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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세상을 탐험하는 것은 마음을 탐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걷기는 세상을 여행하는 방법이자 마음을 여행하는 방법이다"
- <걷기의 역사>, 레베카 솔닛

여기는 아일랜드.

공항에서 더블린 시내로 향하는 택시 안. 할머니처럼 흰 머리가 나있으나 젊음이 느껴지는 민소매 차림의 택시 운전사는 우리에게 아일랜드식 유머라며 거리 한 편에 붙어있는 글귀를 가리킨다.

husband for sale
 husband for sale
ⓒ kathy landin-the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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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sband for sale, not used'

'Done Deal'이라는 쇼핑몰의 광고 카피 '남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가 히트를 친 모양이다.

나는 지난해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홈스쿨링을 했다. 그러다 또래가 느끼는 보편의 경험을 가져보자는 생각으로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아직은 무사히 다니고 있다. 학교 일정을 충실히 소화 하고 싶은 마음에 기말고사를 마치고서야 지난 7일 밤, 짐을 싸서 공항으로 향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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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는 중학생에게 '자유학기제'라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6학기 중 한 학기를 시험에 대한 부담 없이 진로를 탐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다. 이 제도는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를 모델로 하고 있다.

연구원인 아버지가 한 달 동안 해외 단기 연수를 스웨덴 웁살라로 계획했는데, 어머니의 제안으로 스웨덴은 나중으로 미루고, 아일랜드로 향했다. 아버지는 전환학년제 사례를 연구하고,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어머니는 자유학기제 코디네이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나는 아일랜드의 문학과 역사-예술을 탐방하고 이곳의 문화를 온전히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목적으로 떠났다.

암스테르담을 경유하는 KLM비행기. 아직 방학-휴가 기간이 아니어서인지, 아니면 딱히 동양에서 아일랜드를 찾을 이유가 없어서인지, 동양인이 우리밖에 없다. 아일랜드는 영미 문학에서 큰 기둥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문학에 관심을 즐기는 사람이 많이 모여든다. 한국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나보다.

작지만 품위 있는 도시

문학가인 어머니가 아일랜드에 오자고 한 건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 때문이었다. 한 작가가 쓴 한 문장이, 이 작고 초라한 섬을 수많은 이들이 꿈꾸는 섬으로 만들었다. 아, 문학의 힘이란!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선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상표도 있다.

이니스프리 호수섬 - 예이츠(The Lake Isle of Innisfree - William Butler Yeats)

The Lake Isle of Innisfree - William Butler Yeats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 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t's all a-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t's wings.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a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욋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 벌통 하나
벌 윙윙대는 숲 속에 홀로 살으리.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맛보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빛
한낮엔 보라빛 환한 기색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소리 가득한 그 곳.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보도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리.

아일랜드의 바람을 느끼며 예이츠의 시를 되새긴다. 공항에서 더블린 시내로 향하는 길에는 녹색 땅과 푸른 하늘, 오래된 돌담 집이 즐비하다. 네모난 굴뚝이 있는 낡은 집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몇 시간 전에 서울에서 보았던 거리와 대조된다.

아일랜드의 역사는 저항의 연속이다. 8세기 바이킹의 침략과 13세기 헨리 2세의 침략을 시작으로 80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다 독립했다. 17세기에는 인구의 절반이 주식이던 감자로 전염병이 퍼져 죽거나 떠났다. 아픈 자국이 많음에도 20세기 말 고도성장으로 유럽 최부국이 된 버라이어티한 나라.

좁은 섬에서 나는 것은 감자 말고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처럼 교육열이 굉장히 세고, IT에 강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와 이들의 정서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일리 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작지만 품위 있는 도시다. 인간이 만든 도시지만 콘크리트의 삭막함은 찾아볼 수 없다.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곳 같다. 거리에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눈을 마주치면 안부를 묻는다. 편안한 분위기가 부럽다.

우리가 만난 어느 아일랜드 사람은, 다른 어느 곳을 나가도 자기는 아일랜드로 돌아와 살고 싶다고 했다. 이곳을 몇 시간 걸으며 나 또한 그러고 싶은 마음이다. 자연과 문학의 나라. 한 달간 온전히 누리다 돌아가고 싶다.

이곳에 머무는 8월 5일까지 꾸준히 열여섯 눈에 보인 아일랜드를 글로 써 볼 생각이다. 아일랜드 극작가 사무엘 베게트의 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빌려 표현하자면, 과연 고도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여섯 살 학생기자입니다.



태그:#아일랜드, #이니스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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