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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으십니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을 비기독교인이 아닌 기독교인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원로목사에게 질문한 사람이 있다. 바로 <MB의 추억>을 연출했던 김재환 감독이다. 그는 신작 <쿼바디스>로 물질 만능주의로 세속화된 한국교회를 통렬하게 비판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모어'(이종윤 분)는 부조리한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예수 믿는 것 맞습니까?", "교회가 당신들 영업장입니까?", "하나님이 과연 기뻐하실까요"라는 질문들을 던진다. 이 질문은 비단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 나아가 한국교회 성도들에도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여 지난 22일 광화문에서 김재환 감독을 만났다. 다음은 김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타락이 쓰나미처럼 한국교회를 덮어버렸다"

<쿼바디스> 김재환 감독
 <쿼바디스> 김재환 감독
ⓒ 단유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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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부터 영화 <쿼바디스> 전국 시사회를 하고 있는데 관객들 반응은 어떤가요?
"웃기는데 슬프고, 다 보고나면 가슴이 서늘해진다는 크리스천들이 많더군요. 그리스도인이 아닌 분들은 최승호 피디와 이용마 기자가 깜짝 등장하는 재밌는 블랙코미디 정도로 보시는 것 같아요.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한국 교회를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데는 모두 공감하는 것 같아요."

- 왜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데 공감하는 걸까요?
"<쿼바디스>는 한국 교회 문제가 한국 사회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음을 보여줍니다. <뉴스타파> 최승호 선배가 영화를 본 후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교회를 이대로 둬서는 한국사회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쿼바디스>는 한국교회가 달려가는 방향과 욕망을 보여주는데요, 지난 몇 십 년간 모든 에너지를 교회 성장에만 집중시킨 결과 몸집은 비대해졌으나 예수를 잃어버렸죠. 타락이 쓰나미처럼 한국교회를 덮어버렸어요."

- 한국 개신교만의 문제일까요?
"불교나 가톨릭도 문제가 많지만 한국 개신교가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한국 개신교 모든 문제의 배후엔 돈이 있고 그건 아마 다른 종교도 비슷할 거예요. 요즘 신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가톨릭도 조금 위험해 보여요. 급격한 성장 한 템포 뒤엔 급격한 타락이 따라오더군요.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면 한국 개신교가 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조롱과 지탄은 모든 종교의 운명이지 싶어요."

- 어떻게 해서 영화를 제작할 생각을 하셨어요?
"보수든 진보든, 언론이라면 돈과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영화도 하나의 미디어니까 엄청난 돈과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한국교회를 영화로 다루는 건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지요. 우리나라에 기독교의 가치를 담은 영화가 많이 있었지만, 돈과 권력이 집중된 한국교회의 참담한 현실을 직시하는 작품이 없는 건 참 의아한 일입니다."

- '왜 하필 개신교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에요. <쿼바디스>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들 피하고 싶은 주제일 거예요. 어떤 크리스천이 교회의 타락을 기록하고 다가올 심판을 전하는 걸 즐거워하겠습니까? 기다리는 건 욕 밖에 없지요. 그래도 이건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주제입니다. 교회 안에서부터 개혁의 목소리가 나와 사회적으로 공론화시켜야 합니다."

- 성경엔 인물들의 좋은 점만 기록하는 게 아니라 불륜이나 탐욕 등도 기록했 거든요, 그런 맥락인 건가요?
"맞아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타락이 보이는데 은혜로 덮고 교회가 잘하는 점만 얘기하면 사회와 소통이 안 되죠. 성경이 좋은 점과 쓰라린 타락을 함께 기록한 것도 그런 의미라고 생각해요. 먼저 우리는 당연히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겠지요. 소통은 고백과 회개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이런 잘못을 저질렀다. 한국교회가 예수를 이렇게 왜곡했다. 우리가 죽을 죄를 졌다.' 처절하게 회개함으로써 세상과 대화를 시작해야지, '한국교회는 좋은 일 많이 하는데 안티기독교 세력이 미디어를 장악해서 교회를 공격한다'라고 애먼 네티즌에 화살을 돌리면 더 이상 대화가 안 되죠. 한국교회가 불통의 아이콘이 된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이 인기가 없는 이유와 동일합니다. '내가 얼마나 국민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니들이 나를 몰라준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소통이 되겠습니까?"

"<쿼바디스>의 실질적 캐스팅 디렉터는 김재철 사장"

<쿼바디스> 포스터
 <쿼바디스> 포스터
ⓒ 단유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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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쿼바디스 도미네>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같은 제목을 쓴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1951년 할리우드판 <쿼바디스>에서는 베드로가 네로의 박해를 피해 떠나는 길에서 예수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어요. 그러나 2014년 한국판 <쿼바디스>에서는 예수께서 '한국 교회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쿼바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와 목사님들이 나오지만, 제가 이 영화를 통해 던지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Where are you going?)'라는 질문은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향해 있습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가 문제없으니, 다른 교회는 문제가 있든 말든 한국교회가 무너지든 말든 상관하지 말자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순간, 그 다음 타락의 쓰나미는 당신의 교회를 덮칠 겁니다."

- 말씀을 들어보면 한국교회에 대한 애정이 <쿼바디스>를 탄생시킨 게 아닌가 싶은데요.
"크리스천으로서의 고민이 제 직업과 만나 탄생한 게 <쿼바디스>입니다. 각자 자기의 직업에서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Where are you going?)'에 대답하는 표현들이 있을 거예요. 평균적인 도덕성을 가진 한국 회사에 만연한 리베이트 문화를 거부한다든지, 정치인이 표를 얻기 위해 타락한 목사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든지, 내 아이가 불이익을 당해도 절대 선생님께 촌지를 주지 않는다든지… 각자 두려움을 떨치고 표현하면 좋겠어요. 왕따를 각오하고 좌판을 엎는 거죠."

- 영화가 단순히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픽션을 가미하는 등 구성이 탄탄하던데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으셨어요?
"<쿼바디스>는 <트루맛쇼>와 비슷한 면이 있어요.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죠. <트루맛쇼>는 제가 만들어낸 TV맛집(가상의 공간)으로 미디어와 방송제작진, 시청자를 초대해서 돈이 창조해 낸 '미디어의 허상' 즉 천박한 맛을 보여주는 우화였다고 하면, <쿼바디스>는 제가 만든 가상의 캐릭터들을 이슈가 벌어지는 한국교회 현장에 투입한 영화입니다. 가상과 현실을 뒤섞는 데에 관심이 많고, 무거운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재밌게 들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 각본을 직접 쓰셨던데 어땠어요?
"<쿼바디스>에 나오는 교회와 목사님 그리고 사건들은 '성직주의', '승리주의', '성장주의', '정치교회', '회개와 용서' 등 기독교계의 중요한 이슈들을 상징합니다. 청어람아카데미 양희송 대표의 <다시 프로테스탄트>라는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근데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다 보니, 처음 제가 썼던 시나리오대로 현실은 돌아가지 않았죠. 인터뷰이는 계속 추가되고 실제 한국교회에 또다른 중요한 이슈가 부각되고… 제작은 계속 시나리오가 바뀌는 과정이었어요."

- 영화 중에 배우들의 연기가 있는데 안석환씨는 드라마 명품 조연이시죠. 섭외 과정이 궁금해요.
"안석환 선생님은 진짜 배우죠. <MB의 추억>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MB의 1인칭 내레이션을 기꺼이 맡아줄 정도로 거침없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교회 권력자 길 목사 역할을 맡겼어요. 그게 어떤 배역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케이 하셨어요. 그런데 모든 촬영이 끝나고 헤어질 때 '김 감독. 우리 앞으로 다시는 보지 맙시다. 보면 볼수록 위험한 사람이네'라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다음에 전화하면 그 어떤 악역도 다 감당해주실 걸 알고 있습니다."     

- 이용마 기자라든지 최승호 PD등 MBC 해직 언론인도 나와요.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는데 한 명씩 계속 잘리면서 캐스팅이 풍성해졌죠. 실질적인 캐스팅 디렉터는 김재철 사장님입니다."

- 길 목사와 최승호 PD의 인터뷰 장면이 코믹하던데… 최 PD 출연을 가능하게 해준 김재철 사장님께 감사드려야겠어요.(웃음)
"원래 초기 시나리오엔 <뉴스타파> 출연이 아니라 토크쇼에 출연하는 신이었어요. 그러나 <뉴스타파>가 된 것은 때맞춰 MBC 김재철 전 사장님이 최승호 선배를 잘라주셨기 때문이에요. <트루맛쇼> 때도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 영화 홍보에 큰 도움을 주시더니, 이번엔 캐스팅의 어려움을 한 방에 해결해 주셨어요.

그 분은 정말 절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최승호 선배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대학 연극반의 에이스였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연극배우로 나갈까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하시던데 연기를 얼마나 잘하시는지 <쿼바디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한국교회가 <쿼바디스> 정도의 표현도 못 받아들인다면..."

<쿼바디스> 김재환 감독
 <쿼바디스> 김재환 감독
ⓒ 복음과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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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한국교회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라서 두렵기도 했을 것 같아요.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아주 무서워 죽겠습니다. 교회가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게 서글프기도 합니다. 누군가 메가폰이 되어 외쳐줘야 하는 상황에서 모두가 무거운 침묵에 사로잡혀 있을 때, 혹시 내가 메가폰의 역할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곤혹스럽습니다. 그래도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게 중용이겠죠. "

- 지금은 작고하신 옥한흠 목사님의 절규에 가까운 메시지가 인상에 남아요. 어떻게 그 장면을 넣을 생각하셨어요?
"그건 옥 목사님께서 일반 성도들을 대상으로 설교하신 게 아니라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옥 목사님의 음성을 빌린 거예요."

- 영화 중에 전두환씨가 대통령 되기 전 국보위원장을 위한 기도회와 광주 민주화 운동때 학살 장면을 교차 편집했던데.
"광주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고 몇 달 만에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롯데호텔에 모여서 학살 주도 세력의 우두머리를 찬양하고 축복하는 기도회를 열었거든요. 교회와 민중이 얼마나 따로 놀았는가를 극명히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검프가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합성 장면이 있는데 그걸 해보고 싶었어요, 전두환을 위한 기도회 가운데 예수님이 보고 계시죠. 우리 교계 가장 치욕스런 사건 속에 예수님을 배치시켜서 그리스도인들이 다 같이 그 분의 분노를 느껴보자는 의도였어요."

- 개봉을 앞두고 압박이 있을 것 같아요. 지난주 인천 시사회도 우여곡절 끝에 열렸다고 하던데.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세요. 1년 정도 외국 나갔다 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 생각엔 외국 가면 더 위험할 것 같아요. 압박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있다해도 돌파해야죠. 분명한 건 한국교회가 <쿼바디스> 정도의 표현도 못 받아들인다면 세상과는 어떻게 대화하겠느냐는 거예요."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려요.
"<쿼바디스>, 12월 10일에 개봉합니다. 12월엔 무슨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니, 선물이니 하는 미국제 로맨틱 코미디를 봐야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시고, 화끈한 국산품 <쿼바디스>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쿼바디스>를 보며 가장 놀라웠던 건 김재환이 예수 믿는다는 사실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저렇게 까칠하고 의심 많은 놈이 예수를 믿는다… 그렇다면 정말 저기 뭔가 있는 게 아닐까… 예수는 어떤 분이지? 이렇게 생각이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쿼바디스, #김재환 , #안석환, #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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