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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2015년 1월 27일 임재춘의 농성일기
 2015년 1월 27일 임재춘의 농성일기
ⓒ 임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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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를 결성한 지 벌써 3년이 되어가는 콜밴(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만든 밴드)은 작년 가을부터 자작곡을 가지고 우리 상황을 알리고 다녔다. 첫 번째 자작곡은 콜트악기 방종운 지회장의 시를 수정한 <꿈이 있던가>이다. 이 곡은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당하고 있는 이 시대를 강조한 노래이다. 첫 창작곡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멤버들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많았던 곡이다. "우리끼리 만들자", 아니면 "타인에게 부탁하여 만들자" 등….

그러다 방종운 지회장에게 평소 써왔던 시를 달라고 하여 가사를 만들어갔다. 작곡은 우리가 할 줄 몰라서 여러 지인들이 도와주었다. (작곡을 마치고) 처음 곡을 불렀을 때 음이 단조롭고 강조하는 내용이 없어서 완성해놓고도 몇 개월 동안은 부르지 않았다.

작년 가을 두 번째 자작곡 <주문>을 만들면서 <꿈이 있던가>도 편곡해 요즘 공연 때마다 부르고 있다. <꿈이 있던가>에서는 "사람이 하늘이다"란 가사가 (후렴으로) 반복된다. 가사처럼 사람이 하늘대접 받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주문>은 첫 번째 곡과 달리 빨리 만들어졌다. 경봉이 형이 쓴 글에 우리가 콜텍 본사 집회에서  한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곡이다. 정리해고 하는 경영자들에게 저주를 바라는 내용과 한국의 해고자들에게는 절박하지만 희망을 가지자는 내용이다. 특히 콜트콜텍의 농성 날짜가 들어가 있는 게 특징이다. 공연이 있는 날마다 그래서 가사가 달라진다. 인근이가 곡을 붙였다.

이 곡을 만들 때부터 '옛정서 발굴 밴드 푼돈들'과 같이 만들었다. 콜밴과 푼돈들은 첫 연주 때 꽹과리, 일렉 기타 등 여러 악기들로 합주하였는데, 마치 계룡산 무당에게 신이 내리는 느낌이 난다. 내 머리 속의 무당은 액운을 쫓아내고 잡귀로부터 집안의 우환과 아픈 몸을 낫게 하기 위해 굿을 한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환과 아픈 곳이 사라진다고 상상하는데, 무당은 그래서 일종의 신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삶보다 수백 수천 배의 고통 속에 신음하면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처절하게 살아야 된다고" 하는 내용이 내 생각으로는 이 곡의 하이라이트이다. <주문>은 2014년 이용석 가요제의 금상 수상곡이기도 하다.

세 번째 곡 <서초동 점집>에는 작년 초부터 진행한 대법원 1인시위와 5~6월의 24시간 불철주야 대법원 시위에서 겪은 일들을 가사로 담았다. 시민들이 한국의 사법부와 법원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내 <농성일기>에서 대법원을 풍자한 이야기를 골라서 만들었다.

콜밴의 자작곡 <서초동 점집>의 가사와 코드
 콜밴의 자작곡 <서초동 점집>의 가사와 코드
ⓒ 임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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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울타리의 빨간 장미넝쿨은 아름답지만 14명의 대법관 판사들은 검정색으로 썬팅한 차를 타고 다니니 그 장미를 보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검은 차는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한다. 콜텍의 미래 경영까지 걱정하는 판결은 빨간 장미와 달리 검은 모습 그대로이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예견해서 돈을 벌고 사기를 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이 점집이다. 그 중 한 곳이 법원이 아닌가 싶어 노래를 만들었다. <서초동 점집>이란 제목은 길벗의 이승현 한의사가 노래 가사를 보고 제안했다.

첫 번째 곡과 두 번째 곡은 가사와 노래가 길지만 <서초동 점집>은 가사도 짧고, 리듬도 빨라 따라 부르기 쉽다고 한다. 하지만 가사 만들 때 내 생각과는 다른 내용으로 전개되어 마음이 많이 상했다. 각자 자신들이 떠올린 가사가 더 좋다고 우겨 내가 써온 가사가 많이 수정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 잡고 이해하였다. 내가 제안한 가사 내용은 많이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세 번째 곡이 인기가 최고 좋다. 민변 권영국 변호사님은 <서초동 점집>을 처음 듣고 악보를 달라고까지 했다.

자작곡을 만들 땐 우리 곡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발표 후 주위의 반응이 좋으니까 정말 좋아서 그런 건가 의심도 들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진다. 콜밴은 매주 화요일 자작곡을 만들고 있다. 세 번째 곡까지는 금방 나왔지만 네 번째 곡은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 한 달에 한 곡씩 내자고 약속 했지만 잘될지 걱정이다.

평소에도 콜밴 멤버들이 가사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을 메모해야 하는데 그런 습관이 아직 생기지 않았다. 문제는 작사이고 작사만 되면 여러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싶다. 멤버들이 작사하는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에 화요일에 싸움터가 되기도 한다.

민중 속으로 들어가 콜밴이 한 곡이라도 히트치고 싶은 게 내 꿈이다. 자작곡을 만들면서 가수들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미안할 뿐이다. 문화제(수요문화제, 유랑문화제)를 하면 가수들이 와서 노래를 하는데, 그저 듣기만 했다. 막상 우리가 자작곡을 만들게 되면서 작사와 작곡, 리듬과 박자를 정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고, 앞으로는 가수들이 노래를 하면 열심히 듣고 박수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연대해준 가수들의 어려움을 잘 몰랐던 것이 창피하다.

2015년 1월 27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네 번째 자작곡 만드는 콜밴... 들을 때마다 전해지는 '서러움'

자작곡 <주문>으로 2014년 이용석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은 콜밴. 연주와 곡 작업을 도와준 '푼돈들'과 함께 기념촬영.
 자작곡 <주문>으로 2014년 이용석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은 콜밴. 연주와 곡 작업을 도와준 '푼돈들'과 함께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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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우스갯소리로 '콜밴의 음악사적 가치가 무엇인가'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작년 8월 30일 '저항문화제' 자리에서였다. 당시 공연장의 게스트는 콜밴의 그 가치가 "다른 밴드에게 자부심을 주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관객들은 실수 연발 콜밴의 그간 무대를 연상하며 크게 웃었다. 이어서 콜밴의 보컬 이인근은 게스트에게 반격의 답을 했다. "그래도 우린, 자작곡이 있는 밴드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 자작곡, 사실상 첫 번째 자작곡에 해당하는 <주문>을 연주했다. 관객들의 박수가 넘쳤다.

기나긴 농성은 할 일이 없는 서늘한 침묵의 시간과 함께한다. 아무리 결연한 의지로 싸운다 한들 매일이 집회 같을 수 없다. 하루 일정을 마친 늦은 저녁 농성장은 어둡고, 때론 춥거나 더운데, 그 시간은 TV도 없이 대화가 중단된 무료한 시간이다. 게다가 콜텍이든, 콜트든 두 기타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은 조합원 수도 많지 않으니 집회 대오를 갖춰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도 만만치 않다.

그들에게 밴드의 결성은 기타 노동자란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중소사업장 장기 농성자들의 영리한 선택이기도 하다. 밴드라면 집회를 잡지 않아도,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밴드 연습으로 집회나 문화제가 없는 침묵의 시간들이 훨씬 활기차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밴드를 결성하고 유지하는 일이 마냥 자연스럽고 쉬운 일은 아니다. 박치 수준에 가깝던 그들의 연주는 연습량과 상관없이 실수들로 채워졌다. 아무리 아마추어라 해도 관객 앞에서 수차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공연 후 서로의 실수에 못마땅해 하는 말들을 하고, 또 그것이 화근이 되어 싫은 소리들을 주고받을 때도 많았다. 콜밴이란 밴드를 결성하기 전까지 그들이 어떤 처절한 몸부림을 해왔는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공연 일정이 많은 그들에게 음악만 하고 투쟁은 언제 하냐는 삐딱한 시선을 보낼 수도 있다.

게다가 콜밴은 누구나 아는 카피곡을 불렀다. 물론 그들이 '이치헌과 벗님들'의 노래, '송골매'의 노래를 부를 땐 어딘지 더 구슬퍼지고 왠지 모르게 처연하다가 돌발적인 실수들이 주는 웃음은 애절하게 웃겼다. 그래서 환호도 많이 받아왔지만 카피 밴드의 한계는 당연히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소위 말하는 '민중가요'도 콜트-콜텍 8년의 농성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결국 농성 9년째로 접어든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대중에게 전하는 방법은 '자작곡' 뿐이다.

자작곡이 절실해지기 시작한 때, 본격적으로 그 필요가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은 작년 6월 말이었다. 콜텍 사측과의 법적 싸움에서 모두 져버린 그 순간, 해야 할 말이 오히려 넘쳐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들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마음 먹었다 한들, 내부에서 기어나오는 패배의식을 막을 수 없고 외부에서 들리는 회의 섞인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던 때. 그래서 더욱 콜밴의 무대가 소중해지는 시점이기도 했다. 작년 여름 끝 무렵부터 자작곡 만들기는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콜밴의 네 번째 자작곡 가사. 제목은 미정.
 콜밴의 네 번째 자작곡 가사. 제목은 미정.
ⓒ 임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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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밴의 멤버 한 명씩 가사를 써왔다. <주문>의 가사는 김경봉의 글을, <서초동 점집>은 임재춘의 글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한 명이 써온 가사에 서로의 의견이 더해지면서 다듬어지는 시간들이었다. 매 순간이 너무나 치열했다. 서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들도 나왔다. 소위 밴드들의 그 흔한 "음악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라는 것이 콜밴에게도 오는 것 아니냐는 농담으로 그 치열함을 인지하기도 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한 마디라도 더 들어가길 원하는 것은 음악가로서라기보단 농성으로 잔뼈 굵은 이들의 자존감 때문이었다. <서초동 점집> 가사를 정할 땐 그 치열함이 극에 달해 자신의 가사가 왕창 수정된 것에 화가 난 임재춘 조합원은 작곡교실에서 두 시간 가까이 사람들과 말을 하지 않았다. 김경봉, 임재춘 조합원 다음의 가사 담당자는 이인근 지회장이었다. 그 열기에 주눅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며칠 고생해 쓴 가사를 멤버들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스스로 폐기처분 했다.

그 후에도 가사를 준비해오지 않은 이인근 지회장은 퉁명스럽고도 집요한 태도로 작곡교실에서 침묵했다. 그러더니 그 다음주에 완결된 틀의 가사를 떡 하니 내놓았고, 그것을 토대로 지금 콜밴의 네 번째 자작곡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번 <임재춘의 농성일기> 주제이기도 한 양화대교 송전탑 농성에 관한 기억들이 담겨 있다(관련기사 : 한 달 만에 시체 같은 모습으로 온 그, 눈물이 났다).

제목은 아직 미정이다. 그 곡의 내용은 대충 정리하면 이런 것이다. '허공에 올랐다.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고프다 배가 고프다, 서럽다. 삶이 서럽다….' 콜밴의 자작곡이 늘어갈 때마다 다음 곡에 대한 부담감은 몇 배씩 늘어난다. 그럼에도 이들은 카피곡에 다시 눈을 돌릴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들 각자가 마음속에 써온 농성일기를 한번 꺼내놓고 나니 불현듯 이야기는 터져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8년이므로….

월요일 합주 연습, 화요일 작곡교실로 이어지는 콜밴의 내부 일정은 그 자체로서 '음악사적 가치'를 갖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가 해고가 돼서야 기타를 칠 수 있게 되었고, 생산의 자리를 빼앗긴 후에야 온전히 자기 것을 생산하고 있으니. 삶의 아이러니이고, 그 자체로 문학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자작곡을 연주할 때마다 감성이입으로 서러움에 몸서리친다.




태그:#콜트콜텍, #콜밴, #정리해고, #위장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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