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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 마을공동체 문화만들기 사업에 '청년 작가'로 참여한 지 벌써 3개월이 넘어간다. 5월부터 시작했던 프로젝트, 시끌벅적하던 동네의 분위기는 점차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프로젝트 또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곳 송림동에서 벌이는 '2014 지역공동체 문화만들기-민관협력 프로젝트' 사업은 인천문화재단과 현대제철이 주최해 벌이는 사업의 하나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는 지역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참여하는 작가 팀으로는 고영택, 서정민의 <메아리 라디오 극장>과 생활문화협동조합 '퍼포먼스 반지하'에서 기획한 <마음이 모여 사는 마을>, 공혜진, 문성예 그리고 내가 속한 <틈만나면>이 있다.

토요일 오후 4시, 평상 곳곳에 라디오가 걸린다

나무에 라디오가 걸려 있다. 평상에는 수박을 썰어 놓고 주민들이 모여앉아 방송을 듣고 있다.
▲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나무에 라디오가 걸려 있다. 평상에는 수박을 썰어 놓고 주민들이 모여앉아 방송을 듣고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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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라디오 극장>은 송림 2동 굽이굽이 골목 안쪽 깊은 곳에 방송국을 두었다. 마을 주민들 한 분 한 분에 대한 살아온 이야기, 현재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바탕으로 라디오 방송을 한다. 라디오는 총 다섯 개.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4시,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평상 곳곳에 라디오가 걸린다. 부지직 부지직 라디오 주파수가 잡히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흘러나오고 평상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와 동네 주민들은 귀를 기울인다.

처음 라디오 방송을 할 때는 생소하기도 하고 알려지지가 않아서 주민들의 반응이 적극적이지 못했다. 그런데 차츰차츰 주변에 알려지고 방송을 듣는 분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웃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치고, 본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내심 기다리기도 했다.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나고 가사의 향이 깊은 음악이 흘러나올 때면 음미하는 표정으로 방송을 듣기도 했다(4일 기준, 방송은 시험방송 2회, 본방송 3회 총 5회 방송분이 진행된 상태다).

라디오 방송 외에도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방송국 앞에서 영화 상영을 한다. 영화는 30~40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들이다. 오래된, 색 바랜 영화를 가로등 불빛 밑 골목에 마을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보는 맛은 할머니가 끓여준 김치찌개가 생각나게 한다.

작가는 이런 오래된 음악과 영화를 통해서 주민들과 무엇을 나누고자 했던 걸까. 서로의 인생을 넘나드는 이야기와 음악 속에서 또 다른 대화가 이루어지고, 그런 대화 속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 번져가는 뜨뜻한 마을의 정서가 느껴진다. 작가의 의도 또한 이런 것이지 않았을까?

수요일 저녁 8시,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 상영을 보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골목에 모여 앉았다.
▲ 달밤에 골목 영화 상영 수요일 저녁 8시,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 상영을 보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골목에 모여 앉았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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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어색한 여배우들의 낯간지러운 콧소리와 과도하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남자 배우의 어설픈 코믹 연기에도 모두들 즐거워 크게 웃는 골목. 골목이 꽉 차고 시끌시끌해도 아무런 군말 없이 함께 나와 앉아 어머님들께 부채질을 해드리는 앞집 청년까지. 이곳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송림2동의 넉넉한 마음과 작가의 노력이 만나 만들어지는 그 풍경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8월 마지막 한 달, 라디오 방송과 영화 상영에 이어, 메아리 라디오 극장 팀은 송림2동을 무대로 한 단편영화를 제작한다고 한다. 주민들이 직접 연기를 펼친다고 하니, 주민들과 작가 간에 멋진 호흡이 기대된다.

"앞집 언니네 집이 예쁘게 칠해져서 더 좋아"

처음 송림동을 찾은 날, 솔직히 조금은 겁을 먹었다고 고백해야겠다. 천둥번개가 치고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작달비가 주룩주룩 오는 5월의 그날, 거의 허물어져가는 폐가를 답사했다.

벽은 심하게 갈라져 천장이 반쯤 내려앉았다. 거실은 깨진 유리와 접시, 부서진 문틀까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안방에는 또 누군가의 흔적이 있었으니, 갈 곳 잃은 노숙자들이 가끔 이곳 폐가에 들어와서 잠을 청한다고 했다. 화장실에는 온갖 오물이 꽉 차서 감히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송림동에는 이런 폐가들이 곳곳에 있었다. 재개발 사업의 중단으로 폐가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혼자 살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고인이 되어 폐가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주민들이 사는 집들 또한 모두 50년은 훌쩍 넘은 집들이라, 벽이 모두 갈라지고 페인트가 모두 벗겨져 삭막하기 그지없는 골목도 군데군데 있었다.

그런데 '퍼포먼스 반지하' 팀의 <마음이 모여 사는 마을> 프로젝트로 인해 마을은 점차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퍼포먼스 반지하 팀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건물 외벽과 담장 벽에 도색작업을 벌였다. 갈라진 벽과 바닥은 시멘트로 메웠고, 부서지고 가팔라 위험한 계단 위로 튼튼하고 멋스런 목조계단을 만들었다. 무너진 담장에는 아기자기한 화단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는 대부분 버려진 생활용품이나 부서진 시멘트 조각 등을 재활용하여 제작된다.

목조계단 제작중인 드라마고 작가, 보리 작가.
▲ 골목미술 목조계단 제작중인 드라마고 작가, 보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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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으로 내려오는 길의 가파르고 위험한 계단이 운치 있는 목조계단이 되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들의 옷자락은 비가와 눅눅하게 젖었고, 피부에는 톱밥이 엉겨 붙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런 찝찝함은 느껴지지도 않는 듯, 드라마고 작가와 보리 작가, 양수현 작가는 계단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건물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양수현 작가.
▲ 골목미술 건물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양수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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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 예쁘게 칠해진 것도 좋지만 앞집 언니네 집이 예쁘게 칠해져서 더 좋아~, 보통 집에 있으면 우리 집을 보기 보단 창문으로 옆집이나 앞집을 보잖아~?"

예쁘게 칠해진 집 앞에서 어머님 두 분이 대화를 나눈다. 서로의 집이 잘 칠해져서 좋다고 덕담이 오고간다. 한쪽 어머니는 앞집 색깔이 화사해서 좋다고 하시고, 또 다른 어머님은 앞집 언니 집이 차분한 색깔로 칠해져서 골목이 더 산다고 얘기를 하신다.

두 분의 얼굴이 송림2동 골목처럼 활짝 피었다. 송림동의 색이 빛바래지 않고 영원했으면 했던 순간이다. '마음이 모여 사는 마을'이란 이런 모습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민들레(39), 심이(39), 그림씨(38), 금란(44), 지경(38), 보나(42), 보리(48) 7인의 엄마 부대는 현장에서 골목에 색을 입히고 골목정비 작업에도 도움을 준다.

동시에 주민들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인터뷰하여 동화책까지 만든다고 한다. 퍼포먼스 반지하 팀은 인터뷰를 통한 창작 동화, '엄마가 만드는 마을동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부 미술이나 글을 전공한 엄마들도 있지만 전공과는 무관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때 묻지 않은 그녀들의 글과 그림에는 전업 작가가 따라갈 수 없는 매력적인 힘이 있다. 그 힘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쓰레기 쌓여 악취 풍기던 곳에 '아트 평상'

작가 공혜진, 문성예 그리고 내가 진행하는 '틈만나면' 프로젝트는 '틈만나면 송림동편'이란 마을신문과 마을에 외곽에 '아트 평상'을 제작하는 일을 한다.

신문은 7월(1호), 8월(2호), 9월(3호) 이렇게 3번 발행한다. 주로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기사를 싣는다. 또한 평상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여 마을사람들과 공간 활용방안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7월(1호)에 실린 평상 계획을 본 주민들의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

불법적으로 버려진 쓰레기가 쌓여있다.
▲ 평상 설치 이전 모습 불법적으로 버려진 쓰레기가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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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근린공원과 송림동이 맞닿아 있는 길, 예전에는 그곳에 '만수당 우물'이 있어서 마을사람들이 물을 길러 먹었다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7월 중순까지 쓰레기가 쌓여 악취가 풍겼다.

지금은 인공적인 공원 녹지로 메웠지만 아직도 단물이 샘솟는다. 이곳에 주민들이 물을 받는 양동이를 두어 지나가는 행인들이 땀을 씻고 더위를 식힌다. 이곳에 평상을 두면 불법쓰레기 문제가 해결이 되고 더위를 식히며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주민들과 나눴더니 대부분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마주치기가 힘들어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주민들의 생각을 수렴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신문에 이러한 이야기를 써서 의견을 듣고자 했다. 그랬더니 여러 가지 보완해야 할 문제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불법 쓰레기라지만 그곳이 없으면 쓰레기 버릴 곳이 없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었고, 자칫 노숙인들의 잠자리가 되거나 밤늦게까지 술판이 벌어지는 공간이 되면 주변 주민들에게 갖가지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문제제기를 해왔다.

이에 '틈만나면' 작가 팀은 '평상활용방법'과 '관리방법'을 해당 구역 주민들과 논의한 후, 그 내용을 아트평상 옆 입간판에 게시했다. 쓰레기 버리는 방법과 생활쓰레기 신고절차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었다.

유동적으로 평상의 모양을 변형 할 수 있는 ‘블록’으로 디자인.
▲ 틈만나면 블록 평상 유동적으로 평상의 모양을 변형 할 수 있는 ‘블록’으로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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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평상은 40cm × 40cm × 40cm 의 블록박스들을 이어붙인 평상이다. 평상의 특성상 나란히 앉을 수만 있지 마주보고 앉기는 힘들다. 그래서 유동적으로 평상의 모양을 변형할 수 있는 '블록'으로 디자인했다.

기본 평상 틀 제작과 설치는 7월 이내로 완료가 된다. 이후 평상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작가들과 주민들이 함께하여 8월 한 달간 진행될 예정이다.

어떻게 만남을 다시 기약할까

8월, 길게는 9월이면 모든 프로젝트 계획이 마무리가 된다. 반지하 팀처럼 거점 형태를 한 작가 팀도 있었지만 청년작가 팀의 경우 외부에서 프로젝트를 위해 마을에 들어온 팀이다. 그래서 한 가지 과제가 더해진다. 어떻게 헤어짐을 준비할까. 어떻게 만남을 다시 기약할까.

"총각!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 집이 멀어서 그런가? 어디 사는고?"
"죄송해요. 피곤해서 늦잠을 자다 보니 늦었어요. 저는 서울 김포공항 근처에 살아요."
"그렇게 멀리~? 난 또 이 근처에 사는 줄 알았어. 그냥 이 동네에 살면 안 돼?"
"그러게요, 여기 집값도 싸고 인심도 좋고 너무 좋은데… 이사하고 싶어져요."

처음에는 불편하고 한 마디 나누기가 너무나 조심스럽고 힘들었다. 그런데 3개월이란 시간 동안 벌써 정이 들어, 떠날 생각을 하면 마음이 허전하다. 매일같이 평상에 앉아서 들었던 공씨 아버님의 새옹지마 인생사가 생각날 것만 같다. 임씨 어머님의 갑작스런 입원에 모두가 마음을 졸이며 병문안을 가던 그때 그 따뜻한 모습들이 그리울 것만 같다.

조씨 할머니의 딸 자랑과 텃밭에서 키운 방울토마토의 달콤함이 매번 생각날 것 같다. 우연찮게 만나게 된 이씨 종갓집 아버님이 내게 보여줬던 '비밀의 화원'은 내가 어딘가에서 모방하고 있을 것만 같다. 물론 내가 이곳에서 만난 그분들은 이미 헤어질 것을 생각하고 나를 만났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송림2동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청년작가로서 프로젝트가 정리가 되면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내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잠시 부모님이 계신 제주도에 내려가 볼 생각이다. 지금과 같은 프로젝트 활동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과의 괴리감을 어떻게 좁혀갈 수 있을까.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반드시 만남이 있음을, 오늘 내가 만난 그들과, 내 자신과 나누고 싶은 오래된 말이다. 모두에게 아쉬움이 없도록, 마지막 한 달 만큼은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오늘의 내가 후회 없었으면 좋겠다. 오늘 내가 있었던 그 자리가 앞으로 마을이 더욱 좋게 변화해갈 의미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층집 어머님이 신문을 보고 계신다.
▲ 틈만나면 송림동 1호 신문 이층집 어머님이 신문을 보고 계신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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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ifac.tistory.com (인천문화재단 아카이빙 블로그에 중복송고합니다.)



태그:#틈만나면, #퍼포먼스 반지하, #메아리 라디오 극장, #인첨문화재단, #현대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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