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황우여 장관은 전임장관인 이주호, 서남수 장관과는 좀 다를 줄 알았다. 당 대표까지 지낸 정치인 출신답게 적어도 청와대의 눈치나, 진영 논리를 벗어나 정치력을 십분 발휘할 줄 알았다. 정치가 무엇인가. 갈등을 조율하고 조정하는 일 아닌가.

판사 출신답게 '법과 원칙'에 따라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엄격한 현미경 평가를 하든지, 아니면 "서울시교육청이 평가한 것을 보니, 이런 문제점이 있더라. 그러니, 이번에는 X개 정도로 절충하자" 등 파국으로 몰지 않고 뭔가 매듭이 지어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 6개교(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우신고, 이대부고, 중앙고)에 대해 지정 취소 처분을 내린 것이 지방자치법에 위반되고, 자사고 재평가 실시가 교육감의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된다며, 18일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지정취소를 '직권 취소'하는 횡포를 자행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발목잡기 시도"라며 자사고 원서접수가 종료되는 21일 이후 대법원에 무효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헌법재판소에 교육감과 교육부 장관 간 권한 쟁의 심판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번 교육부의 직권취소는 누가 봐도 '교육부의 진보교육감 발목잡기와 흠집 내기'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자사고 재지정 문제는 진영 논리,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이전에 엄격하게 교육 논리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었다.

조희연 교육감의 평가도 엄정하다고 말하기 어려워

'특권학교폐지 일반학교살리기 서울공대위'는 "공약 이행 제대로 못하고 후퇴하는 자사고 폐지 발표에 유감"이라며 서울시교육청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서울의 25개 자사고는 5년 마다 시행하는 재지정 평가와 무관하게 교육감이 직권으로 취소할 수 있을 정도로 입학 비리, 회계 비리, 국영수 편중, 선행 학습 등 심각한 문제점이 공식 감사 결과 드러났기 때문에, 사례별로 즉각 취소해도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용린 교육감은 올해 14개 재지정 평가 대상 학교를 평가하면서 '수박겉핥기 평가, 봐주기식 엉터리 평가'를 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자사고가 제출한 서류에만 의존하여 봐주기 평가를 하였다는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의 종합평가도 기존 6월 평가의 일부 수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결과 8개교는 기준 점수 미달로 취소 대상이었고, 70점 이상이 나온 6개교 중에는 재단 전입금 5%를 2년 연속 제대로 내지 않은 중동고와 입시비리로 감사에 적발된 하나고가 포함되었다.

정진후 국회의원은 "서울교육청이 평가계획안(6월 평가)에 입학전형 부정과 교육과정 부당운영 항목에서 '미흡'을 받으면 지정취소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표기했으나, 평가 과정에서 반영하지 않았다"면서 "입학전형 관련 감사 등의 지적건수도 '입학전형 운영의 적정성' 지표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또한 "서울의 자사고는 6월 평가에서 모두 기준 점수인 70점을 넘었다며 재지정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서울교육청 평가계획안대로만 평가하면 '지정취소'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모를 리 없는 교육부가, 서울시교육청이 6개 자사고에 대해 지정취소를 한 것에 대해 시정명령도 모자라 직권취소까지 단행했다. 이미 평가가 끝난 사안에 대해 다시 새로운 기준으로 평가한 것이 문제라는데, 이러한 교육부의 억지주장은 너무 구차해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재평가가 아닌 평가 진행 중 미비점을 수정·보완해 종합평가를 실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한번 평가를 거쳤다고 하여 최종결정이 내려진 것은 아니며 앞선 평가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을 경우, 필요에 의한 재평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더욱이 '자사고를 일반고를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새 교육감의 평가는, 단순히 행정적 절차를 넘어서 시민에 의한 재평가 과정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교육청이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교육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연민까지 느껴진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9월부터 교육부에 총 세 차례에 걸쳐 협의하자고 공문을 보냈으나, 교육부는 공문을 받기도 전에 언론을 통해 즉시 반려하겠다고 언급했고, 실제로 세 번 모두 즉시 반려했기 때문이다.

'자사고 문제'는 교육부가 풀었어야 하는 문제

지난 서남수 장관 재임시,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자사고의 선발권을 선지원 후추첨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자사고 재단의 집단 반발에 밀려 개혁은 좌절되었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교육부가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함에도 고교정상화라는 의지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시도교육감이 이 문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

'좋은교사모임'은 "자사고 문제는 개별 학교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 자체의 문제"라며, "자사고가 학교 운영을 잘할수록 인근 다른 학교에는 더 피해를 주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자사고의 지정 취소 문제는 원천적으로 개별 학교에 대한 평가 이전에 제도 자체에 대한 평가를 기초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교육시민단체들이 거의 한 목소리로 "자사고 문제는 교육부가 풀어야 하는 문제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직무해태, 아니 직무유기를 한 교육부, 얼굴 두껍게도 한 술 더 떠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아니 하지 못한 일을 교육감이 해주면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이 무슨 놀부심보란 말인가?

이제라도 교육부는 초심으로 돌아가, 자사고 제도 자체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여 자사고 제도의 취소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교육부의 직권취소에 대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회의원들도 보도자료 등을 통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혜자 의원은 "교육부가 직권 남용을 해 혼란이 일고 있다"고 지적했고, 배재정 의원도 "교육 문제에 있어 정치 논리로 접근하는 교육부의 태도가 유감스럽다"고 강조했으며, 새누리당 이종훈 의원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법적 판단에 맡기는 것을 국민들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황우여 장관에게 묻고 싶다. '법과 원칙 따라' 조치했다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법과 원칙인가? 또한 문용린 교육감 때 평가가 과연 제대로 평가라고 보는가?

조희연 교육감의 평가가 보다 엄정하지 못하다고 질책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왜 문 교육감처럼 좀 더 부실하게 평가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정말 학생 등 교육주체들 보기 민망하지 않은가? 이러니 교육부에 '교육'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꼼수의 달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부디 이제라도 속히 교육자치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진영논리를 배제하고 오직 교육논리로 이 문제를 풀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김형태 시민기자는 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글을 국민TV에도 보냅니다.



태그:#자사고 , #교육부 직권취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