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이들만 데리고 떠나는 캠핑이라 조금은 겁이 났다. 텐트가 설치된 곳으로는 가본 적이 있지만, 아내 없이 직접 텐트를 설치해야 하는 야영장을 찾은 건 처음이었다. 혼자 텐트 치고, 짐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출발 전부터 걱정이었다. 혼자서 아이들은 또 어떻게 데리고 놀 것인가?

데크 사이트를 잡다니, 횡재했네!

소백산국립공원 삼가야영장은 노지사이트인데, 유이하게 나무 데크가 설치된 곳이 있다. 그 중 하나를 우리 가족이 잡았으니 횡재를 한 셈이다. 데크 위에 텐트를 치면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도 덜하고, 비가 와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아서 좋다.

자리를 확인하고 아이들과 열심히 텐트를 쳤다. 아이들도 제법 컸는지 다행히 제 몫을 해줘서 어렵지 않게 텐트가 완성되었다. 아빠인 내 눈에는 아직도 어린데, 아이들이 이제 많이 큰 듯하다.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근사하게 야영준비를 끝냈습니다. 역시 데크가 있으니 좋아 보입니다.
▲ 삼가야영장 제법 근사하게 야영준비를 끝냈습니다. 역시 데크가 있으니 좋아 보입니다.
ⓒ 이경운

관련사진보기


텐트를 치고 나니, 삼가야영장의 구석구석이 조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야영장 중간을 가르는 맑은 개울은 삼가야영장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데, 딸이 손을 넣어보더니 '아, 차가워!' 하고 외친다. 가만 둘러보니, 소백산 정상 쪽으로는 이미 단풍이 들기 시작했고, 야영장에도 제법 단풍이 시작되고 있었다.

야영장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야영장 중간을 흐르는 물이 조금은 춥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 삼가야영장 야영장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야영장 중간을 흐르는 물이 조금은 춥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 이경운

관련사진보기


고생한 아들과 딸을 위해 야영장에 오기 전에 사온 영주의 명물 정도너츠를 풀었는데, 자기들 좋아하는 허브와 인삼도너츠를 홀딱 먹어치워 버렸다. 나는 오늘도 생강도너츠만 두 개 먹었다. 오늘은 아빠 일 많이 도와줬으니 상이다!

아들은 올라가는 내내 힘들어했는데, 그래도 비로사까지 무사히 올라갔습니다.
▲ 비로사 가는 길 아들은 올라가는 내내 힘들어했는데, 그래도 비로사까지 무사히 올라갔습니다.
ⓒ 이경운

관련사진보기


야영장 보다 위에 있어서인지 벌써 단풍이 진하게 들었습니다.
▲ 소백산 비로사 야영장 보다 위에 있어서인지 벌써 단풍이 진하게 들었습니다.
ⓒ 이경운

관련사진보기


도너츠를 먹고 나서, 비로사까지 산책을 나섰다. 등산을 하자고 하면 아들이 기겁을 할 것인데, 산책이라니 순순히 따라 나섰다. 그런데 5분도 안되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내와 함께 우리집 저질체력 1,2위를 다투는 아들이 속으로는 '속았다' 싶었을 것이다. 비로사까지 산책으로는 조금 힘들기는 했다. 그래도 저녁에 비싼 영주 한우를 먹으려면 운동은 좀 해야 했다.

침낭 어디 갔지? 추워도 너∼무 추운 소백산의 밤

열심히 운동을 시켰으니 저녁은 맛있는 영주 한우다! 점심으로 한우인삼갈비탕을 먹으면서 한우 고기를 조금 사가지고 왔는데, 나의 경제사정을 고려하면 엄청난 지출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한우를 구워주는 대로 흡입했다. 다행히 배가 불렀는지, 나중에야 아빠 생각이 났는지, 아빠도 좀 드시면서 구우란다. 그래 아빠는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아이들은 다른 반찬이 없어도 영주 한우 하나로 밥을 다 먹어치웠습니다.
▲ 삼가야영장 아이들은 다른 반찬이 없어도 영주 한우 하나로 밥을 다 먹어치웠습니다.
ⓒ 이경운

관련사진보기


산 속의 가을 밤은 꽤 쌀쌀했다. 가지고 간 화로에 숯으로 불을 피우고 한기를 달래면서 아이들과 간식도 먹고, 카드놀이도 했다. 부루마블을 안 챙겨 오는 바람에 카드놀이만 주구장창 했는데, 나중에는 아들과 딸 사이에 서로 누가 안챙겼냐며 네 탓 공방이 벌어졌다. 얘들아, 그래도 재미있었자나!  

이제 잘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어라 침낭이 하나가 없었다. 분명히 3개를 직접 챙겼는데, 이건 부루마블 안챙겨 온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밤 기온이 8도라는데, 침낭이 없으면 영하의 추위와 다름이 없다. 정말 난감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물을 데워서 비상용 물주머니를 채워서 꼬~옥 껴안고 잠을 청했는데, 의외로 따뜻했다. 그래서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몇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발이 엄청 시려왔다. 그리고는 온몸으로 몰려오는 한기, 정말 추웠다. 물주머니도 이미 식어 있었다. 꾸역꾸역 일어나 다시 물을 데워 물주머니를 채우고 잠을 청했다. 밤새 세 번이나 이 일를 반복했으니 잠을 잤다고 하기도 그렇고, 안 잤다고 하기도 그랬다. 그나마 아이들 침낭은 챙겨와서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야영장의 밤은 깊어가고, 침낭을 하나 안가져온 아빠의 걱정도 깊어갑니다.
▲ 삼가야영장 야영장의 밤은 깊어가고, 침낭을 하나 안가져온 아빠의 걱정도 깊어갑니다.
ⓒ 이경운

관련사진보기


침낭을 두 개라도 챙겨와서 아이들이 춥지 않게 잔 것만도 다행입니다.
▲ 삼가야영장 침낭을 두 개라도 챙겨와서 아이들이 춥지 않게 잔 것만도 다행입니다.
ⓒ 이경운

관련사진보기


스뚜∼라이크! 짐 싸다말고 왠 야구?

아침은 뜨거운 라면으로 정했다. 밤새 추위에 고생했더니 뜨끈한 것도 아니고 뜨거운 라면 국물이 필요했다. 아이들도 캠핑 오면 아침으로 라면을 먹으려니 하는데, 반드시 전날 먹다 남은 찬밥이 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든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침을 먹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밤새 이슬을 맞은 텐트와 타프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머지 짐들을 먼저 쌌다. 그럭저럭 정리를 어느 정도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동생이 깔깔거리며 자지러 진다. 무엇을 하나 보니, 아빠가 벗어놓은 장갑을 말아서 오빠와 야구놀이를 시작한 것이었다. 왠지 이 놀이가 재미있어 보였다. 그래서 팔을 배트 삼아 타석에 들어섰는데, 아들과 딸이 이런 아빠의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또 자지러진다. 타석에서 홈런을 몇 개 날려줬더니  엄청 즐거워했다. 가끔은 격 없이 이렇게 놀아줘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짐을 정리하다 말고 야구놀이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 삼가야영장 아이들이 짐을 정리하다 말고 야구놀이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 이경운

관련사진보기


엄마 없이 떠난 소백산 캠핑은 추운 밤을 보낸 것 외에는 아주 만족스럽고, 즐겁게 마무리 되었다. 하루 더 있고 싶었지만, 가을 밤의 추위를 버틸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너무 완벽하지 않아서 더 즐거웠던 캠핑이었지 않았나 싶다. 아이들에게도 이 완벽하지 않았던 소백산 캠핑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지 않을까?


태그:#소백산, #가을캠핑, #소백산 삼가야영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