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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2013년,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 특별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마을의 귀환 시즌2는 '1인가구 공동체'에 주목합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와 마을공동체,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1인가구'와 '공동체', 나아가 '마을'의 만남은 가능할까요. '탈고립', '탈가족주의', '탈자본주의', '탈도시'...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지금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도시에서 생활하다 산골로 귀촌한 두루 씨(오른쪽)와 유라 씨는 청송에서 지역의 먹거리 개발과 도시와 농촌의 교류를 통한 지역 발전에 힘쓰고 있다.
이들은 "올해 산나물 재배와 채취에 집중할 계획이다"며 "산나물을 매개로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산나물 유통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나설 예정이다"고 말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산골로 귀촌한 두루(오른쪽)씨와 유라씨는 청송에서 지역의 먹거리 개발과 도시와 농촌의 교류를 통한 지역 발전에 힘쓰고 있다. 이들은 "올해 산나물 재배와 채취에 집중할 계획이다"며 "산나물을 매개로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산나물 유통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나설 예정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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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경상북도 청송군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서울에서 차로 4시간 30분 거리. KTX도 기차도 닿지 않는 곳이다. 산세가 험해 천혜의 요새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로 이곳에 있는 교도소만 세 곳이나 된다. 흉악범인 김길태, 오원춘이 청송의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인구는 2만6천명 수준으로 서울시내 행정동 1개의 인구보다 적다.'

'연고도 없는 '깡촌'에서 20, 30대 여성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품고 지난 7일 오전 6시 서울에서 경북 청송을 향해 달렸다.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경북 청송군 진보면 부곡리 약속된 장소에 내렸다. 오래전 폐교로 쓰였을 2층 건물이 보였다.

운동장 한쪽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에서 두 여성이 짐을 옮기고 있었다. 박스에는 참취, 나물치, 부지갱이 등등 생소한 산나물 이름이 적혀 있었다. 두 여성이 박스 십여 개를 들어 1톤 트럭 짐칸에 올렸다.

"이걸 둘이서 어떻게 다 해요?"
"다 돼요. 저희를 그냥 여자로 보시면 안 돼요. 하하하."

두 사람은 청송창조지역사업단의 두루(31)씨와 유라(28)씨. 트럭을 보내고 이들과 함께 폐교 건물로 들어갔다. '청송 다락방'이라고 적힌 공간에서 두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유라] 기계적인 삶 버리고 '산골 소녀' 이름을 얻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산골로 귀촌한 20대 산골처녀 유라 씨가 산나물을 비롯한 청송의 농산물을 소개하고 판로를 개척하기 만든 '산나물 레시피 박스'를 들보이고 있다.
'산나물 레시피 박스'는 청송에서 나는 쌀과 산나물, 고춧가루와 간장 등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설명서가 함께 동봉되어 배달된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산골로 귀촌한 20대 산골처녀 유라 씨가 산나물을 비롯한 청송의 농산물을 소개하고 판로를 개척하기 만든 '산나물 레시피 박스'를 들보이고 있다. '산나물 레시피 박스'는 청송에서 나는 쌀과 산나물, 고춧가루와 간장 등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설명서가 함께 동봉되어 배달된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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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는 농촌에서의 삶을 동경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사무직, 서비스직으로 일했다. 월 10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벌었다. 욕심이 생겨서 월급을 많이 주는 곳으로 이직했다. 삼성전자 TV에 들어가는 LCD 패널을 검사하는 공장이었다. 하루 12시간 교대 근무에 월급 250만 원을 받았다.

기계적인 일상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돈은 전보다 더 벌었지만 그만큼 씀씀이도 커졌다. 소비와 노동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구조 속의 자신이 지긋지긋했다. 휴가를 내고 경북 봉화에 있는 지인 집에 갔다. 집 인근의 산에 들어가서 산나물, 산딸기를 땄다. 그곳에서 유라는 삶의 새로운 목표를 발견했다.

"푸릇푸릇한 것들이 살아 있었어요. 신기했어요. 그리고 몸을 움직일수록, 더 부지런하게 움직일수록 제게 주어지는 것들이 더 많아졌어요. 그전에는 몰랐는데, '이런 재미가 있구나'하고 깨달았죠. 내가 가진 가능성이 크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2012년 3월,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경북 봉화로 귀촌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일거리를 찾아 시골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고생해서 수확한 농산물이 농협이나 도매상에 헐값에 넘겨지는 것을 눈여겨보게 됐다. 노인들이 노고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라는 판로를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프리마켓인 '농부의 시장'에 나가 봉화에서 난 물건을 팔기로 한 것이다. 고추장, 건표고버섯, 상추, 잡곡 70만 원 어치를 사서 2012년 5월 첫 번째 열린 시장에 나갔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완판'을 한 것이다. 그 뒤로 서울 마포구 '늘장'에서 '산골 처녀 유라'라는 간판을 달고 농산물을 팔았다. 1년 넘게 장사를 하다가 시장을 접었다. 서울에서의 삶이 팍팍했기 때문이다.

[두루] 지역에 골고루 쓰이는 삶을 찾다

 산골로 귀촌한 두루 씨가 8일 오후 경상북도 청송군 신기리 야산에서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산나물을 심고 있다.
 산골로 귀촌한 두루 씨가 8일 오후 경상북도 청송군 신기리 야산에서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산나물을 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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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짐없이 골고루'를 뜻하는 단어에서 별명을 얻었다. 사회학을 전공한 두루는 정작 자신이 사회 안에서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느꼈다. 능력도, 인맥도 부족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싶었다. 사회적 기업에서 일을 시작했다. 청년네트워크 사업을 벌이는 'OO은대학', '희망청' 등에서 활동했다.

그는 전북 전주에서 지역 사업을 벌이는 사회적 기업 '이음'과 인연이 닿아, 전북 김제·진안·고창, 전남 곡성 등을 누비며 농촌 사업을 했다. 그러다 (주)생생농업유통에서 농산물 유통 사업을 하는 친구와 함께 일을 하게 됐다. 이 회사에서 청송의 고춧가루를 팔다 청송에 자리를 잡게 됐다.

"농촌과 도시 사이에서 결핍되고 넘쳐나는 것을 교류시키는 일이 필요해요. 사람이든 농산물이든 서로 부족한 것, 넘쳐나는 것을 전달해야 해요. 사람들이 그걸 원하고 있어요."

청송사업단은 생생농업유통과 지역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단체인 청송시니어클럽, 청송군이 협력해 만든 조직이다. 청송사업단은 대통령 직속 기구인 지역발전위원회가 지원하는 '창조지역사업'에 선정돼 2014년과 올해 2년간 총 6억 원의 사업비를 받는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두루가 사업단을 총괄하게 됐고 여기에 유라가 결합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일] 산이 깊은 청송에서 '산나물 스토리'를 만들다

 산골로 귀촌한 유나 씨가 7일 오후 경상북도 청송군 신기리 야산에서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산나물을 심으며 안부를 묻고 있다.
 산골로 귀촌한 유라씨가 8일 오후 경상북도 청송군 신기리 야산에서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산나물을 심으며 안부를 묻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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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은 청송의 명산물이다. 산이 깊어 곰취, 다래순, 부지갱이, 참취, 곤드레 등의 산나물이 유명하다. 청송사업단은 단순히 싱싱한 나물만이 아니라 거기에 어르신들의 삶을 얹어 판다.

산나물에 얽힌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어 <오지의 메리트>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삼시세끼 산나물로 밥을 해먹는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또 청송에서 나는 쌀과 산나물, 고춧가루와 간장 등을 담아 '산나물 레시피 박스'를 판매하고 있다.

청년 주거 사업도 고민하고 있다. 귀촌을 꿈꾸는 청년에게 시골 빈집을 활용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의 빈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자, 빈집 대신 폐교를 이용한 '빈집 해비타트' 사업을 벌였다.

지난해 8월,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청년들에게 지역살이의 모델을 공유하는 등 귀농, 귀촌에 관심 많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농촌 맛보기 사업을 벌였다. 시골의 한겨울 필수품인 화덕과 난로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올해는 산나물 재배와 채취에 집중할 계획이다. 산나물을 매개로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산나물 유통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나설 예정이다.

[미래] "이곳에서는 제 능력치가 높아지는 것 같아요"

 유라 씨가 지난해 귀농, 귀촌에 관심 있는 청년들과 함께 적정기술로 만든 화덕과 난로를 보여주고 있다.
 유라 씨가 지난해 귀농, 귀촌에 관심 있는 청년들과 함께 적정기술로 만든 화덕과 난로를 보여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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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에 깃든 지 1년이 지났다. 두 사람은 현재 청송군 진보면사무소 근처에 집을 얻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청송에서의 삶에 만족하는지 묻자, 유라가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부모님은 저보고 '미친X'이라고 해요. '왜 시골에서 사느냐', '거기서 무슨 비전이 있냐' 물어요. 이제는 무섭지 않아요. 겁나는 게 없어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맞는지는 고민해요. 지금은 어리지만 서른다섯, 마흔이 돼서도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죠. 저는 여기보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편한 것만 찾다 보면 내 능력은 점점 줄어들어요. 농촌에 있을 때 제 능력치가 높아지는 것 같아요."

두루는 청송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밀집된 도시의 삶에서는 스트레스도 심하고 짜증을 쉽게 내던 두루였다. 청송에서 자연과 함께 숨쉬는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 뒷산이 주왕산 국립공원이에요. 온천도 있고요.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사치도 많아요. 좋은 공기 마시며 넓은 곳에서 살 수 있다는 것, 소음과 공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큰 만족이에요."

그는 여자들에게 귀촌이 어려운 일 아니냐는 우려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어쩌면 결혼이나 가족부양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덜하기 때문에, 결심이 수월할 수도 있다. 두루는 청송에 평생 정착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자연스럽게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여기서 한평생 살겠다는 각오로 지내는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언제든 떠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기회가 왔을 때 선택을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두 사람은 산나물 여섯박스를 싣고 트럭에 올랐다. 두루가 트럭의 시동을 걸고 수동 기어를 넣었다. 산골 어딘가에서 산나물 작업을 하고 있는 어르신을 향해 출발했다. 트럭이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연기를 내뿜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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