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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린것이 아니라 다른 것 :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남과 북으로, 진보와 보수로, 종북과 일베로... 나누고 나누다 보면 화해와 평화는 올 수없습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 :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남과 북으로, 진보와 보수로, 종북과 일베로... 나누고 나누다 보면 화해와 평화는 올 수 없습니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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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차림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었어요. 헌데 TV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처음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어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죠. 한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리가 또 나오는 거예요. 뒤를 돌아 TV를 보니 정말 장벽이 무너져 있더라고요. 결국 팬티바람으로 저는 베를린 장벽으로 향했어요. 거리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TV 속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할아버지가 25년 전, 11월 9일의 베를린을 회상하며 추억을 곱씹습니다. 신문을 봐도, 잡지를 봐도, TV를 봐도, 라디오를 들어도 온통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에 대한 수십, 수백 가지의 이야기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매년 돌아오는 기념일인데 올해는 유독 시끌벅적하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을 기념하는 듯합니다.

 신문 판매원은 평소보다 신문들이 많이 팔렸다고 했다. 사진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실은 독일 언론들의 모습.
 신문 판매원은 평소보다 신문들이 많이 팔렸다고 했다. 사진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실은 독일 언론들의 모습.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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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같은 장벽에 대한 상반된 두 가지 예술프로젝트

베를린의 11월 둘째 주, 평소와는 다르게 베를린 곳곳이 분주합니다. 지난 10월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독일철도기관사노조가 파업(열차운행중단)했던 것(관련기사 : "눈막고 귀막고 버텨" 5년차 직장인 친구의 충고)에 이어 또다시 열차운행중단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25주년을 맞는 '베를린 장벽 무너진 날'을 기념하는 대형예술프로젝트 'Lichtgrenze'(직역: 빛의 경계, 리흐트그렌체)가 베를린 장벽이 있던 곳을 수놓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길이 약 15km에 8000개의 풍선과 거치대가 설치됐습니다. 평소 익숙하게 지나던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리흐트그렌체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안내판을 유심히 살펴보거나 프로젝트 설치물인 하얀 풍선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특정구간을 제외하고 사라져버린 베를린 장벽이 '풍선'으로 재현된 셈입니다. 이렇게 다시 세워진 '풍선 장벽'을 '베를린 장벽 무너진 날'인 11월 9일 밤에 하늘로 띄워 전 세계에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입니다.

 베를린 장벽을 재현한 'Lichtgrenze' 프로젝트의 풍경
 베를린 장벽을 재현한 리흐트그렌체 프로젝트의 풍경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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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도시 자체가 작품이 되는 '대형설치작품'라고 말할 수 있는 리흐트그렌체는 이른바 '형제아티스트'라 불리는 크리스토퍼와 막스(Christopher und Marc Bauder)의 아이디어입니다. 한 명은 연출가, 한 명은 조명디자이너인 이 두 사람은 '20세기의 베를린 장벽'을 25년 뒤인 '21세기'에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빛의 경계'(베를린장벽)를 만든 뒤 하늘로 띄워 보내는 예술프로젝트를 구상했습니다.

한데 각종 언론들과 시민들의 주목을 받는 리흐트그렌체 프로젝트와는 달리 논란이 되고 있는 또 다른 장벽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바로 '유럽의 장벽 무너뜨리기'(Erster Europäischer Mauerfall)라는 프로젝트입니다.

 '유럽의 장벽 무너뜨리기'(Erster Europaischer Mauerfall) 프로젝트
 '유럽의 장벽 무너뜨리기'(Erster Europaischer Mauerfall) 프로젝트
ⓒ 베를리너짜이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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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흐트그렌체 프로젝트가 막대한 예산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진행되는 '설치미술'이라면, '유럽의 장벽 무너뜨리기'(Erster Europäischer Mauerfall)프로젝트는 시민들의 기부를 통해 진행되는 '정치적 예술행동'에 가깝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바로 '유럽의 장벽을 넘는 난민'을 돕기 위함입니다.

최근 유럽으로 이주하고자하는 난민들을 거부하는 유럽국가들의 비인권적 행태들이 곧 '거대한 장벽'이라는 생각에서 이 프로젝트는 출발합니다. 실제로 유럽 주변에는 철조망으로 된 경계가 설치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럽의 장벽 무너뜨리기' 프로젝트가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습니다. 바로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 옆에 설치되었던 '베를린 장벽 희생자'들의 십자가 기념비들을 이 프로젝트의 활동가들이 떼어갔기 때문이지요. 이 상황에 대해 한쪽에서는 '훔친 것이다'라며 비난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잠시 '빌린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베를린 장벽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은 이에 대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필립 루히(Philipp Ruch)는 유럽 국가들과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맞은 해에 '난민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었다고 언론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밝혔습니다.

현재 '유럽의 장벽 무너뜨리기' 프로젝트 활동가들은 국회의사당 건물 옆에 설치되었던 '베를린 장벽 희생자'들의 십자가 기념비들을 유럽국가 주변에 세워져 있는 철조망 경계에 매단 사진이나 난민들이 들고 있는 사진들을 각종 소셜네트워크와 인터넷 사이트에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한 관계자는 작업이 끝난 후, 가져갔던 기념비들을 다시 원래 위치에 돌려놓겠다고 한 상태입니다.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

 베를린 장벽 붕괸 25주년을 기념해서 진행된 리흐트그렌체 프로젝트.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기념해서 진행된 리흐트그렌체 프로젝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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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리흐트그렌체 프로젝트에서 설치했던 풍선들을 도미노 형식으로 하늘에 띄우는 11월 9일 밤, 가장 긴 풍선행렬을 볼 수 있는 독일국회의사당 주변은 수 천 명의 사람들로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입니다. 국회의사당에서 가까운 베를린 중앙역에서는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리흐트그렌체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인파 행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고생 끝에 리흐트그렌체가 설치된 곳 근처에 도착했지만 서양 사람들에 비하면 월등히 키가 작은 저는 풍선은커녕 하늘조차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 앞으로 가면 풍선을 볼 수 있을 거야."

사람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저를 본 한 독일 할아버지가 말을 건넵니다.

"그렇지만 저보다 먼저 와서 자리를 맡은 사람들보다 앞에 서는 건 좀 미안 할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할아버지는 자신의 앞에 선 사람들에게까지 양해를 구하며 저의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자, 여러분 이 숙녀 분에게 한 자리 내어줍시다. 우리 다 같이 이 아름다운 장면을 감상하자고요."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중년의 부부가 웃으며 저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줍니다. 곧이어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울려 퍼지고 리흐트그렌체의 풍선장벽들이 하나 둘씩 하늘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저의 코끝도 찡~ 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눈앞에 보이는 리흐트그렌체의 풍선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인종도, 나이도, 국적도 상관없이 일제히 하늘로 올라가는 풍선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사람들의 눈망울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난생 처음 본 독일 아주머니가 "Wir sind ein Volk."(우리는 한 민족이다)라고 말하며 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설마 그 아주머니는 제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과 북으로 갈린 분단국가에서 왔다는 알았을까요?

 2014년 11월 9일, 'Lichtgrenze' 프로젝트를 보기 위해 모인 인파들, 흰점으로 보이는 것이 풍선장벽들이다.
 2014년 11월 9일, 'Lichtgrenze' 프로젝트를 보기 위해 모인 인파들, 흰점으로 보이는 것이 풍선장벽들이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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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하늘 깊은 곳으로 사라져버린 풍선들을 바라보며 언젠가 나도 내 고국 땅에서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예술을 할 수 있기를, 통일된 나라에서 철조망이 걷히는 날을 기념하는 예술을 할 수 있게 되길 기도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나도 "우리는 한민족이다"라고 말하며 내 옆에 서 있을 다음 세대의 어깨를 토닥여줄 수 있기를 기도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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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공미술가로 활동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연구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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