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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전용 이동통로', '동물 전용 건널목'

도로 우측의 자전거 길 외에 사람을 위한 시설은 없다. 사파리도 아닌데 온통 동물들을 위한 배려 일색이다.

'화천 평화의 댐 ~ 안동철교'까지의 6.86km구간은 민간인 통제지역이다. 군부대 외에 민가는 없다. 산양이며 멧돼지, 고라니, 다람쥐 등 동물들이 산다.

도로에는 간혹 서행으로 이동하는 군용차량이 전부다. 평화의 댐을 찾는 관광객들은 인적사항 등 서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주로 해산령 길을 이용한다. 민간인 통행이 많지 않은 이유다.

화천 평화누리길이 열렸다

화천 평화누리길. 자전거 도로를 열었다. 조성후 딱 2년만이다.
 화천 평화누리길. 자전거 도로를 열었다. 조성후 딱 2년만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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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행정안전부(현재 안전행정부, 아래 안행부)는 강화에서 고성을 잇는 495km 길이의 동서녹색도로 추진을 발표했다.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안행부는 화천구간을 동서녹색도로 사업 시범구간으로 정했다. 화천은 평화의 댐, 세계평화의 종, 평화아트파크 등 평화 관련 상징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화천댐 탈환을 위해 10만여 명의 적군과 아군 젊은이들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 25일, 평화누리길이라 부르는 이 길이 열렸다. 6.86km 구간의 개통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2012년, 멋들어지게 이 길을 완공했다. 그러나 군부대에선 당일 자전거 이용객 출입을 통제했다. 관광객들이 산나물 또는 버섯 등의 채취를 위해 허용된 범위를 벗어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무려 2년이 넘도록 '출입을 허용해 달라는 입장'과 '불허'가 충돌했다. 결국 지난 10월 14일 군부대는 '안내원의 인솔 하에 3인 이상 자전거 이용객에 한해 출입을 허용하겠다'는 화천군의 조건을 수용했다. 수십억 원에 이르는 공사비를 투입하고도 무용지물이 되었던 길은 그렇게 열렸다.

파랗게 칠한 곳이 동물이동 통로다.
 파랗게 칠한 곳이 동물이동 통로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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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청에서 오셨다구요? 오늘 인솔하실 분 신분증과 여기에 서명 날인 후 안내해 주시면 됩니다."

'언론에서 보도가 되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자전거 마니아들이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예고했던 시간보다 1시간 먼저 도착했다. 군부대와 협의를 했다지만, 초병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을지도 의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초병 중 책임자인 듯한 병사는 내게 '서약서'라고 적힌 종이를 내 밀었다. 관광객들을 세워 놓고 '통보 못 받았습니다'라는 엉뚱한 이야기가 나오고, 사령부에 또 연락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는 기우였다. 

개통시간인 10시가 되자마자 한 무리의 자전거 이용객이 도착했다.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즐긴다는 이들은 '평화누리길 개통' 소식을 듣고 남쪽 투어 계획을 변경해 이곳을 찾았단다.

이곳은 다람쥐 이동 통로다.
 이곳은 다람쥐 이동 통로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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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자란 나무와 숲. 한국전쟁 종전 후 60여 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이다. 자전거를 타고 앞서 내달리는 그들은 길옆으로 펼쳐진 풍경이 이채로운지 속도를 줄이길 수십 번. 동물 전용 이동 통로를 지나 다람쥐 전용 건널목 앞에 멈추자 내게 말을 건넸다.

"이곳 다람쥐들은 기초질서 교육이라도 받은 모양입니다."

사실 내가 봐도 생뚱맞다. 길 양쪽에 굵은 나무기둥을 세워 놓고 양쪽으로 동아줄을 연결했다. 과연 다람쥐들이 길을 건너기 위해 높은 기둥을 올라간 다음, 줄을 타고 건너 다시 내려오는 수고로움을 택할까? 그런 다람쥐들은 없을 듯싶다. 어쨌든 이 또한 새로운 볼거리다.

도로를 건넌 동물들은 이곳을 통해 강으로 내달린다.
 도로를 건넌 동물들은 이곳을 통해 강으로 내달린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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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색의 도로에 파란색 물감으로 '동물전용 건널목'이란 표시를 해 놓았다. 민가가 없으니 동물만 이용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색을 보곤 동물들이 놀라면 놀랐지, 그 곳으로 건넌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는지, 관광객들도 잠시 멈췄다. 그 중 한 사람이 이곳 동물들은 한글을 이미 알고 있다는 농담을 건넸다.

"쉿! 이곳에서 함부로 말하면 동물들이 들을 수 있습니다."

신기하다. 아스팔트 위에 표시된 '동물 건널목'이라 쓰여진 파란색 글씨 위에 동물 발자국이 엉켜 있다. 지나온 아스팔트 도로에선 발견하지 못했던 자국이다. 쪽발 모양은 고라니 또는 산양, 멧돼지의 것으로 보인다. 가끔 산고양이인지 삵의 것인지 분간이 어려운 원형 모양의 발자국도 눈에 띈다. 정말 동물들이 한글을 알고 건널목을 건넜을까.

자세히 보니 동물들이 이곳으로 건너는 이유가 이해됐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도로를 벗어나는 것을 우려했던 군부대는 길 양 옆에 철책을 설치했다. 도로 우측엔 북한강의 발원지인 강물이 서울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는 동물들에게 커다란 장애로 작용했을 게다. 좌측 산속의 동물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 강가로 내려오는 길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이에 군데군데 산쪽 방향의 철책을 뚫어 놓고 건너편 강쪽 문도 열었다. 그 양쪽 문을 가로질러 건널목 표시를 했다. 동물들이 물을 먹기 위해 산쪽 통로에서 강쪽으로 어쩔 수 없이 건널목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다. 괜찮은 발상이다.

평화 누리길, 3월부터 11월까지만 운영

안동철교. 화천 DMZ 평화누리길 끝 지점이다.
 안동철교. 화천 DMZ 평화누리길 끝 지점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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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철교~평화의 댐 구간 기준) 오른쪽 옆엔 맑은 강물이 흐른다. 수량이 많지 않은 이유는 북쪽의 금강산댐 때문이다. 평화의 댐이 조성된 이후 북에선 금강산댐 물줄기를 동해안으로 돌렸다. 그 때문에 가뭄이 심할 땐 강은 곳곳에 맨살을 드러낸다.

생존 본능이 이끌린 물고기들은 커다란 물웅덩이에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그 중 누런 빛을 띤 물고기가 유독 많았다. 황쏘가리다. 이곳에 이렇게 많은 황쏘가리가 서식할 줄 아무도 몰랐다.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정부에선 2011년 9월 이곳에 사는 황쏘가리에게 '천연기념물 532호'를 부여했다.

많은 사람들이 황쏘가리는 모두 '천연 기념물'인줄 안다. 아니다. 190호로 지정된 한강과 이곳에 사는 황쏘가리만 해당된다.

"길을 벗어나 산이나 강으로 출입하는 행위는 삼가 주셨으면 합니다."

이 구간 중 일부는 지뢰 발굴이 되지 않은 '미확인 지대'다. 홍수 때 북한에서 떠내려 온 목함지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독 눈이 많이 내리는 전방지역.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매년 3월부터 11월까지만 자전거 이용객들의 출입을 허용할 방침입니다." 화천군청 자전거 정책담당의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평화누리길, #동서녹색도로, #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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