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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났다. 2004년 지역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진 나와 당시 동료들은 요즘도 가끔 만나는 날이면 그때 그 소리를 악몽처럼 떠올린다.

가래 끓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던 신문사 사주는 듣는 이로 하여금 혐오감을 줬지만, 신기하게도 결코 입밖으로 가래를 내뱉는 일은 없었다. 특히 그가 기자들에게 '사이비'를 강요하던 인물이라 그때를 떠올리면 그때의 가래소리와 겹쳐져 더러운 기분이 든다.

가래 소리를 동반한 그의 강요, 듣기 싫었다

경영 지분과 재정 관계가 복잡했던 지역언론사. A 사장은 기자들에게 출입처 등에서 협찬을 받아올 것을 수시로 요구했다. 여기다 더해 B 편집국장은 주로 초입 기자들에게 건설현장에 나가 꼬투리를 잡아올 것을 반강요하다시피했다.

A 사장과 B 편집국장은 젊은 기자들을 하루가 멀다하고 쪼아댔다. 특히 기자들 사이에선 B 편집국장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출입처에 나가 이런 말들을 듣는 동료들의 마음은 썩 편치가 않았다.

2004년 가을쯤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신문사를 박차고 나갔던 B 편집국장이 어디서 자금을 구했는지 A 사장에게 경영권을 인수받아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사장이 된 후 기자들이 받는 압박은 A 사장 때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B의 좋지 않은 습관 중 하나가 가래 끓는 소리를 크게 낸는 것이었는데, 기자들을 불러 압박을 줄 때는 꼭 "캬악~" 하는 가래 끄집어 내는 소리를 수차례 반복했다. 신기한 것은, 가래를 끄집어 낼 것 같이 요란을 피우면서도 결코 가래를 뱉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가래는 어디로 갔을까?

나와 동료들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를즈음, 또 한 번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나갔던 A 사장이 'B가 약속한 신문사 인수 금액을 주지 않았다'며 법원의 결정문을 들고 다시 B를 몰아내고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그 후 얼마 있지 않아 우리는 신문제작을 거부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요구사항은 사원들이 주주가 돼 독립언론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수차례 협상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거부하던 A 사장은 결국 노조위원장이던 나와 동료 몇 명을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신문 제작을 거부한 것은 업무방해, 기자회견과 유인물을 통해 자신을 사이비로 표현한 것에는 명예훼손의 죄를 씌우려 했다. 이 일로 인해 신문사를 그만둔 나와 동료들은 결국 검찰에 소환되기에 이르렀다.

참고인의 "캬악~" 소리에 불쾌해 하던 젊은 검사

A 사장의 고소로 검찰에 소환된 나와 동료는 검찰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검사에게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두 차례 소환 조사에서 여죄를 다그치던 젊은 검사는 일관되게 지역언론의 행태를 지적하는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세 번째 조사에서는 A 사장의 사이비 혐의에 대해 역조사하기 시작했다.

고소인에 대한 역조사 과정에서는 몇 명의 참고인이 소환됐는데, 그 중에는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B도 포함됐다. 검찰에서 마주친 B와 함께 검사 앞에서 미주알 고주알 진술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고, 상당한 인내를 요하게 했다. 당시 그 젊은 검사는 나와 동료들의 정상이 참작된다며 무혐의 가능성을 내비치며 상세한 언론 행태의 진술올 요구했고, 우리는 그 요구에 기꺼이 응했다.

검사 앞에 나와 B가 함께 진술을 할 때다. B가 갑자기 검사 앞에서 "캬악~" 하는 가래 끄집어 내는 소리를 내더니, 그 소리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이다. 그때 얼핏 본 젊은 검사의 표정은 뭔가 속이 거북한 표정, 그 자체였다.

여기다 더해 살판 난 50대 후반의 B는 검사 앞에서 자신의 윗도리 소매를 걷더니 "검사님, 이렇게 수사하시면 됩니다"라며 훈수를 두는 발언도 했다. 그때 훔쳐본 검사의 표정은 한 마디로 어이없다는 것.

나와 동료들이 오랜 기간 느꼈던 가래 끄집어 내는 소리와 황당한 사이비 강요 소리를 조사를 벌이던 젊은 검사도 함께 느껴야 하는 아이러니 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그날 몇 시간에 걸친 조사는 끝이났다.

몇 달 후, 검찰에서 집으로 통지문이 왔다. 떨리는 손으로 열어보니 '약식기소 100만 원'의 처분이 내려져 있었다. 담당검사에게 곧바로 전화했다.

"아니, 무혐의 해 주시기로 한 것 아닌가요?"

검사 왈.

"정상을 많이 참작했습니다. 그저 먹는 것이라 생각하세요."


태그:#울산지역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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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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