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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0세에 공무원이 되었다(관련기사 : 나이 오십에 공무원 되는 법, 이 남자에게 배우세요). 2005년 장애를 얻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복귀하기 위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 지 5년만인 2014년, 전라북도 지방직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전주의 한 주민센터에 근무 중이다.

임용 후 지금까지 늦은 나이와 장애로 인한 어려움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임용 후 4개월 여만에 주말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전국에서 여섯 번째 큰 주민센터로 은행에서 사용하는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민원인이 많은 곳이다.

공무원이 업무를 익히는 시보시절에는 현장훈련(on-the-job training)을 통해 선임자로부터 업무를 통해 실무를 습득한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는 주민센터는 밀려오는 민원인 때문에 자기 업무를 처리하기 바빠 근무시간에 가르치고 배울 여유가 전혀 없다. 그러다 보니 일과 후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업무를 익히면서 자기가 맡은 일을 처리해야만 한다. 

3월 20일 오전 9시경 사진으로 번호표를 들고 순서를 기다릴 정도로 늘 민원인이 많이 찾는 전주시 효자4동 주민센터.
▲ 민원인들로 늘 붐비는 주민센터 3월 20일 오전 9시경 사진으로 번호표를 들고 순서를 기다릴 정도로 늘 민원인이 많이 찾는 전주시 효자4동 주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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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효자4동주민센터 시민생활지원 8, 행정민원 7 총 15개의 창구에서 민원인을 맞는데 필자는 이 중 7번창구를 지키고 있다.
▲ 총 15개의 민원창구가 개설된 전주시 효자4동 전주시 효자4동주민센터 시민생활지원 8, 행정민원 7 총 15개의 창구에서 민원인을 맞는데 필자는 이 중 7번창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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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같은 동기, 나이가 같은 담당 계장님

임용 초기 동기모임에 나가보니 한 친구가 자기 어머니와 내가 동갑이라고 말해 그 친구와 별도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함께 임용된 29명의 동기들 중 4명이 한 주민센터에 발령을 받고 온 첫날, 상견례를 하면서 담당 계장님이 같은 용띠라며 늦은 나이에 합격했다고 놀라워 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신입들과 구청장님이 식사하는 자리에서나 인근의 다른 주민센터에 업무차 갔을 때 내 나이가 화제가 되곤 했다.

여러 곳에서 내가 화제가 되는 것과는 별개로 결재판을 들고 다닌 경험을 가진 내가 전자결재시스템에 적응하는 것부터 시작해 한 사람의 공무원 몫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온전히 한 사람 몫을 감당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전주시 33개동에 29명의 동기들 중 4명이 우리 주민센터로 발령났다. 그만큼 인력난이 심했단다. 내 전임자는 세무, 어디서나 민원, 무인민원발급기(총 6대)를 담당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내가 온 후, 세무와 어디서나 민원만 맡겼는데, 그 역시 어려워하는 기미가 보이자 세무만 2개월여 맡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그런 배려 덕에 이제는 세무와 어디서나민원을 담당할 수 있게 됐다. 넉넉한 동장님과 합리적이었던 동갑인 전임(2월 다른 근무지로 전보)계장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시의회 의장, 자원봉사자들, 주민센터 직원등 많은 사람이 참석한 행사에 필자도 참석해 힘을 보탰다.
▲ "효자4동, 겨울 나기 사랑의 김장 김치 나누기 "행사에 참석한 박현규전주시의회 의장 시의회 의장, 자원봉사자들, 주민센터 직원등 많은 사람이 참석한 행사에 필자도 참석해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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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발령을 받고 동장님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내가 장애자라는 이유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어떤 일이든지 열외를 시키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작년 11월 28, 29일 있었던 '효자4동, 겨울나기 사랑의 김장 김치 나누기' 행사에 담당계장님이 집에 있는 내게 전화로 알려줘 기쁜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김장을 담근 후 박스로 포장을 하면, 그 박스를 밖으로 옮겨 쌓는 일을 맡았다. 

어릴 적  김장을 담그던 날의 잔치날 같던 흥겨움을 느낄 수 있어 즐거웠다. 행사가 끝나고 내게 전화를 한 계장님에게 "전화를 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나이와 장애 때문에 나에게 부담을 가질 것 같아, 내가 먼저 부담을 갖지 말아달라고 분명히 의사를 밝히니,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할하게 될 수 있었다. 

넉넉한 동장님을 비롯한 22명 전 직원들의 도움과 성원으로 오늘도 즐겁게 일을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10여 년을 직업 없이 살면서 재활과 학습에만 매진하느라 현실과 동떨어진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기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내가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사람으로 김민정(40, 전주시 효자동)씨가 있다. 민정씨는 직원이 아니고 출산이나 육아, 가사 휴가 등으로 결원 발생 시 대체하는 이른바 '대체인력'이다. 처음 일을 하며 낯설어 하는 내게 밝고 쾌활하게 업무를 알려 주었다. 

비록 정규직이 아니었지만 그녀가 민원인을 상대하는 것을 보며 내 공직생활의 사표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단지 기능적인 일 중심인 업무에 능숙해서가 아니라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가 항상 민원인 편에서 업무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가령 아이엄마가 아이를 안고 와서 신청서를 써야할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안고 신청서 작성을 돕기도 하고 연세 든 어른들이 찾아와 구비서류가 적힌 메모지를 내밀면 주민센터나 전주시 업무가 아니더라도 일일이 전화해 대신 신청해 주기도 하고 팩스로 받아 건네주기도 한다.

그렇게 챙겨가며 업무를 처리해도 밀리지 않고 물 흐르듯 척척 해낸다. 그래서 직원들 누구라도 어떤 분야의 일이건 주저하지 않고 그녀에게 맡긴다. 거기에 아줌마의 수더분함까지 있어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먼저 자청해서 하곤 하는데 그녀는 결혼 전인 20대 중반부터 이런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거의 계장급의 캐리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공직생활의 사표로 삼으려는 김민정씨와 민원인으로 찾았을 때 상큼한 미소와 친절로 큰 위안을 주었던 한미희(28, 전주시 효자동)씨 등 세심한 배려와 성원으로 도와준 직원들의 업무 모습
▲ 필자가 지키는 행정민원 7번창구에서 바라본 행정민원창구 필자가 공직생활의 사표로 삼으려는 김민정씨와 민원인으로 찾았을 때 상큼한 미소와 친절로 큰 위안을 주었던 한미희(28, 전주시 효자동)씨 등 세심한 배려와 성원으로 도와준 직원들의 업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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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를 포함해 민원인으로 주민센터를 찾앗을 때 상큼한 미소와 친절로 내게 큰 위안을 주었던 선임인 한미희(28, 전주시 효자동)씨와 동기로 함께 발령을 받아 표시나지 않게 큰 도움을 준 김명주(29, 전주시 삼천동)씨 등 22명의 효자4동 직원 모두가 늙은(?)9급 신입공무원인 나에겐 고마운 분들이다. 오늘도 난 전주시 효자4동의 행정민원 7번 창구를 즐거운 마음으로 지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효자4동 주민센타 홈페이지(http://hyoja4.jeonju.go.kr)에 중복 게재합니다



태그:#서치식 ,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 #하프 마라톤 완주, #완전한 재활, #효자4동 주민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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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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