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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스마트기기로 무언가를 열심히 읽고 있다. 여느 장소에서든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오늘날의 모습이다.

중요한 검색어 하나만 클릭해도, 엄청난 양의 정보가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이러한 디지털기기의 발달은 독서 인구 감소와 출판시장 침체를 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장르의 출판물에 힘을 실어주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몇 해 전부터 독자들은 '공감'과 '위로'를 다룬 에세이에 열광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최근에는 '독서에세이'가 범람하고 있는 추세다. 지식이 넘쳐나 과잉이 되고 있는 현시대에, 독자들에게는 과거와 다른 책읽기가 요구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다양한 정보를 소비하는 호모스마트쿠스를 유혹할 수 있는 매개물은, 어쩌면 방대한 책들이 주인공이 되는 한 권의 책이 아닐까 한다. 독서에세이 안에는 고전 명작부터 최신 경영에 이르기까지, 한 번쯤은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법한 책들이 곳곳에 살아 숨 쉰다. 더불어 손가락 터치 하나로 세상을 열수도 단절시킬 수도 있는 세계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책을 통해 살아있는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감'의 장이 되고 있다.

'독서에세이'는 모든 장르의 책을 대상으로 하는 감상문이다. 독서에세이를 쓰는 필자의 느낌과 생각은 오직 대상 텍스트의 내용에서부터 비롯된다. 텍스트는 시, 소설, 수필과 같은 문학 작품 뿐만 아니라 인문, 과학 등의 비문학서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책들을 읽고 에세이를 쓰는 이는, 필자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독자이다. 여기서 텍스트의 장르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독서에세이가 생산된다. 전문서적을 읽은 필자는, 독자로서 텍스트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를 고민 하게 된다.

텍스트의 주요 개념을 정리하고 수용한 것을 중심으로 자신의 지식과 비교하면서 기술한다. 문학 작품을 읽은 필자는, 등장인물이 겪은 상황이나 갈등에서 자신과의 유사점을 찾아내고 감정을 이입하면서 경험 중심의 글을 쓰게 된다. 이를 위해 필자 개인의 삶을 적극적으로 끌어오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한다. 이는 독서에세이가 텍스트와 필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어느 쪽의 관점으로 더 많이 기울어지는가에 따라 극명하게 서술구조가 달라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중에서도 근래 들어 출판 빈도가 높은 독서에세이는, 필자 본연의 삶을 충실하게 재현시키고 있는 후자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정혜윤의 독서에세이 <삶을 바꾸는 책 읽기>는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이라고 책표지에 명기시하고 있으며, 곽아람의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는 '당신과 나의 삶을 펼치다'라는 테마 아래, 그 동안 자기 속에 감추어둔 이야기를 텍스트로 말미암아 발현시키고 있다.

또한 마르기트 쇤베르거의 <소설, 여자의 인생에 답하다>는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당신에게' '무턱대고 과거를 미화시키는 당신에게' 등의 소제목을 달고, 필자가 책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자신의 경험을 결합시키며 숨은 독자를 향해 충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독서에세이는 필자가 텍스트와 연관된 자신의 경험을 1인칭으로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기에, 그것은 숨은 독자에게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어떤 대목에서는 남다른 감동을 주기에 이른다. 독자에게는 전자의 설명적이거나 설득적인 텍스트와 비교할 때보다, 후자의 문학적인 대상과 맞닿을 경우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적 요소가 훨씬 더 증가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독서에세이를 읽는 독자 대부분이 국내 온라인서점의 서평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평소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는데, 다독하는 느낌을 줍니다."
"어떤 책이 좋은지 알 수가 없어서, 감상을 듣고 고르려 합니다."
"그 책을 읽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떤 감정이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가운데 30대 초반의 한 여성독자가 쓴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

"나는 화자가 손자를 둔 할머니라는 걸 알고, 바로 책을 덮었다. 이 글을 읽고 후회한다. 이런 책인 줄 알았더라면 반드시 읽었을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그리움을 위하여>라는 소설을 두고 한 말이다.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평범한 주인공이 나와서, 자신의 경험을 환기시키며 깨달음을 주게 하는 작품을 주로 봐왔다고, 그 독자는 덧붙이고 있었다.

독자는 공감된 스토리를 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운데 두고 함께 이야기하기를 바란다. 그 둘을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독서에세이가 아닌가 한다. 필자는 숨은 독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자기 글에 대한 상위인지(meta cognition)에 도달할 수 있고, 독자는 자신이 읽은 작품과 통합시키며 텍스트 변환 작업을 하게 된다. 필자와 숨은 독자의 대화와 조정의 과정을 통해 '독자'가 '독자'를 낳는 공감의 글쓰기인 '독서에세이'가 재현되는 것이다.

이처럼 독서에세이는 '작가'와 '텍스트' 그리고 '독자'가 함께 공존하는 '해석 텍스트 쓰기'이다. 또한 '읽기'에 내재하고 있는 '쓰기'를 현실화시키며, '독자'를 보다 실질적인 '필자'의 자리로 이끌어가는 글쓰기 영역이다.

'문학의 창조적 재구성'에 수용 능력과 창작 능력을 매개로 하여, 허구의 세계와 허구 바깥 세계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를 읽는 독자들은 필자가 전하는 독서의 유익을 느끼며, 여전히 내면에 작용하고 있는 지난날의 감흥을 다시금 맛보게 된다.

독서에세이는 텍스트와 텍스트가 서로 소통하고 있음을, 상호텍스트성을 통한 읽기가 열려있는 읽기로 나아가고 있음을, 더 나아가 독자들에게는 자신을 성찰하는 새로운 글쓰기의 기회를 제공할 것임을 내포하고 있다.

독서에세이의 숨은 독자들은 문학 텍스트와 연결돼 한 데 어우러질 것이며, 또 그 독자들은 재구성된 독서에세이를 세상에 내놓을 것이다. 이처럼 공감에 공감을 낳는 글쓰기 과정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출판시장의 위기를 잠시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통해 사유하고 공감하기를 바라는 필자와 독자가 여기 존재하는 한, 독서에세이 출판은 앞으로도 계속 활발하게 진행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태그:#독서에세이,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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