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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 대다수가 빈곤하고 비참한 사회는 절대로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없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에서

생각지도 못했다. '필립 코틀러'마저 이런 생각을 가질 줄 몰랐다. 내가 아는 코틀러가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틀림없었다. 마케팅의 아버지, 경영학의 대가, 그 필립 코틀러 교수였다.

우리 삶이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14가지 길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
▲ 책표지 우리 삶이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14가지 길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
ⓒ 더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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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을 빼놓고 현대 경영학을 논할 수 없고, 코틀러를 빼놓고 마케팅을 논할 수 없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기업들은 코틀러의 영토 치하에 놓여있다. 그런 코틀러가 지금을 위기로 규정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14가지 길을 제시했다.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는 그 생각을 풀어놓은 책이다.

"자본주의는 경제성장, 혁신, 번영을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경제 시스템"이라 분명히 선을 그었지만 지금과는 '다른 자본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책은 굉장히 진보적인 사상으로 가득했다. 경영학 석학이 그만큼 지금은 '자본주의의 위기'란 점에 찬동한다는 뜻이다.

코틀러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걸로 보였다. <21세기 자본>의 내용을 소개한 것은 물론, 책 곳곳에서 피케티를 언급하며 적극적으로 옹호하기까지 했다.

부자들은 피케티 책에 담긴 주장을 반박할 수 없기 때문에 크게 우려를 표했다. 그래서 '마르크스 주의자', '집산주의자', '스탈린주의자'라고 부르면서 비난을 퍼붓는다. 부자들은 정치적으로 문제를 회피하는 한편 돈을 이용해 대중을 현혹시켜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기 위해서 노력한다. -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에서

책에서 주창한 코틀러의 목소리를 빌려 지금 우리 한국에서 첨예한 대립에 있는 문제의 해법을 모색해볼 수 있었다. 몇 가지 논쟁에 대해 코틀러의 견해를 살펴보자.

최저임금은 '최대한' 인상돼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오는 29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한다. 노동계는 1만 원을 요구하고 있고, 경영계와 보수언론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경제가 오히려 후퇴할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코틀러는 최저임금이 '최대한' 인상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론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코틀러가 제시한 연구들은 고용에 영향이 없고 오히려 이직률 하락과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다고 나타냈다. 따라서 국가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게 좋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인상된 만큼의 소득을 모두 소비한다고 가정하면, 구매력 증가가 소득과 일자리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더욱 커진다고도 예측했다. 자본주의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가진 소비자에 기반을 둔 경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도 개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레 '열정'이 생긴다는 것. 그러니 '열정페이'가 아닌 '만족페이'를 지급하란 얘기다.

강력한 증세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그는 고소득자의 세율을 더 높여서 한층 상향된 누진세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최상위 고소득자에게는 60%를 세금으로 부과하라고 구체적인 세율도 제시했다. 상속세의 경우 최고 500만 달러까지만 보유하도록 허용하고 나머지는 정부에게 귀속시킨다. 증여세는 연간 2만 달러 이상 금지시킨다. 모두 코틀러의 제안이다.

더나가 연봉상한제까지 제안했다. 일정 금액을 넘어가는 연봉에 대해서는 정부에 귀속시키거나 특정 사회문제에 직접 지출되도록 하길 바랐다. 굉장히 강력한 수단이다.

'트리클 다운'은 틀렸다면서 오히려 부담만 아래쪽으로 흐르고 이득은 부유층이 독식하는 '트리클 업'의 가능성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익공유제에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드러낸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도 분명 마케팅에서만큼은 코틀러의 책으로 공부했을 게다.

가계 부채를 줄여야 한다

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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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틀러는 가계 부채에도 우려를 표했다. 미국 경제의 70%를 담당하는 중산층 가정의 가계 부채가 급증한 이유는 결코 신용대출만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모기지 대출과 학자금 대출이 큰 부담이라는 것.

2008년의 금융위기는 코틀러가 보기엔 예고된 재앙이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빚을 내라'고 독촉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원래 기업을 위한 신용 시스템에서 출발한 자본주의가 이제는 가정의 소비를 위한 대출 시스템으로 전락했다. 그러니 탈이 났다는 분석이다.

은행을 소규모로 잘게 나누고, 다양한 종류의 은행에 대해 더욱 강력한 규제를 주문했다. 금융가들은 금융위기를 촉발시킬 수 있는 행동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당신이 은행에 수백 파운드의 빚을 지고 있다면, 당신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수백만 파운드의 빚을 졌다면, 은행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지난 2일, 정부는 '부동산 규제 완화'를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코틀러의 주장대로라면, 주거 문제를 주택 대출 규제로 풀어보려는 시도는 분명 비정상적인 발상이다.

이밖에 코틀러는 빈곤·실업·환경·행복·정치·경기순환 등 폭넓은 분야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결코 쉽지 않지만 결론적으로는 '낙관'한다고 했다.

민주주의의 정책입안자들은 한 번에 한 가지 문제에만 집착해 서로 간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어렵고 장기적인 해결책보다는 단기 처방을 선호한다. 그러나 장기적 해결책을 모색하지 못하면 수많은 단기적 문제의 원인이 된다. -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에서

모든 문제들은 각각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코틀러의 지적처럼 근시안적 정책은 또 다른 문제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큰 줄기를 틀어야 할 때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머뭇거리다간 잔가지들이 꼬여버리는 법이다. 징후는 충분하잖은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석학의 식견을 공유했다는 즐거움과 함께 우려도 밀려왔다. 이제 코틀러마저 '빨갱이'가 되는 건가?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 (필립 코틀러 지음 / 박준형 옮김 / 더난출판사 펴냄 / 2015.04 / 1만5000원)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 - 우리 삶이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14가지 길

필립 코틀러 지음, 박준형 옮김, 더난출판사(2015)


태그:#필립 코틀러, #더난출판사,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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