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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난 고3 교실. 모두가 알다시피 '수능이 끝난' 그곳은 교실의 역할을 상실한 곳이었다. 오히려 무기력하고 시끄러운, 20대를 앞둔 젊은이들이 잉여스러움을 방출하는 곳이었다. 또한 과목마다 선생님들이 틀어주는 영화를 보는 극장이기도 했다.

<아웃브레이크>라는 영화를 그 때 봤다. 1995년 개봉한 <아웃브레이크>는 공기로 감염되는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가 미국 본토를 혼란에 빠뜨리는 내용의 영화다. 변종 에볼라에 감염된 이들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묘사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국가의 대응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런 뜬금없는 과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온 <아웃브레이크> 때문이다.

에볼라에 '벌벌' 떠는 대한민국

 1995년 개봉한 <아웃브레이크>는 공기로 감염되는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가 미국 본토를 혼란에 빠뜨리는 내용의 영화다.
 1995년 개봉한 <아웃브레이크>는 공기로 감염되는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가 미국 본토를 혼란에 빠뜨리는 내용의 영화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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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 1976년 7월 콩고에서 처음 보고되어, 보고 지역 근처의 강 이름을 따서 '에볼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잠복기는 2일에서 21일가량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잊을 만하면 발병하는 것이 에볼라 바이러스다.

잠복기가 끝난 뒤 발현 증상은 독감과 비슷하지만, 피부 조직과 장기 등이 괴사하면서 말 그대로 녹아내린다. 무엇보다 이 바이러스를 둘러싼 공포의 원인은 높은 치사율과 더불어 그 원인, 해결책이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높은 치사율로 인해 표본이 부족하고, 의사들 또한 이 정체불명의 질병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연구 자체를 꺼리는 실정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높은 치사율과 급격한 진행으로 숙주가 단명하기 때문에,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아직' 멸망 당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2014년 2월부터 서부 아프리카 기니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했다. WHO(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2월부터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나이지리아에서 1600여 명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8월 4일 기준으로 887명이 사망했다. 집계된 수치만 이 정도다.

최초 학계에 보고된 이래 가장 큰 숫자다. 그리고 이 숫자는 당분간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시골에서 발생한 환자들이 도시로 유입되면서 국제 연결망을 타고 에볼라가 전 세계로 번지지 않을까 WHO와 각 보건당국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렇게 국제 사회를 벌벌거리게 만든 뉴스가 처음 터진 시기가 2월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 온갖 국제적 이슈가 터지면서 한국 언론에서 '에볼라'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보는 뉴스에선 그랬다.

그러던 것이 어느 한 행사로 인해 대한민국은 '에볼라'에 벌벌 떨게 됐다. 지난 4일 덕성여대에서 개막한 '제2차 차세대 여성 글로벌 파트너십 세계대회'다.

덕성여대와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 향한 비난, 도 넘었다

내가 최초로 이 불안을 접한 것은 지난 2일이다. 덕성여대에 재학 중인 지인을 만났는데, 대화 중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 알아요?"라는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 나왔다.

지인의 이야기인 즉슨, 덕성여대에서 연례적으로 열리는 국제대회가 있는데 이는 UN 여성기구(UN Women)이 주최하고 반기문 총장도 참석한다. 그런데 에볼라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의 참가자들도 이번 대회에 참석한다. 참가학생들은 대회 기간 기숙사에서 머문다. 학교 내부에서는 이를 강경하게 반대하기도,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있기도 애매하다. 대략 이런 내용을 털어놨다.

결론은 우리가 뉴스를 통해서 접한 것과 같다. 공포, 좀 더 있어 보이게 말하면 '패닉'이었다. 나 또한 그 이야기를 들은 직후 불안했고 무언가 무서웠다. 그러나 그 날을 기준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보도들과 일련의 온·오프라인 상에서의 반응을 보고 뭔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에 떠는 여론을 고려해 홍승용 덕성여대 총장은 "나이지리아 학생 3명 초청 철회"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여론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행사 자체를 취소하라"는 의견의 글이 청와대 게시판과 덕성여대 일부 게시판에 올라왔다.

하지만 행사를 주최하는 덕성여대와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을 향한 비난은 도를 넘었다.

우선 덕성여대에 대한 비난이다. 행사와 관계된 단체는 크게 네 곳이다. 유엔 여성기구, 여성가족부(여가부), 외교부 그리고 덕성여대. 이 중 행정적인 실무를 담당하는 곳은 아무리 봐도 UN여성기구과 여가부, 외교부다. 덕성여대 측은 장소를 제공하는 입장에 가까운데, 이상하게도 여론의 화살은 학생과 학교에 가장 먼저 쏟아졌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에 '덕성여대'가 급상승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앞서 지인과의 얘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먼저 깨닫고, 어떤 방법을 강구할지에 대한 논의한 것은 덕성여대 학생 사회다. 그런데 이들이 "지들 욕심에 막가파로 행사를 유치하려 하는 집단"으로 매도당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홍승용 덕성여대 총장은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해) 철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다"며 "발병국 학생들은 단 한 명도 참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홍 총장은 "아프리카 학생들은 이번 사태로 (한국을) 경악스러운 수준으로 쳐다보고 있다"며 "객관적인 사실을 봐 달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갑작스럽게 초청 취소를 통보받은 나이지리아 대학생들은 UN에 제소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동남아에서 전염병 발생했다고 한국인 입국금지 한다면?

 3일 오후 서울 우이동 덕성여대 정문에 4일부터 이 학교에서 열릴 예정인 '제2차 차세대 여성 글로벌 파트너십 세계대회'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여성 글로벌 파트너십 대회'에는 최근 에볼라 발병 지역인 나이지리아를 포함해 알제리, 르완다, 가나 아프리카 11개국에서 30명이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학교 측은 에볼라 환자가 발생한 나이지리아 학생 3명의 참가를 취소시킨 상태다. 덕성여대 학생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개최 반대 의견을 전파하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우이동 덕성여대 정문에 4일부터 이 학교에서 열릴 예정인 '제2차 차세대 여성 글로벌 파트너십 세계대회'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여성 글로벌 파트너십 대회'에는 최근 에볼라 발병 지역인 나이지리아를 포함해 알제리, 르완다, 가나 아프리카 11개국에서 30명이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학교 측은 에볼라 환자가 발생한 나이지리아 학생 3명의 참가를 취소시킨 상태다. 덕성여대 학생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개최 반대 의견을 전파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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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 참가하는 아프리카 대륙 학생들에 대한 비난과 아프리카 대륙 출신 외국인에 대한 입국 제제를 가해야 한다는 의견은 폭력임과 동시에 아프리카에 대한 대한민국의 무지를 보여준다.

세계지도에서 아프리카는 미국, 중국, 인도, 유럽 일부 국가를 합친 넓이보다 넓은 지역이다. 그 중 에볼라 바이러스의 발병지로 확인된 국가들은 아프리카 서부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동남아시아에서 전염병이 발생해 아시아에 속한 국가가 모두 입국 금지를 당한다면, 우린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현재 사태 해결을 위해 WHO와 미 질병관리본부 등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에볼라 바이러스는 감염된 사람의 체액과 분비물, 혈액 등 직접 접촉 시 감염될 수 있으나, 잠복기가 끝나고 증상이 발생하기 전에는 감염되지 않는다.

또한 영화처럼 공기 중으로 전염되는 변종은 극히 드물며, 이번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에도 공기 감염은 없었다. 서아프리카의 경우 죽은 이의 시체를 만지는 부족 풍습과 열악한 의료환경 등으로 인해 바이러스가 확산됐다는 점이 문제였다.

지난 7월 30일에는 홍콩에 에볼라 의심 환자가 발견됐다고 복수의 매체가 보도했으나, 에볼라는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외에도 전 세계에서 에볼라 의심환자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이는 '불안'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각국 보건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4일 브리핑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에 대해 "치사율이 높은 위험한 질환이지만 차단할 수 있다"면서 "에볼라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약해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처럼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라고 설명했다. 다행히도 4일 에볼라에 감염되어 미국으로 이송된 의사 두 명이 실험용 에볼라 치료제를 맞고 상태가 약간은 호전됐다고 한다.

언론의 보도 행태도 문제다. 지난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이슈 마케팅에 집중하고, 검색어에 집중하는 언론들은 연일 자극적인 제목으로 국민을 공포에 빠지게 만들었다. 언론은 공포를 줄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정보를 제공해야 했다.

'여론'을 탓하고 싶진 않다. 이 공포는 미국이나 대한민국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CNN을 비롯한 미국 외신에 따르면,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다 감염된 미국인 의사 두 사람은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이송됐다. 미국 인터넷에서도 에볼라가 퍼질지도 모른다며 두 사람의 귀국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경우가 다르긴 하나 공포에 대한 반응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정글 속의 호랑이보다 무서운 건, 정글 속의 '무언가'다. 인간은 어떤 정보 없이 위기 상황에 직면할 경우, 가장 원초적인 방식을 택한다. 겁을 먹고, 합리적인 사고보다 본능적인 사고를 따른다. 그게 쉽고 편하니까. 그 사이에 논리적 오류가 들어갈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대륙을 하나의 국가로 보는 그런 시각 말이다.

하지만 좀 침착해질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도 난리인데 우리라고 난리 피우지 말란 말이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어떤 사안에 겁을 먹기 전에, 우리는 그 사안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알아보려고 했느냔 말이다.

공포에 질리지 말라는 게 아니라, 냉철하게 겁을 먹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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