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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 최고의 사원 유적지로 유명한 카주라호에서 볼거리가 가장 많다는 서부 사원군
 북인도 최고의 사원 유적지로 유명한 카주라호에서 볼거리가 가장 많다는 서부 사원군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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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인터라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의 카주라호. 이 세 곳의 공통점은?

한국인들이 바글바글하다는 거다. 알프스 자락 인터라켄 역에 똑 떨어지는 순간, 앙코르와트에서 가이드를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는 한국인들을 보는 순간, 카주라호에서 인도인들이 문을 연 한국식당들이 여기저기 성업 중인 걸 보는 순간, 외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다.

왜 한국인들은 앙코르와트나 카주라호를 그렇게나 좋아하는 걸까? 한국인들은, 동남아 여행하면 앙코르와트를 먼저 떠올리고, 인도에 간다하면 카주라호 들르는 걸 잊지 않는다. 힌두신화나 건축·종교에 유별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내 나름의 생각은 이렇다, 앙코르와트나 카주라호는 여행보다는 관광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잘 맞아 떨어진다는. 돌아다니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생생한 풍물이나 현장의 경험보다는, 잘 짜여진 일정에 따라 볼 것만 보기에 딱 좋다는 거다. 관광치고는 볼거리들이 제법 있다는 거다. 

더구나 카주라호는, 유교적인 체면의 굴레 속에 꼭꼭 갇혀 살아온 한국인들이, 노골적인 남녀 성애상(미투나)을  예술작품 감상하는 척, 대놓고 올려다 볼 수 있는 해방구가 아니던가.

그러나 내게, 카주라호의 사원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만일 다시 카주라호를 찾는다면, 그건 길고 긴 여행 중에 휴식을 위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하루 온종일 부산스럽게 사원을 돌아보면서 사진만 찍어댈 게 아니라, 느지막이 일어나 하루에 50루피(1000원 정도)짜리 자전거를 빌려 타고 사원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릴 것이다. 이방인들이 점령해 버린 관광지를 벗어나, 울타리 없는 짐승들과 섞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을 지나갈 것이다. 사진 찍히기를 두려워하는 우물가의 여인들을 지나치고, 흙먼지가 일어나는 황량한 들판에서 젊은 부부도 만나게 된다. 먼 길을 떠나는지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지고 묵묵히 걸어만 가는, 입성 허름한 부부의 모습이 왠지 처연하다.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 나갈 무렵 사원을 찾으리라. 땡볕 아래에서 에로틱하기만 하던 미투나들은 긴 그림자를 끌며 조금은 서글퍼 보일지도 모르겠다.

사원을 나오면 곧바로 인도인이 하는 한국식당으로 향할 것이다. 그곳에는, 다리가 긴 인도 소년이 쉼 없이 옥상을 오르내리며 손님들의 시중을 들고 있을 것이다. 안쓰러울 정도로 요령이 없는 소년이 주문을 받고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건너다보이는 커다란 나무의 무성한 잎 사이로 불꽃처럼 터지는 새들의 지저귐이, 저녁 공기에 가득 울려 퍼지는 시간을 천천히 즐기면 되니까.

남녀 한 쌍의 성애상을 미투나라고 한다. 
고대 인도인들은, 불완전한 남녀가 짝을 이루고 합일된 상태에 이르는 걸 인간의 가장 완전한 상태로 보았다.
▲ 사원의 외벽에 새겨진 미투나 남녀 한 쌍의 성애상을 미투나라고 한다. 고대 인도인들은, 불완전한 남녀가 짝을 이루고 합일된 상태에 이르는 걸 인간의 가장 완전한 상태로 보았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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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3년 1월 한달 동안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델리→조드뿌르→아그라→카주라호→바라나시→아우랑가바드(아잔타 석굴)→뭄바이
우리 가족의 여정은 이러했지만, 제 여행기는 여행의 순서를 따르지 않습니다.
엽서 한 장 띄우는 마음으로 씁니다.



태그:#카주라호, #미투나, #카주라호의 서부 사원군, #인도, #카주라호의 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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