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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28일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나 스스로가 동성애자도 아닌데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바꿔 축제에 가보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 것이 바로 보수 개신교 세력의 맞불 집회였다.

알다시피 보수 개신교 세력의 반대 집회는 퀴어축제를 흥행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앞서 26일(현지 시각), 미국에서는 "주 정부가 동성결혼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리퍼트 미국 대사 피습 사건 당시 부채춤과 발레를 추고 난타 공연을 하던 이들이 퀴어축제 당일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아마 나만 궁금한 게 아니었을 거다. 페이스북 친구인 최성식 변호사도 "동성애 반대 설교하는 반미목사들은 전부 종북으로 신고할 것이다. 우리나라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는 미국에 반대하다니 그게 종북이지 뭐가 종북이냐"라며 페이스북에서 농담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독일 대사관의 "다양성", 선진국의 인권 의식

주한영국대사관·주한프랑스대사관·주한독일대사관의 퀴어축제 부스.
 주한영국대사관·주한프랑스대사관·주한독일대사관의 퀴어축제 부스.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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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하는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
 행진하는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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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대를 한 탓인지 늦잠을 잤다. 그러다보니 행사 시작 시간(오전 11시)보다 5시간 정도 늦게 축제 장소에 도착했다. 함께 퀴어문화축제에 가기로 한 친구와 만나 시청역 5번 출구로 나갔더니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막혀 있었다. 보수 개신교 세력의 반대집회 장소가 이곳이었던 것이다. 출구에서는 "마귀들과 싸울지라"와 같은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어떻게든 행사 장소로 들어간 나는 설치되어 있는 부스들을 구경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미국, 영국, 독일을 비롯한 각국 대사관들이 직접 부스를 설치하고 성소수자 혐오 반대를 함께 주장했다는 것이다.

"독일은 다양성"이라는 독일 대사관의 책자에 적혀있는 문구가 기억에 남았다. 말 그대로 '서양 선진국의 인권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보수 개신교 세력의 기원(?)을 받은 리퍼트 미국 대사도 부스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했는데, 건너편에서 반대 집회 하는 분들 속이 좀 쓰렸을 거다.

잠시 쉬고 있으니 행진이 시작됐다. 서울광장에서 출발해 을지로와 퇴계로, 소공로 일대를 거쳐 서울광장으로 되돌아오는 루트였는데, 어마어마하게 긴 행렬은 가히 장관이었다. 외국인들도 함께 참여하는 흥겨운 행사였다. 보수 개신교 성향의 일부 사람들이 중간중간에서 기다리다가 무어라고 외쳤지만, 행진 참가자들의 환호성과 함께 묻혔다.

나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본받아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 있는 그분들에게 "예수 믿고 회개하세요"라고 말했다.

보수 개신교의 반대 집회, 퀴어축제 참가자들 "한번 더!"

▲ 퀴어 축제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난타 공연을 하고 있다.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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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축제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난타 공연을 하고 있다.
 퀴어 축제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난타 공연을 하고 있다.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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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축제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저지선 너머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퀴어 축제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저지선 너머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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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이 끝나고 이대로 돌아가기 아쉬워 보수 개신교 세력의 반대 집회 현장으로 갔다. 경찰 저지선 건너편에서는 보수 개신교 세력의 반대 집회가 한창이었다. "아무리 봐도 안티 시위가 아니라 그냥 퀴어퍼레이드 일부로 녹아버린 거 같"(‎@k_aquinas)다던 한 트위터리안의 말처럼 집회 현장은 광장 중앙에서 진행되고 있던 본 축제보다 더 흥겨웠다.

찬송가가 끝나니 경찰 저지선 건너편의 퀴어축제 참가자들은 "한 번 더! 한 번 더!"를 연발했다. 퀴어축제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난타 공연을 했다.

광장으로 돌아와 경찰 저지선 너머를 보니 집회 참가자들이 각종 유언비어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동성애가 에이즈를 유발한다든가, 전국민의 96%가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이야기였다.

알다시피 동성애가 에이즈를 유발한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고, 전국민의 96%가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주장도 사실은 포털사이트 네이트의 온라인 투표 결과로, 표본(조사대상자)의 대표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객관성이 떨어지는 자료다. 동성애를 반대한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객관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북한에서 동성애는 공개총살" 어이가 없다

퀴어 축제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북한에서 동성애는 공개총살"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맨 왼쪽, 맨 오른쪽).
 퀴어 축제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북한에서 동성애는 공개총살"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맨 왼쪽, 맨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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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이없던 것은 퀴어축제 반대 집회 참가자 중 일부가 "북한에서 동성애는 공개 총살"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북한에서 동성애자를 공개 총살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북한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최악의 독재국가"이다. 미국 국무부도 '2014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세계 최악(the worst in the world)'이라 표현한 바 있다. 그런 북한과 헌법에서 국민들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한국과 비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주변에서 종이와 펜을 빌려 글을 적은 후 맞불시위를 했다.

"동성애 공개 총살 하는 북한 가서 사세요!"
"저희는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건너편에 있던 퀴어축제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내가 적은 종이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피켓 너머로 얼굴을 숨겼다. 그렇게 나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약 15분 동안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안타깝게도 팔이 아파서 더 이상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저 사람들 북한 싫어하던 것 아니었나.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아,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태그:#퀴어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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