 부족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다시피 절대적 수의 부족보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연일 청년실업 문제가 언론을 도배하지만 그 청년들은 이미 아르바이트 시간제 노동에 종사하며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한 매일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비정규직을 규제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제 일자리를 양산해 내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면서 청년들의 눈높이만 탓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우리 사회의 주요 과제로 적극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법정노동시간만 지키더라도 장시간노동은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이 자체로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주 40시간 하루 8시간이라는 법정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지 않으면 시간제노동으로부터 격화되는 고용유연화와 권리의 저하를 막아내지 못한다. 하루 8시간 노동을 그대로 둔 채 노동시간이 짧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노동자간의 위계를 만들어내고, 그 위계로부터 형성되는 차별을 극복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8시간 노동으로는 노동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분명 존재한다. 이들에게는 더 짧은 시간의 노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일부를 위한 제도가 되는 순간 그 일부는 차별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은 배제되는 이를 만들어 내지 않겠다는 사회의 의지 표명으로서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게, 그리고 짧게 일하더라도 그것이 권리의 축소나 박탈의 요소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의 길이, 노동시간의 편재에 대한 노동자의 결정권 보장이 필수다. 모두는 원하는 시간만큼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짧은 시간 일하더라도 생계를 유지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수준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못했고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논리에 갇혀왔던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지도 못했던 것이지만, 분명 노동자의 핵심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처장입니다



태그:#시간제, #시간선택제, #단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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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폐연대는 우리의 삶과 노동을빈곤과 위기로 내모는 불안정 노동을 철폐하고 인간다운 삶을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운동하는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workright.jinbo.net 단체 이메일 :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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