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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구월동 신우빌라 단풍나무 평상, 그곳에 우리는 '틈만나면' 모였다. 어떤 대단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끌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상에서 만난 할머니께서 들려준 단풍나무 평상이야기는(지난번 이야기 참고) 우리들에게는 콘크리트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어쩌면 그날의 시간은,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에겐 굉장한 사치였는지도 모르겠다. 대졸, 무직에 꺾인 20대의 우리다. 어떤 누가 이토록 만사태평 할 수 있을까. 허구한 날 푸른 단풍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달콤한 시간을 만끽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치를 한 해 동안 마음껏 누리기로 했다. 책상에 앉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공부만으로 청춘을 썩히기보단, 평상 그늘에 앉아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되돌아보고 성찰하고 싶었다. 할머니들과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면서.

오래된 유모차

하루는 평상 옆에 웬 오래된 유모차가 눕혀져 있었다. 평상에 앉아계신 할머니께 이게 왜 이곳에 버려져 있냐고 물었더니 대답해주기를.

"구루마? 저 집 할멈이 그만 세상 등지고 가버렸어. 그래서 그 집 짐들을 죄다 뺐는데 거기서 나온 걸 거야 아마."

그것은 고인이 된 할머니의 유모차였다. 할머니들은 그것을 '구루마'라고 불렀다. 나이가 들어서 무릎 관절이 약해지고 허리가 굽으면, 짐을 이고 걷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팡이보다는 유모차를 쏙 빼닮은 구루마를 끌고 다닌다고 했다. 구루마 안에는 물건들을 놓을 수 있는 작은 수납공간이 있어서 시장을 보러 갈 때도 이를 끌고 간다고 했다(구루마, kuruma, '수레'의 잘못. 일제시대를 살아온 어머님들이 쓰는 일본어이다).

새로 뽑은 자가용

성당에서 구르마(수레)를 선물 받은 할머니, 함박웃음을 띄며 자랑 하셨다.
▲ 새로 뽑은 자가용 성당에서 구르마(수레)를 선물 받은 할머니, 함박웃음을 띄며 자랑 하셨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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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성당에 다니는 할머니가 도르르 구르는 그것을 끌고 오시더니 "차 한 대 뽑았어!" 라고 기운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에 함께 계시던 어르신들이 구르마가 참 예쁘다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할머니는 성당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다고 자랑했다. 자기도 한 번 타보자며, 새 구루마에 한 분 한 분 모두가 돌아가며 앉아 본다.

한 분 한 분 새로 받은 구르마(수레)에 앉아보고 있다.
▲ 새로 뽑은 구르마에 앉아 한 분 한 분 새로 받은 구르마(수레)에 앉아보고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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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튼실하네, 편안해"
"와~, 다르네, 달라."

모두들 승차감이 편안하다고 매우 부러워했다. 구르마 하나로 그녀들의 즐거움은 배가 되고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또한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그곳 구성원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구루마는 새 주인을 맞이하고 떠나보내고를 반복, 윤전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움직임이 익숙지 않아 타고 다녔던 유모차, 나이가 들어 다시 그것에 의존할 때가 되면, 마음도 순수해지나 보다.

새로 산 구루마 앞에서 다시 소녀로 돌아간 할머니들을 보면서, 이런 상상을 해본다. 구루마를 타고 세상 곳곳에 '단풍나무'와 '평상'을 심고 돌아다니시는 할머니의 영혼을.

할머니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소재로, 매주 포스터를 한 장씩 만들어 입간판에 게시했다. 이 이야기는 평상 옆에 놓여있던 구르마(수레)를 보고 포스터를 제작했다. 그림은 이승훈 작가가, 글은 문성예 작가가, 편집은 고아람 작가가 한 포스터이다.
▲ 나무이야기② 할머니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소재로, 매주 포스터를 한 장씩 만들어 입간판에 게시했다. 이 이야기는 평상 옆에 놓여있던 구르마(수레)를 보고 포스터를 제작했다. 그림은 이승훈 작가가, 글은 문성예 작가가, 편집은 고아람 작가가 한 포스터이다.
ⓒ 문성예, 고아람,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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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3년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인천 구월동에서 '틈만나면'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매주 한 편씩 연재합니다. 본 기사는 [틈만나면 단풍나무 평상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입니다. 이 글에서 사용되는 '사진'과 '포스터'는 '만만한 뉴스(http://manmanhan.tistory.com/)'에 중복 게재되고 있습니다.



태그:#틈만나면, #인천문화재단, #구월동, #인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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