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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9시 대한문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리고 그 옆으로 쌍용 자동차와 세월호 참사 현수막이 걸려있다.
▲ 기자회견 그리고 두 개의 현수막 토요일 오전 9시 대한문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리고 그 옆으로 쌍용 자동차와 세월호 참사 현수막이 걸려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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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토요일 오전 9시. 덕수궁 앞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중국인 관광객이 대한문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연신 찍어대고 있었고, 바로 그 옆에서는 '기다림과 진실의 버스'의 조촐한 기자회견이 몇몇 언론사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조속한 인양'을 촉구하는 30분 가량의 짧은 기자회견 자리가 파하는 순간, 그 자리조차 중국인 관광객의 사진 명소로 다시 채워졌다.

그 옆으로는 노란색 현수막 두 개가 말없이 펄럭였다. 하나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였고, 다른 하나는 쌍용 자동차 정리해고로 고인이 된 이들을 알리고 위로하는 현수막 '이 예쁜 꽃들 밑에는 25명의 생명이 묻혀 있습니다'였다. 그렇다. 이곳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분향소가 있던 자리다.

우비를 입고 문화제에 참가한 사람들
▲ 팽목항 풍경 우비를 입고 문화제에 참가한 사람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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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3월 이곳 쌍용차 분향소 천막의 3분의 2가 갑작스럽게 까맣게 전소됐다. 방화범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50대 남성으로 밝혀졌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해 4월 새벽 5시,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마치 군사 작전처럼 빠른 속도로 남은 분향소 철거 작업과 함께 꽃 화단 조성 작업이 이루어졌다.

마치 이곳은 아무 일도 없었던 장소인 것 마냥, 카모플라주(보호색이나 형태 등을 통한 동물들의 위장술)한 것만 같은 공간이 되었다. '예쁜 척' 심어진 꽃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이처럼 사회의 아픈 면을 치유하기보다는 감추는 데 더 급급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거짓된 공간 위에서 다시 위장을 거듭해 25명의 꽃들이 잠들어 있는 공간으로 현수막을 쳐 놓은 것이다. 안전망 없는 사회에서 기업의 책임 회피성 정리 해고로 직장을 잃고 삶을 포기한 사람들에 이어, 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회가 일으킨 세월호 참사까지. 끊임없이 반복되는 싸움과 갈등들을 지켜보며 여러 질문과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변할 수 있을까. 기다림과 진실의 버스를 통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진눈깨비가 날리는 팽목항 그리고 무지개

오전 9시 30분께 기자회견이 끝나기 무섭게 '부릉' 버스 시동이 걸렸다. 북적이는 중국인 관광객들, 노란 현수막과 노란 리본은 점차 차창 밖으로 밀려나고, 서울시의 주말 아침 풍경과 눈 덮인 고속도로가 이어졌다. 그렇게 꼬박 6시간을 진도 팽목항을 향해 달렸다.

언제 잠이 들었던 것일까. 버스 좌석에 앉아 말뚝잠을 자느라 목이 저렸지만, 한두 번 깨어났던 기억 외에는 꽤 단잠을 잔 듯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어느새 우중충한 먹구름이 끼어 있었고, 곳곳에 '진도'라고 쓰인 간판의 글자가 보였다. 유가족들이 임시 거주하며 실종자들을 기다리던 텅 빈 진도 체육관을 지나, 오후 3시 40분께가 돼서야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북받친 설움처럼 바람살이 거칠어지며,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서 궂은 날씨를 대비해 준비한 일회용 우비가 없었으면 맵고 차게 불어오는 고추바람과 진눈깨비 속에서 쫄딱 젖은 채로 언 동상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우비를 두꺼운 누비옷(패딩) 위로 걸치고 팽목항 붉은 등대를 향해 걸어갔다. 방파제 위로 기다랗게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양 옆으로 노란 리본들이 난간에 촘촘히 매달려 나부끼고 있었다. 그 뒤로는 구름 사이로 햇빛과 함께 커다란 무지개가 내려와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비와 눈, 무지개와 햇빛이라니, 날씨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졌다면, 이날의 기분은 이 모든 감정이 혼재된 상태가 아니었을까.

4시 16분 문화제의 시작, 그리고 광주지혜학교 학생들의 노래

도착한 팽목항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 거친 바람살과 진눈깨비 속에서 도착한 팽목항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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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는 오후 4시 16분에 맞춰서 시작되었다. 각 지방에서 올라온 600명 가량의 사람들은 진눈깨비에 축축하게 젖은 행사용 플라스틱 의자의 물기를 닦아내며 문화제에 참가했다. 이 추위를 견디며 3시간 이상 진행되는 행사를 과연 끝까지 참가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광주 지혜학교 학생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것들'(양희은)이 팽목항에 울려 퍼지면서 바람과 진눈깨비는 멈춰선 시공간에 그저 존재하는 것이 돼버렸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잠시나마 고요해진 바다 수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잠긴 영혼들의 넋을 달래고, 또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사라진 숲에는 나무들만 남아있네~ 때가 되면 이들도 사라져 음~ 고요만이 남겠네.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너는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 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광주지혜학교 학생 6명이 부르는 노래. 양희은씨의 ‘아름다운 것들’
▲ 밴드 ‘등대’의 공연 광주지혜학교 학생 6명이 부르는 노래. 양희은씨의 ‘아름다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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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붉은 등대' 밑에서 노래를 불렀던 이 아이들의 밴드 이름은 '등대'다. 밴드 '등대'는 광주 지혜학교 학생들이 2013년에 결성했다고 한다. 이제는 속세를 떠난 이들과는 다른 시공간에 머물게 됐지만, 진주처럼 아름다운 필연이 있다면 바로 떠나간 이들과 노래 부르는 아이들의 이러한 만남이 아닐까.

학교와 지역은 달라도 이들은 떠나간 또래 친구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지난번 공연에서는 눈물 때문에 공연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이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적신다. '밴드 등대'의 청초한 노래가 떠나간 아이들에게 가 닿기를 가슴 깊이 바라본다.

팽목항에서 풍등을 날리며

팽목항에서 기다림의 버스 사람들은 풍등을 날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 풍등을 바라보는 아이 팽목항에서 기다림의 버스 사람들은 풍등을 날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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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팽목항에서의 문화제는 풍등을 날리며 마무리 되었다. 붙어 앉아 있던 사람들 5~6명이 한 조가 되어 등불에 불을 붙이고, 기낭에 충분히 공기가 찰 수 있도록 사방에서 잡아주었다.

아이들은 붉게 타오르는 심지에 불꽃을 보면서 손을 뻗어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 또한 희망과 위로의 마음을 품었으리라. 모두 함께 풍등을 날리는 순간 풍등은 천 개의 별빛으로 반짝이며 밤하늘을 밝혀 주었다.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풍등을 한참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 무슨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마치 서로가 대화를 거부하듯 조용히 그들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 채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두가 추운 날씨 속에서 영혼을 어루만지는 고된 작업을 했기에 그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온 듯했다. 하지만 이 작업을 유가족들은 매일처럼 반복하고 있지 않던가.

팽목항 문화제를 함께 한 사람들과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충분한 대화를 하지 못했음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떻게 넋을 위로하고 달랬는지, 어떻게 이 밤의 추모행사를 치렀는지 얘기하면서 우리 안에 혼재된 감정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나눴어야 하지 않았을까.

위로하는 일과 위로받는 일

팽목항에서 기다림의 버스 사람들은 풍등을 날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 밤하늘의 불 빛 팽목항에서 기다림의 버스 사람들은 풍등을 날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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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남은 실종자들의 조속한 인양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팽목항을 방문해 보는 일이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곳곳에서 벌어지는 세월호 참사에 관련된 행사나 문화제, 모임, 전시 등을 통해 지속되는 참사의 시간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며 힘을 실어주는 일이 있다.

이런 행동들은 단순히 위로를 주는 행위가 아니라 위로를 받는 일에 가깝다. 그들의 손을 잡으며 우리가 받은 상처를 치료하고, 그들을 응원하면서 우리 스스로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던지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위로하게 된다.

마냥 앉아서 슬퍼하기보다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틈틈이 쪼개서, 세월호 참사를 향해 한 발자국 더 다가가 보자. 가까이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서촌갤러리에서 하고 있는 박예슬양과 빈하용군의 전시에서처럼 그들이 남긴 흔적을 보며 위로받고, 그들의 남다른 재능에 놀라움도 느껴보자. 그리고 꿈이 실현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기쁨'이란 감정도 느껴보자. 이런 일련의 활동들을 통해 우리 또한 성숙해지리라.

진눈깨비가 바람에 흩날리고 구름 사이로 해가 비치며 무지개가 핀 진도 팽목항
▲ 팽목항 무지개 진눈깨비가 바람에 흩날리고 구름 사이로 해가 비치며 무지개가 핀 진도 팽목항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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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기다림의 버스
팽목항의 기다림과 진실을 찾기 위한 기다림의 버스가 매주 토요일 무박 2일 일정으로 서울-팽목항을 왕복한다.

탑승 신청서 작성 및 문의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홈페이지(http://jindo.sewolho416.org)에 들어가 상단에 위치한 카테고리, '행동'에서 '기다리는 팽목항'을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다. 승차권은 왕복 4만 원이며(식대는 별도), 일정 상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후원으로 마음을 보낼 수 있다(기다림과 진실의 버스는 800여 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구성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서 기획 운영한다).



태그:#세월호 참사, #기다림의 버스, #팽목항 문화제, #기다림과 진실의 버스,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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