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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빛나는 타지마할을 마주하는 순간,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아그라)
 우아하게 빛나는 타지마할을 마주하는 순간,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아그라)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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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시어머니의 측은지심은 변함이 없다.

떼죽음 당한 어린 학생들의 영정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며 사뿐사뿐 걷는 대통령이 '불쌍해 똑 죽겠다'는 거다.

"엄니가 더 불쌍해욧!!!"

앙칼지게 쏘아 붙였는데도 어쩐 일인지 어머니는 헐헐헐 좋아라 웃으셨다. 아, 이거구나. '불쌍하다'는 말은 할머니들의 최고의 찬사로구나.

상처와 한으로 평생을 살아온 이 땅의 늙은 여인들은, 자신과 대통령을 한 세월을 견뎌온 비련의 여인으로 동일시하며 하염없이 어루만지고, 연민으로 푹 고꾸라져 버렸다. 부모를 총탄으로 보냈다는 비극, 고아라고 과도하게 포장된 비극 앞에서 미혹되었다.

비극만큼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또 있을까.
그렇다 해도 타지마할이 품고 있는 슬픈 이야기는 몰라도 좋았다.

사랑하는 왕비가 15번째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나버리자 왕은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걸어 잠근 문을 1년 만에 열고 나온 왕의 머리는 하얗게 세어 있었다. 건축왕 샤 자한은 죽은 아내를 위해, 매일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22년에 걸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라면, 권력 가진 자의 넘치는 사랑 이야기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 이야기에는 뭐니뭐니해도 비극이 더해져야 완성되는 법.

제 몸에서 나온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폐위된 샤 자한은 아그라성에 유폐되었다. 아그라성의 작은 방에서 저 멀리 보이는 타지마할, 구불구불 흐르는 야무나 강변 위에서 하얗게 빛나는 타지마할에 누워 있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다 최후를 맞게 된다. 여름 내내 짠맛이 나는 우물물만 마시게 했다는 아우랑제브의 학대 속에서, 자신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바라보며 죽어간 그는, 사랑의 추억에 행복했을까, 덧없는 인생의 영욕에 쓸쓸했을까….

진정한 예술이란 이런 것이겠지

수많은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사분정원은, 후마윤의 무덤에서 시작되어 타지마할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사방에 흐르는 물은, 사막에서 발생한 종교인 이슬람교의 낙원을 상징한다.(델리)
▲ 후마윤의 무덤 수많은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사분정원은, 후마윤의 무덤에서 시작되어 타지마할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사방에 흐르는 물은, 사막에서 발생한 종교인 이슬람교의 낙원을 상징한다.(델리)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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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면서, 외국인들이 '아!' 하며 탄성을 내지르는 걸 딱 두 번 본적이 있다. 일본에서 번쩍번쩍하는 금각사를 처음 본 순간과 인도에서 찬란한 타지마할과 처음 마주친 순간이다.

수줍은 처녀의 치맛자락처럼 우아하게 오므려지는 돔의 곡선, 대리석 벽을 파내고 아름다운 꽃문양을 박아 넣은 피에트라 두라, 단순해서 더 찬란하고 순백이어서 더 화려한 타지마할.

타지마할의 사분정원(四分庭園)은 이슬람교의 낙원사상을 보여준다. 네모 반듯한 정원은 십자형으로 교차되는 수로에 의해 사등분이 되고, 네 개로 갈라지는 수로는 생명의 원천이며, 그 수로가 교차하는 지점은 인간과 신이 만나는 곳이다.

이슬람 정원의 짜르 박 형식이 어떻다는 걸 몰라도, 한 인간의 애절한 사랑과 비극적인 최후를 다 걷어낸다고 해도 타지마할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에 얽힌 슬픈 이야기를 전혀 모른다 해도 그 아름다움이 덜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예술이란 그런 것이겠지. 덧씌워진 포장들을 모두 걷어내고도 그 자체만으로 환하게 빛나는 것. 슬픔과 연민과 비극의 사연들을 다 걷어버리고 난 후에 그 자체만으로도 온전히 아름다운 것이야말로 진짜배기가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2013년 1월 한달 동안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델리→조드뿌르→아그라→카주라호→바라나시→아우랑가바드(아잔타 석굴)→뭄바이
우리 가족의 여정은 이러했지만, 제 여행기는 여행의 순서를 따르지 않습니다.
엽서 한 장 띄우는 마음으로 씁니다.



태그:#타지마할, #후마윤의 무덤, #사분정원, #인도, #인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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