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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영화 <귀를 기울이면>(콘도 요시후미 감독, 1995)에는 꿈을 쫒는 두 명의 청소년이 등장한다.

바이올린 장인이라는 뚜렷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세이지와,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별다른 꿈 없이 살아가는 시즈쿠. 그리고 그들 곁에는 언제나 두 학생의 꿈에 귀 기울이는 골동품 가게 할아버지가 존재한다.

어느 날 시즈쿠는 자신보다 저만치 앞서있는 세이지를 바라보며 알 수없는 불안함을 느낀다. 그런 시즈쿠에게 할아버지는 운모망간 덩어리를 보여주며, 그 틈 사이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녹주석에 에메랄드의 원석이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준다.

"너희 둘 다는 아직 다듬어 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돌이야. 이제부터는 자기 안의 원석을 찾아내서 오랜 시간 다듬어서 연마해야 해."

할아버지는 시즈쿠가 쓰는 소설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주겠다는 약속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시즈쿠는 골동품 가게의 고양이남작 바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면서, 라피스 라듀리의 광맥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시즈쿠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들에 귀 기울이며, 보다 구체적인 미래의 꿈을 꾸게 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아마도, 우리의 유년 시절에서 가장 충실하게 산 날은 우리가 쓸데없이 소일했다고 믿는 그런 날일 것이다. 어쩌면,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보낸 그런 날 말이다"라고 한 바 있다.

이는 영화에서 시즈쿠가 책 읽기에 열 올리며 보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세이지처럼 꿈을 향해 정진해나가던 준비과정의 하나였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다만 시즈쿠 본인 스스로가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던 갈망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탓에, 세이지보다 뒤처진다고 느꼈을 그 무엇인 것이다.

"소설을 쓰면서 깨달았어요. 쓰고 싶단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요"라며 시즈쿠가 골동품 가게 할아버지에게 쏟아내던 말들은, 꿈에 대한 동기부여만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포부까지도 생성시킨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처럼 영화는 제목에서처럼 내면을 향해 '귀를 기울이면' 자신의 꿈을 향해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동시에, 이러한 진실을 파악하기 힘든 청소년들 곁엔 골동품가게 할아버지 같은 어른들의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두 가지의 명재를 낳게 한다.

이에 우리는 위의 영화를 토대로, 남모르게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성장통을 앓고 있을 한국의 수많은 '청소년들'과, 또 그들 곁에 선 '부모와 교사'가 수행해나가야 할 과제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누군가는 한평생에 걸쳐 자신의 꿈을 찾기도 한다. 시즈쿠의 언니가 대학에 간 이유에 대해서 "진로를 찾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과, 시즈쿠의 어머니가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새로운 공부를 하는 것" 역시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석지영 교수 또한 처음부터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 아메리칸 발레학교를 다니면서 발레리나를 꿈꾸고, 또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하면서 피아니스트를 마음에 품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는 프랑스문학을 공부하고, 옥스퍼드대 대학원에서는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한참 후에야 법의 매력을 발견하고 하버드법대에서 법을 전공해, 2006년에는 한국계 최초로 하버드법대 교수로 임용되고, 2010년에는 아시아여성 최초로 하버드법대 종신교수로 선출되었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서 조금은 뒤처지고 갈팡질팡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인내심 있게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의 꿈을 위해,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들에게서 숨겨진 가능성과 가치를 찾아내 함께 고민해야 한다.

방황하는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진정어린 마음으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아이들은 조금씩 변화하며 그들의 미래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석지영 교수는 그녀의 자서전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에서, 법대 3학년 시절 저명한 형법학자 빌 스턴츠가 자신의 리포트를 보며 말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빌은 내가 당신처럼 학자의 삶을 살기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나의 불안함을 눈치 챈 그는 내 리포트에 대한 논의를 잠시 멈추고 간결하게 말했다. 지니는 학자로서 훌륭한 경력을 쌓게 될 거야. 빌은 항상 다른 이들에게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지금 법대 강의실에 서 있는 현장이 매일 아침 내가 행복하게 눈을 뜰 수 있게 한다고 전한다. 마침내 그녀는 꿈을 찾은 것이다.

역대 최고 방송수상을 기록한 EBS <학교란 무엇인가>의 제작팀은 1년 2개월 동안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내 아이의 꿈이 살아나는 교육이야기'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 바 있다. 여기서 제작팀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위치한 서일고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면 단위의 이 작은 학교는 수업이 끝나도 가야할 학원이 따로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이날 서일고등학교의 수업시간에 교사는 자신의 꿈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한 아이가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수업 이후 교사는 그 아이를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식품영양학과는 문과가 아니야, 이과란다"라는 말을 해준다. 그때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교사는 아이 손에 프린트를 쥐어주며 보충수업을 하고 가라고 북돋운다. 그날 이후 요리사가 되고 싶은 아이의 꿈은 진짜가 되었다. 종례 후 교사는 말했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굉장히 기뻐서 가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학교는, 아이들의 재능을 끄집어내서 그들이 진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디딤판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과 직업세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흥미나 성격 적성에 대한 충분한 탐색시간이 수반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이들보다 앞선 현재를 살고 있는 부모와 교사가, 청소년들이 사랑하는 꿈을 지닐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귀를 기울이면, 청소년 그들뿐만 아니라 지금 이 삶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밑바닥에 가려져있던 꿈 소리가 불쑥 들리지 않을까 싶어진다.

그 소리에 시즈쿠와 세이지가 자신의 원석을 끌어내서 연마를 하고, 서일고등학교의 한 아이가 요리사를 꿈꾸며 도약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아서 매일 매일 행복에 겨운 채 살아가고 있는 석지영 교수처럼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겨우내 찾아내 다듬어진 원석처럼, 이제 그들은 빛날 일만 남았다.


태그:#교육,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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