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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본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어쩌다' 관람했다. 그런데 웬걸! 한 편이 두 편 되더니, 두 편에서 세 편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자꾸만 손이 가는 새우 과자처럼 일단 마음이 동하니 발은 알아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2014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창작뮤지컬 우수작품 제작지원작 특별기획전의 세 작품을 감상했다.

그의 '울게 하소서' 하나면 충분하소서

 뮤지컬 <파리넬리>는 사람들에겐 천국을 선사하지만 정작 자신은 지옥을 견디는 인간 카를로 브로스키의 고뇌와 갈등을 조명했다.
 뮤지컬 <파리넬리>는 사람들에겐 천국을 선사하지만 정작 자신은 지옥을 견디는 인간 카를로 브로스키의 고뇌와 갈등을 조명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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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관람작은 뮤지컬 <파리넬리>다. 개막 전부터 카스트라토를 소화할 배우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고유진과 루이스 초이의 더블 캐스팅 소식이 전해져 화제가 된 바 있다.

특히 루이스 초이는 독일 뒤셀도르프 국립음대의 첫 아시아 카운터테너이다. 지난해 6월 시범공연에서 보여준 소름끼치는 음색으로 관객들로부터 눈도장을 찍으며 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뮤지컬 <파리넬리>는 사람들에겐 천국을 선사하지만 정작 자신은 지옥을 견디는 인간 카를로 브로스키의 고뇌와 갈등을 조명했다. 1막과 2막의 비중차가 상당하다. 이는 1막의 백미여야 할 거세 장면에서 안무와 조명을 활용한 세련된 표현도 좋지만 약한 임팩트가 남긴 아쉬움 때문이다. 또한 헨델의 <리날도>를 둘러싼 갈등의 두 양상(형과 카를로의 연인인 남장 카스트라토 안젤로)이 2막에 치중되면서 상대적으로 주춤하는 인상의 1막 전개속도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루이스 초이의 '울게 하소서'가 극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 모든 아쉬움은 한줌의 티끌이 되어 사라진다. 남는 것은 절정의 감동, 그 뿐이었다.

남모르게 타는 가슴마다 새겨진 또 다른 '주홍글씨'

 박인배는 진실을 숨긴 채 고통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딤즈데일, 박은석은 분노와 질투로 자멸의 길을 향해 걸어가는 칠링워스로 분했다.
 박인배는 진실을 숨긴 채 고통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딤즈데일, 박은석은 분노와 질투로 자멸의 길을 향해 걸어가는 칠링워스로 분했다.
ⓒ 극단 죽도록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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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관람작은 극단 '죽도록 달린다'의 서재형 연출과 한아름 작가의 뮤지컬 <주홍글씨>이다. 공연 모든 회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무엇보다 소극장 환경을 고려해 무대와 객석 사이를 허물어 확보한 보다 넓은 공간, 여기에서 펼쳐진 30여 명 배우들의 합창과 움직임은 빠른 템포의 음악과 만나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했다.

뮤지컬 <주홍글씨>는 고전을 원작으로 둔 탓에 제작진에게 적잖은 부담감을 줬다. 우려 섞인 시선들도 교차했다. 하지만 원작의 큰 줄기를 따르되 이야기의 흐름이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선별하고 압축한 장면들이 빠르게 전개된다. 극의 집중도를 높이면서 고유의 원작이 간직한 매력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관객들을 극 속으로 끌어당겼다.

아쉬운 점도 있다. 로저 칠링워스의 주도면밀한 복수 과정이 마녀사냥과 맞물려 딤즈데일의 남모른 고통이나 헤스터 프린이 감당해야했던 날카로운 시선 그 이상으로 부각됐다.

배우들의 호연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오진영은 사랑을 지키고자 용감해져야 했던 헤스터 프린, 박인배는 진실을 숨긴 채 비겁한 침묵 속에서 남모르게 타는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 속에서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는 딤즈데일, 박은석은 분노와 질투로 자멸의 길을 향해 걸어가는 칠링워스로 분했다. 노래와 대사는 물론 말투와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도 디테일을 살려내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구원의 음을 향한 우륵'만'의 멀고 험한 여정

 뮤지컬 <가야십이지곡>은 백제와 신라 사이의 전쟁에서 사라져가는 가야를 살리기 위해 구원의 음을 찾으러 떠난 우륵의 여정을 그렸다.
 뮤지컬 <가야십이지곡>은 백제와 신라 사이의 전쟁에서 사라져가는 가야를 살리기 위해 구원의 음을 찾으러 떠난 우륵의 여정을 그렸다.
ⓒ 극단 기능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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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가야십이지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음악극창작과 출신들이 모인 창작집단 '기능재부'의 작품이다. 우륵이 가실왕의 명을 받아 12곡을 지었다는 삼국사기의 한 구절로부터 출발한다. 극은 백제와 신라 사이의 전쟁에서 사라져가는 가야를 살리기 위해 구원의 음을 찾으러 떠난 우륵의 여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별 거 아닌 듯 보이는 사랑과 사람이 절망의 순간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임을 노래했다. 그러나 이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풍부한 상상력과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길 위의 우륵은 신탁과 의지 사이에서 방황하다 단 하나의 음도 짓지 못한 채 다시 가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가야의 멸망은 가까워오고 우륵의 고뇌는 깊어가지만 관객들은 절정의 순간마저도 담담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가야의 쓰러져가는 모습은 관객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극은 우륵 내면의 갈등을 관객이 이해하도록 요구했지만 어느새 벌어진 배우와 관객의 거리는 쉽게 좁히지 못할 만큼 떨어져 있었다.

작가는 "큰 이야기인 척하는 작은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했다. 기존의 창작물에서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색채의 음악적 성과는 있다. 하지만 작가의 바람과 음악적 성과가 관객들에게 닿기 위해서는 가야의 멸망과 우륵의 여정을 보다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여줄 소소한 풍경들이 필요했다.

소율의 말처럼 미미한 음들도 소리 내야 음으로서 존재하고, 우륵의 말처럼 작은 음들에도 그 나름의 쓸모는 있는 법이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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