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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무렵이었을까. 초저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자기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다. 완전한 맺음이 주는 공포에 압도된 채 며칠이 흘렀다. 그 며칠 동안의 고통, 외로움이 지금도 소름이 돋을 만큼 또렷하다. 아버지는 술자리가 잦았고, 어머니는 밤늦도록 끝도 없는 집안일로 분주했기 때문에, "엄마 나도 죽어?"라는 질문은 무지막지한 욕설에 파묻혔다.

제목부터 섬뜩하다.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이란 부제와 함께 나타난 신간, <죽음>을 소개한다. "삶은 죽음을 향한 끊임없는 시도다"라는 톨스토이의 말로 시작해 "죽음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축복 중 최고의 축복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말로 끝을 맺는 책, <죽음>은 현대인들이 터부시 하며 외면하고 있는 '죽음'이라는 의제를 삶의 일부로 귀속하려는 노력의 산물로 보인다.
<죽음> 표지
 <죽음> 표지
ⓒ 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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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좋은 죽음, 나쁜 죽음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죽음>이 먼저 소개하는 것은 죽음에 관한 이론이다. '죽음 현저성'과 '공포관리이론'이다.

인간은 죽음에 관한 이미지에 노출되었을 때 훨씬 더 극적인 판단을 내리게 되는데 이것을 '죽음 현저성(mortality salience)'이라 부르고, 또한 대부분의 인간 행위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무시하거나 회피하려는 의도로 행해진다고 하는데 이것은 '공포관리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와 관련 있다.

20세기가 되기 전에 인간은 성(性)을 터부시 했다고 한다. 섹스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꺼린 이유는 성행위의 동물성 때문이었다. 섹스가 동물적 욕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입에 담지 않았던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어니스트 베커는 자신의 저서 <죽음의 부정>에서 '섹스와 죽음은 쌍둥이'라고 밝히면서 그 이유를 인간은 '인간이 동물일 뿐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동물은 죽고 인간은 불멸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섹스나 죽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구성원들에게 죽음이 각성되면 사람들은 문화적 가치나 규범을 더욱 수호하려 하며, 이를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부정적으로 반응한다고 한다. '정의로운'사람이 된다는 거다. 죽음의 인식은 우리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거다.

2부- 사후 세계와 의식

네덜란드 심장전문의 핌 반 롬멜 박사는 근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을 의학적으로 연구해 인정받은 학자다. 그의 연구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약 4년 동안 10개 병원에서, 심장이 멈춘 후 기적적으로 소생한 환자 344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의학적으로 죽었다'고 판정되었다가 되살아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 결과 18 퍼센트에 해당하는 62명의 환자들이 당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했고, 이들 중 41명은 근사체험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경험을 했다고 증언했다.(p.103)

근사체험 사례들의 특징을 보면, 첫째로 유체이탈을 경험한다. 둘째, 삶을 회고하는 경험이다. 세 번째는 죽은 이들과의 만남이고 네 번째는 자신의 몸으로 되돌아 오는 경험이다. 마지막으로 죽음의 공포가 사라졌다고 한다.

근사체험이라는 것이 뇌의 작용인가 아니면 심장이 정지되어도 의식은 남아서 떠도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풀려고 과학적 이론인 양자역학이 등장하고 수술 등에 사용되는 약물의 영향일 수도 있다는 등의 가설이 등장한다.

3부- 죽음의 기술

이젠 웰빙(well being) 못지 않게 웰다잉(well dying)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죽음이 그냥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다시 수많은 밀알이 되듯이 인간도 죽지만 땅으로 돌아가 땅에서 다시 다른 인간(후손)이 태어난다.

영국에서는 '죽음 알림 주간(Dying Matters Awareness Week)'이라는 것이 있어서 매년 5월이면 다양한 죽음 관련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영국은 '죽음의 질(생애 말기 치료) 순위'(The quality of death Ranking end-of-life care across the world) 2010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40개국 중 32위다.

영국에는 '데스 카페(Death Café)'도 있다고 한다.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 곳이다. 특히, 이런 행사와 장소에서는 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에게도 죽음이 인생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우쳐 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동화책이나 동물의 죽음을 대하면서 어린 아이들도 죽음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죽음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 책을 읽다 보면 너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중권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필요한 교육이 '사랑 교육(아르스 아마토리아)'과 '죽음 교육(아르스 모리엔디)'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구성원을 공동체에 입장시키는 절차죠. 사랑의 결실로 생명이 태어나잖아요. 그렇다면 죽음이라는 것은 구성원을 공동체 바깥으로 퇴장시키는 절차죠"(p.244)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독일에서는 현재 20여종의 죽음 교과서가 발간되고 있다고 한다.

가족에게 둘러싸여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온갖 튜브와 주사 바늘로 연결된 채 중환자실에서 가족과 격리된 채 죽음을 맞이한 것. 둘 중 어떤 것이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와 가족에게 더 좋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무지막지한 욕설에 파묻혔던 10세 소년의 질문 "엄마 나도 죽어?"에 대한 대답은 "그래 너도 언젠가는 죽는단다"이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죽음을 향한 여정일 필요는 없다. 막을 수 없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자는 거다. 우리가 죽은 후에도 누군가의 삶은 계속 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죽음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 EBS MEDIA 기획, EBS<데스>제작팀 지음, 2014년 11월17일, 책담



EBS 다큐프라임 죽음 - 국내 최초, 죽음을 실험하다!

EBS <데스> 제작팀 지음, 책담(2014)


태그:#죽음, #EBS, #죽음현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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