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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친구가 200명은 넘어요. 친구들한테 다 부탁해서 한 500개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26일 시각장애인들을 만나 넓은 인맥을 내세우며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습니다.
ⓒ 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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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서울시장 새누리당 후보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어제(26일) 정 후보님이 우리 시각장애인이 평소 자주 산책하는 남산에서 다른 시각장애인들을 만나 좋은 선물을 주셨다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관련기사: 정몽준 "박원순과 토론할 때는 국어사전 갖다 놓고...")

정 후보님이 26일 오후 서울 남산 산책로에서 열린 시각장애인걷기대회에 참석하셔서 시각장애인에게 일자리 500개를 약속해 주셨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단 한 개의 일자리도 아쉬운 우리 시각장애인에게 무려 500개나 되는 일자리를 약속해 주셨다는 말을 듣고 참 기뻤습니다. 그러나 기사를 조금 더 찬찬히 읽다 보니 뭔가 이상했습니다.

한 시각장애인의 "시각장애인 일자리 200개를 약속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요청에 대해 정 후보님은 "제가 아는 친구가 200명은 넘어요. 친구들한테 다 부탁해서 한 500개는 (준비) 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또 정 후보님께서는 당연히 그럴 힘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친구들한테 부탁할 것까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최고 회사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이시니 현대중공업만 가지고도 시각장애인 500명의 일자리쯤이야 충분히 만들 수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친구들한테 부탁하면 한 번의 일자리는 만들 수 있다고 치고 그 다음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시각장애인들이 일자리를 만들 때마다 정 후보님께 부탁하고 정 후보님은 그때마다 친구분들한테 부탁하실 건가요?

아마도 남산에서 정 후보님과 만난 시각장애인의 뜻은 당장 200명의 시각장애인을 취업 시켜 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닐까요? 능력 있고 훌륭한 재벌 2세의 정몽준이 아니라 1천만 서울시민을 대표할 서울시장 후보로서의 정 후보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시각장애인 현실도 모르고 일자리 만든다?

그 자리에서 같은 당 소속 김정록 의원이 '시각장애인 안마 일자리' 보호를 위한 "퇴폐업소 일소"를 주장하자, 정 후보께서 퇴폐업소를 시각장애인의 경쟁자로 꼽았다는 뉴스도 보았습니다.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 "일자리는 그냥 일자리가 아니고 각 구청과 협의하에 여러분들이 노인과 장애인들에게 안마를 할 수 있도록 또 그 이면에는 마사지, 퇴폐업소들을 일소해서…."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허허, 퇴폐업소가 경쟁자구나. 허허."

전 이 부분의 기사를 보면서 정 후보님이 시각장애인만이 할 수 있도록 법제화되어 있는 안마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계신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현재 안마는 시각장애인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란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런 시각장애인의 안마가 요즘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물론 퇴폐업소도 문제지만, 불법적인 유사 업종에 인해서 더욱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태국 마사지, 경락 마사지, 스포츠 마사지 등 안마와 유사한 업종들이 서울 시내 간판을 가득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업종들이 불법이란 것은 알고 있습니까? 시각장애인 안마사 외에는 지압, 안마, 마사지 등의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어떤 업종도 불법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나서야 시각장애인에게 일자리를 몇 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인맥이 넓어서, 친구가 많아서 시각장애인들에게 던져주듯 만들어 주는 일자리는 필요 없습니다. 시각장애인도 당당한 서울시민의 한 사람입니다. 동정의 대상이 아니란 말입니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26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공원길 목멱산방 앞에서 열린 '2014년 서울지역 시각장애인 춘계걷기대회'에 참석해 최창식 중구청장 후보와 함께 눈을 가리고 시각장애인들의 고충을 체험하고 있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26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공원길 목멱산방 앞에서 열린 '2014년 서울지역 시각장애인 춘계걷기대회'에 참석해 최창식 중구청장 후보와 함께 눈을 가리고 시각장애인들의 고충을 체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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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후보님은 그 자리에서 눈을 가리고 시각장애인 체험도 하셨다죠. 어떠셨나요? 아마도 매우 두렵고 겁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체험하고 나면 시각장애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각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받기 쉽습니다.

'아, 눈을 가려보니 무척 불편하구나. 시각장애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겠구나'

뭐 이런 생각은 안 드셨나요?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의 눈을 갑자기 가리고 걸어보라고 하면 누구나 두렵고 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들 중에는 혼자서도 서울 시내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재활에 관련된 훈련을 받거나 혼자서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입니다.

즉, 어느 날 갑자기 눈을 가리는 시각장애인 체험은 전혀 시각장애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라면 후보님께 눈을 가리고 걸어보는 체험을 할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보조기기를 가지고 체험해 보시면 좋았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보조기기라고 별 것이 아닙니다. 혹시 정 후보님은 시각장애인들도 스마트폰을 이용하거나 컴퓨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보조기술입니다. 정 후보님의 핸드폰을 가지고도 체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후보님의 핸드폰이 아이폰이라면 설정 메뉴에서 보이스오버를, 갤럭시 같은 안드로이드 계열의 제품이라면 설정에서 토크백이란 것을 켜놓고 화면을 깜깜하게 하고 사용해 보세요.

그럼 시각장애인들이 정보를 취득하는 데 있어 무엇이 불편하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각장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가 아니고 조금만 지원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장애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정 후보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줄곧 편안하게 살아오신 분께 우리 같은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100% 이해해 달라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천만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서울시장으로 나섰기 때문에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떤 정책을 약속하실 때는 그 정책으로 인해 한 사람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태그:#정몽준 후보, #서울시장 선거, #지방선거, #시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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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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