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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들것인가 총을 들것인가, 선택할 기회조차 없는 한국의 청춘들은 끊임없는 시련의 벽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전쟁 같은 삶을 살아 내야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끝을 알 수없는 벽처럼 폭력의 세기는 아직도 계속되는 듯합니다.
 꽃을 들것인가 총을 들것인가, 선택할 기회조차 없는 한국의 청춘들은 끊임없는 시련의 벽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전쟁 같은 삶을 살아 내야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끝을 알 수없는 벽처럼 폭력의 세기는 아직도 계속되는 듯합니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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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밤새 행군이 끝난 후 아침이 되자 쉴 틈도 없이 적군 팀의 기습이 시작됐다. 순식간에 인질이 된 신병들의 눈은 헝겊으로 가려지고, 손과 발은 케이블타이로 묶인 채 내동댕이쳐진다. 선임병들은 포박된 신병들에게 호통을 치며 취조하는 행세를 한다. 신병들을 눕혀놓고 물을 들이부어 호흡이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고 구타를 하기도 한다.

몇 달 후, 다시 시작된 새로운 신병 훈련도 다르지 않다. 그들의 눈은 일방적으로 가려졌고, 손과 발이 묶인 채 소위 '밟힘'과 '구타'를 당한다. 누군가는 눈을 가린 채 있는 신병의 몸에 자신의 담뱃불을 지지기도 하고, 참기 힘든 전기충격을 가하기도 했다…."

이것은 실제 있었던 군대 훈련에 대한 내용입니다. 한국이 아닌, 독일군대에서 벌어진 훈련이었습니다. 2004년 여름, 독일 연방군에서 행해졌던 이 사건은 이른바 '가상 인질감금 훈련'이었습니다. 당시 독일연방군에서의 인질훈련은 금지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훈련에 참여했던 한 선임병에 의해 찍힌 사진과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당시 독일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 후 훈련을 받았던 신병들이 군법무관에게 이 사건의 가혹행위 대해 진술하게 되면서 해당 부대는 집중탐구조사를 받게 되었고, 나아가 검찰까지 이 사건수사에 가담하게 됩니다. 꽤 오랜 법정공방이 이어졌고, 독일 언론은 앞 다투어 이 사건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결국 당시 신병교육을 담당했던 중대장을 비롯하여, 이 훈련을 직접 모의한 소대장들은 무거운 징계와 형벌을 받게 됩니다. 또 학대행위에 가담했던 군인들 역시 냉정한 법적 심판을 받게 됩니다.

독일의 대체복무 심사기준, '진정성'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인 2014년 6월, 독일 언론 <베데르>(WDR, 서부독일방송)가 사건에 대해 되짚어보는 특집기사 실었습니다. 이 '인질감금훈련 사건'은 아직까지도 독일연방군의 명예를 크게 훼손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러한 군대 내 폭력성은 비단 독일뿐만이 아닐 겁니다. 종종 세계 언론의 폭로되는 미군의 충격적인 행태는 말할 것도 없고, 얼마 전 한국에서 벌어진 GOP총격사건은 세월호 침몰에 이어 국민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습니다.

2004년 '인질감금훈련 사건' 당시와 지금의 독일연방군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징병제'가 폐지되고 '모병제'로 전환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독일이 모병제를 시행하기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꽤 오래 전부터 몇몇 정당이 모병제 시행을 끊임없이 요구해왔고, 독일 연방군은 실질적인 군대개혁을 점차적으로 추진해왔습니다.

비로소 독일 연방군은 2011년 7월, 탈냉전과 통일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군사규모를 축소하는 동시에 모병제를 실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군대 복무기간도 기존의 9개월에서 6개월로 줄어들게 되었고, 사병월급도 상당부분 인상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가 이미 2001년부터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독일의 모병제 시행은 다소 늦은 감이 있어 보입니다. 비록 모병제 시행은 다른 서구 강대국들에 비해 늦었지만, 총 들기를 거부하는 이들의 대체복무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정당한 권리로 인정되어왔습니다.

저는 실제로 독일 징병제가 실시되던 때에 대체복무를 했던 독일인 친구에게 대체복무에 대한 심사기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딱 한마디를 내뱉었습니다.

"진정성"

순간 제 귀가 의심스러워 다시 묻자 그는 독일의 양심적 병역거부 결정은 단지 당사자의 '진심'에 따라 판단되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양심적 병역거부 자체가 물리적으로 따질 수 없는 정신적인 것이니, 수치적인 심사기준이 없다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병제 실시 후 늘어난 동독 청년 자원율

한편 얼마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된 독일 연방군모집 광고영상은 모병제 실시에 따른 독일군의 변화된 지향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 영상에 등장한 독일 연방군의 모토는 한마디로 '미래를 위해 연방군에서 커리어를 쌓자'입니다. 의무적 군복무를 폐지했기 때문에 독일 연방군은 이제 다양한 분야에 전문직업인으로서의 군인을 양성하겠다는 의도를 전면적으로 내세웁니다.

그 밖에도 독일 연방군은 전문 여성인력을 점차 확대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연방군 자체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게릴라시위자들이 연방군 모집 광고가 부착된 버스에 스프레이 테러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만 한 점은 독일이 모병제를 실시한 후로 동독지역 청년들의 군대자원비율이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일부 어떤 이들은 '가난한 자들의 군대'라고까지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은 극적인 통일을 이뤘지만 실업률, 빈곤율에 따르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아직도 분명 존재하는 것입니다.

베를린 장벽에서 팔레스타인 장벽 그리고 한국군인

특히 요즘 들어 독일 언론에서 매일 보도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흐르는 긴장 그리고 말레이시아 항공기 폭격,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등등 각 나라마다 서로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아직도 폭력의 세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말하는 듯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한국에서 살았을 때보다 베를린에서 지내게 된 후부터 한국의 분단과 전쟁, 그리고 군대에 대해 더욱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매일 어쩔 수 없이 볼 수밖에 없는 베를린의 전쟁 흔적들 때문일 것입니다.

전쟁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서 있는 카이저빌헬름교회, 베를린 길바닥 곳곳에 새겨진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의 이름, 전쟁 희생자들의 기념비 등등 수많은 기억의 장치들은 인간의 야만성과 무자비한 폭력의 역사를 잊지 말라고 외치는 듯합니다. 

특히 '전 세계의 장벽'이라는 주제로 팔레스타인 장벽과 함께 나란히 베를린 장벽에 설치되었던 대한민국 판문점의 군인들 모습을 봤을 때의 낯 뜨거움과 복잡 미묘한 감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에 설치된 한국의 군인들과 판문점 모습
 베를린 장벽에 설치된 한국의 군인들과 판문점 모습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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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분단된 나라에서 태어나, 인생에서 가장 꽃 같은 시절에 군대를 가야 했던 많은 청년들의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아버지, 친구들, 동생, 선배, 후배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나에겐 낯설었던, 아버지의 청춘 한가운데였던 군 시절 흑백 사진을 보았을 때, 친구들이 입영통지서를 받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할 때, 인생의 무게 때문에 밤새 철책을 바라보며 흐느껴 울었다는 힘겨운 고백이 담긴 동생의 편지를 받았을 때, 휴가 나와 보니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여자 친구 때문에 술을 사달라는 후배를 만났을 때, 군대를 제대하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막노동판에 뛰어든 선배를 보았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들의 어깨를 두들겨주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상황은 그다지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감히 이야기 해봅니다.

청년들에게 총 대신 꽃을 들 권리를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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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공미술가로 활동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연구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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